왜 나는 아이들에게 화가 났을까?

by 리치그로우

어릴 때 부모님이, 특히 아빠가 매우 엄하고 무서운 편이었어요.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엄격한 아빠 밑에서 자라는 게 가끔은 숨이 막혔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지요.

부모님께는 꼭 필요한 말씀만 드리며 비밀도 늘어났습니다.


결혼해서 내 아이들이 생기면 '나는 우리 아빠처럼 무섭고 엄격한 부모가 되지 않을 거야. 내 아이들과는 뭐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대학생인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꿈꿔왔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게 말하지 않는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저에게 비교적 비밀이 없는 거 같았습니다.

딸아이는 연애 이야기도, 슬픈 일도 기꺼이 제게 털어놓았고,

둘째인 아들은 여자 친구들과 선배 누나들한테 인기가 많다며 자랑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요 며칠은 아이들과 '너무 편한 친구처럼 지내왔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복잡했고 너무 편한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저를 돌아보게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홈베이킹이 취미인 딸아이는 카페에서 달달한 커피와 빵이나 쿠키 같은 간식을 먹는 걸 좋아해요.

나중에 수원화성에 있는 행궁동에서 예쁜 카페를 차리고 싶답니다.

여름방학을 해서 집에 혼자 있는 딸에게 며칠 전 조금 일찍 퇴근하면서 전화를 걸었어요.

집에 가는 길에 카페에 데리고 가주고 싶어서요.


같이 카페 가게 준비하고 있으라고 얘기하려고 전화한 건데,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 나는 목소리로 대뜸 "왜?"라고 물어보며 "왜, 왜, 왜?" 하더군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고, 좋은 마음으로 한 전화였는데 괜히 전화했다 싶어서 '됐어' 하고 끊고 말았어요.


집에 들어오니 딸은 아차 싶었는지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지만 저는 그냥 모른 척했습니다.

화가 나거나 마음이 상하면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그냥 입을 닫아버리는 오래된 제 습관이 또 고개를 들었어요.


그날 저녁, 퇴근해서 마음이 상한 채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하교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은 며칠 전부터 헬스장 등록을 해달라고 졸라오던 참이라 카페에 가지 않게 된 김에

헬스장에 직접 함께 가서 상담을 받아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아들이 하는 말, '엄마가 가보면 알아? 카드 주면 내가 결제할게.' 또 가슴이 철렁했어요.


저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 무시당해도 괜찮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다음 날, 딸아이와 둘이 점심을 먹게 되었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밥만 먹고 있는데 딸아이가 먼저 “엄마, 밥 먹고 스타벅스 갈까?”라고 했을 때, 용기 내어 어제의 기분을 털어놨어요.

'엄마가 아무리 편하고 친구처럼 지내도 예의는 지켜야지, 엄마가 친구도 아니고... 친구여도 그렇게 얘기하면 친구들도 아마 네 주변에 남아있지 않을 거야.'

딸은 PPT 작업이 날아가서 순간 화가 났었다고, 그래서 말투가 그랬던 거라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었어요.

그 말 한마디에 화가 났던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저녁엔 아들과 헬스장에 가며 며칠 전 내 마음을 전하려 했는데 더위를 많이 타는 아들은 더위를 먹은 건지, 그냥 다음에 가자며 대화를 미뤘습니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친구 같은 부모’라는 말은 참 멋진 말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와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부모'라는 말처럼, 오늘도 저는 한 걸음 더 배우고 성장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