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엄마의 아들이자 우리 집 장남.
자네 둘째로 태어나길 천만다행이야.
둘째는 설움이 많다는 얘기를 둘째들에게 많이 들었다.
오빠는 아들이어서 엄마가 아껴서 둘째의 설움을 몰랐을 것이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좀 나고 그럼에도 불구, 많이도 싸웠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매번 괴롭히는 오빠가 얄미웠다.
왜 그리도 못살게 구는지 엄마에게 일러바쳐도 소용없었다.
그 양반은 희한하게도 용돈이 생기면 자기 먹을 거 갖고픈 것을 사지 않고(빠듯한 자취생활에)
토요일이면 본가로 오곤 했는데 나는 그 주말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친구도 없고 언니 오빠가 오면 놀아주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에게 놀아달라 청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자. 자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
토요일, 오빠의 가방 속엔 과자와 때로는 소박한 선물이 들어있다.
머리방울이라던지 핀이라던지 각종 인형들.
부모님은 남자인 네가 뭘 어찌 알고 이런 걸 다 사들고 오냐고 신기해했고
나는 그저 원님덕에 나팔을 불었다.
그중 제일 오래간 녀석은 핑크팬더였는데 가끔 생각이 난다. 내 인생 유일한 핑크.
이번 주말엔 언니가 오려나?
꼬박꼬박 오는 오빠에게 물었지. 언니는?
약속이 있다, 공부를 한다, 바쁘다 등등 오빠의 핑계는 다채로웠지만 언니가 오지 않은 내게는 그저 승에 차지 않은 변명이었다.
어린 맘에 바보 같은 말을 했다.
"치.. 오빠 말고 언니가 오지.."
진짜 눈물 나게 미안하다.
아무리 나라도 저 당시 나였다면 막내고 나발이고 한 대 쥐어박지 않았을까.
얼마나 서운했을까..
기억 못 할 줄 알았지?
어째선지 기억이 난다.
미안한 건 퇴색되지 않는 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색하게 오빠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오빠는 답지 않게 어른의 언어를 썼다.
민증이 생긴 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이제 네가 한 일에 네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라고.
묵직했다.
그런 말도 할 줄 알았냐?
알았다.
여기까지가 딱 좋았는데 내 모진 시간에 오빠가 화살을 맞았다.
"오빠는 오빠 가족이 생기니까 여기 가족은 별로 생각 안나지?"
말이 없다.
더 묻지 않았다.
궁금하고 하고 싶은 말은 못 참는 성미인지라.
어리다고 마구 기어올랐다 내가.
섬유선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몇 번 하다 보니 이젠 큰일도 아닌지라
엄마와 언니에게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오빠는.. 저녁에 하자.
불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다 커서 혼이 났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던 말을 지키지 않아서.
혼은 났지만 묘하게 든든했다.
가끔 오빠 목소리에서는 흐려진 아빠의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유전이 무섭다.
오빠집엔 나 같은 생물 하나가 더 있다.
두 번째 똥강아지 그의 딸, 되시겠다.
주변에선 나를 닮았다고 하는 것 같다.
(새언니 혹시..?)
조카님은 중2 여름방학, 반삭을 하고 나타나 내 첫 타투의 존재를 무색하게 했다.
그걸 또 짚고 넘어가는 오빠는 딱 한마디 했다.
"안 아프냐? 더 하지는 마라"
"응"
미안하다. 또 했다.
장난기 많은 오빠에게서 딱 한 번의 통곡을 들은 적이 있다.
아빠의 장례식 3일째 되던 이른 아침, 다들 지칠 대로 지쳤고 고요하던 그때..
혼자 상주자리를 지키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던 걸 기억한다.
장남의 무게였을까.
얼마나 참았던 걸까.
우리 모두 가엽구나.
참다 참다 인기척 없던 그 시간 기어코 마지막에 무너진 걸까.
생각보다 오빠의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보고 들은 것이 전부이긴 하겠지만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릴 때 들은 구슬픈 동요의 비단구두 사준다던 오빠보다 훨씬 더 멋지다.
그러니 오빠의 가정에서 지금처럼 훌륭한 가장이 되어 더 멋지게 살아줘라.
오빠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 울 엄마, 아들 하난 기가 막히게 잘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