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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l 19. 2023

인도 책방이야기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도의 뉴델리. 차가 다니는 교차로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2분여의 짧은 시간마다 그곳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된다.  신호등의 불이 빨강으로 바뀌고 질주하던 차들이 앞 차를 들이박을 듯이 아슬아슬하게 서는 순간, 차도로 돌진하는 무리들이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반복하며 승객의 시선을 끌려는 꼬마 거지,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할 만큼 가냘픈 갓난아기를 한 손에 안고 다른 손은 연거푸 입으로 갖다 대며 구걸하는 여인, 코코넛이 담긴 알루미늄 쟁반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동차 사이를 누비는 코코넛 장수.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그들을 유령 취급하지만 차창을 내려 돈이나 먹을 것이 든 봉지를 건네는 사람도 있다.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고 이들이 마지못해 차도를 빠져나가는 동안에 성질 급한 차들은 클랙슨을 누르며 거칠게 달려 나간다. 뉴델리의 일상이다.

 

  델리 생활이 아직 낯설던 어느 날, 차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어 무심히 창 밖을 내다봤다.  마침 내가 탄 차는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아 멈추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키만큼 쌓은 책을 양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차도로 들어오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신기해하는 나를 본 그는 쏜살같이 내 좌석 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눈높이에 맞춰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책을 선보였다. 몇몇 익숙한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존 그리샴의 <펠리컨 브리프>, 얀 마텔의 <라이프 오브 파이>등.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스티브 잡스의 회고록까지, 하나같이 영어로 된 책이었다. 책 장수는 슬로우 모션으로 앉았다 섰다를 되풀이했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움직이자 그는 아쉬운 눈초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도 사람의 눈망울은 크고 까매서 슬퍼 보인다.)  나중에 인도인 지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표지와 내용이 다른 게 많으니 사지 말라고 조언했다. 말하자면 짝퉁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고속도로의 정체구간에서 뻥튀기나 오징어 구이 같은 먹거리를 팔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책이라니. 하기사 책을 팔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융통성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도의 길거리에는 별별 상인이 다 있어 책은 그나마 평범한 상품에 속한다는 것을 살면서 알았다.

  

  얼마 후 길에서 영어로 된 책을 펼쳐놓고 파는 책장수를 봤다.  스티브 잡스의 책이나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쓴 <내 아버지의 꿈> 같은 책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책이든 뭐든 사는 사람이 있으니 파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한 서양인이 걸음을 멈추고 책들을 구경했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그에게 책 주인은 놓칠세라 말을 붙였다. 얼마 후 그는 책을 고르고 돈을 건넸다. 길거리 책을 산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책의 진위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이방인이 산 책이 설사 책표지와 다른 내용이라 하더라도 속았다고 속상해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다. 왜냐하면 그는 단돈 2달러로 인도의 추억을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누가 알겠는가, 오리지널보다 더 재미있을 수도. 게다가 인도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길에서  다림질판을 펼쳐놓고  남의 집 전기를 끌어다 다림질을 해주고 돈을 받는 모습이라던가, 남의 담벼락에다 거울을 걸어놓고 이발과 면도를 해주는 거리의 이발소를 보노라면 그들의 고무줄 같은 사고방식에 탄복하고 만다. 인도 문화청이 관광 슬로건으로 자기 나라를 ‘인크레더블 인디아'로 명명한 것은 신의 한수란 생각이 들었다.   


  인도는 책이 싸다.  주로 페이퍼백으로 된 책은  우리나라 돈으로 5-6천 원 정도였다고 기억된다. 인도에 살면서 책을 많이 샀다. 태반은 읽지도 않았지만 다른 쇼핑을 하는 것보다 책을 사면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지적 허영심인지 책이 주는 기쁨은 오래갔다. 옷처럼 유행을 타지도 않고 사서 모으는 즐거움도 컸다.  뉴델리에는 교보 같은 큰 서점은 없지만 책방이 꽤 많았다. 집 근처 칸 마켓 쇼핑센터에는 두 군데의 책방이 안경점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바리산즈 '라는 책방을 자주 갔다.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돈을 받고 점원은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주었다. 가게 점원은 중년의 남자였다. 언제나 허름한 긴 셔츠 차림인 그의 머릿속에는 서점 책이 전부 들어있었다. 10평이 될까 말까 한 책방은  한 사람이 간신히 다닐 통로만 비워둔 채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손님이 책 이름을 대면 그의 몸은 자동으로 책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서있던 자리에서 뒤돌아 바로 책을 찾기도 하고, 폭이 30센티정도 되는 가파른 계단을 잽싸게 올라가 다락에서 꺼내오기도 했다. 책을 둘러볼 공간이 좁다보니 손님들은 그에게 의지했는데 책 찾기 달인임에 틀림없었다.


  조르바그에 있는 ‘더 북샵'도 단골 책방이었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맨부커상을 받은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살았다고 알려진 조르바그는 외교관저가 많은 부자 동네였다. 그래서인지 ‘바리산즈'와 달리 ‘더 북샵'은 외국에서 흔히 보는 책방 스타일에 영어로 된 책이 대부분이었다.  책표지가 정면으로 차분히 진열된 서가에는 외국 작가의 책과 인도인이 영어로 쓴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출입문 옆에는 주인의 스토리를 실은 색 바랜 신문기사가 붙어있었다. 책을 사랑하던 남편이 죽자 부인이 이어서 꾸려간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속의 남자는 시크교인임을 상징하는 빨간색의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시크교의 남자아이는 터번을 쓰는데 한여름에도 벗지 않는 것을 보며 관습과 전통의 견고함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갈 때마다 부인이 아닌 젊은 책방지기가 앉아있는 ‘더북샵’은 천천히 책을 둘러보기가 좋았다.


  인도의 서쪽 바다에 위치한 고아로 일주일간 요가 워크숍을 간 적이 있었다. 인도인 친구 데비카는 고아에 가면 꼭 들러야 한다면서 책방이름을 적어줬다. 워크숍이 끝난 어느 날 오후 친구가 알려 준 책방을 찾아 나섰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주소를 건넸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택시를 거침없이 몰던 기사는 어느 한적한 집 앞에 차를 세웠다. *‘리테라티 북샵 앤드 카페’는 아담한 정원이 딸린 고풍스러운 주택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에는 팬이 돌아가고 세월을 먹은 낡은 책장 속 책에서 나는 책냄새는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을 떠올렸다.  기념으로 그곳 출신 작가의 당시 최근작을 샀다. 2015-2016년쯤이라 생각된다. 포르투갈계 인도작가 마리아 아우로라 코우토가 쓴 ‘필로메나의 여정’이라는 책이다. 첫 몇 페이지를 읽고는 아직이다. 고아 지방은 1500년대에 포르투갈 식민지였다가 1961년에 해방이 되었다고 한다.


   인도는 거대한 나라다. 지역에 따라 언어와 종교가 다르고 사람의 생김새도 다르다. 북쪽으로 갈수록 피부색이 희고 남쪽으로 갈수록 검다.  책을 쓰는 언어도 다양하다, 힌디어와 영어로 쓴 책이 대부분이지만 그 외 지방 언어로 쓴 책도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벵골 출신인 타고르는 한 편의 시를 제외하고는 전부 벵골어로 글을 썼다고 한다. 인도인의 사고방식이 독특한 이유가 언어와 종교 때문이 아닐까 나름 추측했다. 수많은 언어와 종교가 인도라는 한 울타리에서 부딪치며 살다 보니 인크레더블한 나라가 된 건 아닌지. 인도에서 산 책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20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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