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 2009)
작가의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 『잃어버린 얼굴』이 참 좋았다 (물론 어려웠지만). 책장엔 『태고의 시간』, 『방랑자들』, 『낮의 집, 밤의 집』 같은 그녀가 쓴 다른 소설들이 꽂혀 있는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조각글이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장편이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제목이 좀... 거창한데,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작가 (올가)가 에디터와 엄청 싸우면서 고수한 제목이라던데. 처음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이런 제목을 에디터나 출판사 측에서 어째 받았을까, 싶다가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올가의 우김?? 이 옳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는 노벨상(2018)을 수상하기 전이니 싸움이 치열하지 않았다면 이 제목 고수하기 쉽진 않았을 듯하다.
생태 스릴러, 별자리 소설... 기타 등등으로 이 소설을 말하던데...
글쎄... 스릴러(계속된 살인과 반전이 있음)라기보다, 약자들을 보살피려는 또 다른 주변인? 의 이야기란 느낌이다. 물론 결론에 대해선 굉장히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고서는 ‘대체 누가 악인인가?’ ‘왜 악인이 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해 겨울 그것들(추위와 습한 공기)은 세상이 인간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주곤 했다. 적어도 반년 동안 우리는 세상이 얼마나 적대적인지를 실감했다.”(12)
체코와 폴란드 접경지역의 어느 시골 마을 (고원). 겨울엔 거주자가 딱 세 명뿐인 그곳의 어느 혹독하게 추운 밤에 시작되는 이야기. 이름보다는 그 사람을 처음 본 느낌을 호칭으로 삼는 듀세이코 부인 (본명은 아니냐 듀세이코지만 자신에게 맞는 이름은 에밀리아나 요안나라고 생각)에게 괴짜가 찾아와 왕발이 죽었음을 알린다.
“아무리 고약하고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 해도 왕발이 제대로 된 죽음을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런 죽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17)
“내 생각에 죽음은 물질의 절멸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몸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이다. 소멸된 시체는 그들이 생성된 블랙홀로 다시 빨려 들어가야 한다. 영혼은 빛의 속도로 빛을 향해 유랑할 것이다. 만약 영혼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21)
“지금 그 몸뚱이는 차분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물질로부터 해방된 영혼이 기뻐하고, 물질도 영혼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기쁜 듯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형이상학적인 이혼이 성립되었다. 이제 끝이었다.” (27)
아니냐는 사람을 별자리로 이해하고 판단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별자리 성향이 강하고 현재시간 어떤 별자리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사람의 사망 날짜도 자주 알아본다. 물론 자신의 사망일도 알고 있다고 믿는 그녀. 그녀에게 점성술, 별자리는 과학이다. 하긴 고대엔 천문학이 곧 점성술이었던 때도 있었다. 근대 과학에선 과학적 증거의 부족과 검증의 어려움 등으로 ‘점성술’에 머물지만 말이다.
그녀는 죽은 왕발이 밀렵해서 잡은 동물을 도축해 먹고, 팔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이유로 경찰에 그를 여러 번 고발했다. 또한 자주 경찰서를 찾아가 사냥의 폭력성과 불법성에 대해 늘어놓으며, 이것은 공권력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설파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공권력)은 그녀를 미친 여자쯤이라 여겼다.
“대기가 푸른빛으로 바뀌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깊고 둔탁한 울부짖음이 사방을 온통 불안감으로 채웠다. 나는 죽음이 항상 문 앞에 있다고, 즉 가까운 곳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죽음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언제나 우리의 대문 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49)
“지금까지 나는 1042개의 출생일과 999개의 사망일을 수집했고, 내 사소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럽 연합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는 프로젝트, 부엌 식탁의 프로젝트.” (86)
“나는 모든 것을 비정상적이고 끔찍하고 위협적인 신호로 해석한다. 재앙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타락이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내 사망 날짜를 알고 있고, 덕분에 자유롭다.” (91)
어느 날 밤, 그녀는 제자인 디지오와 또 다른 주검을 발견한다. 주검 주변에 찍혀있던 사슴의 발자국을 보며 그녀는 인간에게 하는 동물의 복수라고 말한다.
한 가지... 정말 놀라웠던 건, 매가 개똥지빠귀를 공격하면 개똥지빠귀들은 떼로 몰려 매가 쓰러질 때까지 여러 방법으로 공격한다는 거. 결국 포식자인 매가 비참하게 죽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냥 당하기만 하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약자와 포식자와의 관계가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만은 아니라는 거였다. 자연엔 영원한 약자도 없고 영원한 강자도 없느니...
“동물을 보면 그 나라가 어떤지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동물을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잔인하게 군다면 민주주의나 그 어떤 시스템도 소용이 없습니다.” (148)
“이것은 잔인하고 무감각하고 기계적이며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리고 일말의 반성도 없이 벌어지는 대량 학살입니다. 고매한 철학이나 신학 분야에서 반성과 성찰이 그토록 난무하는 데도 말이죠. 살상과 고통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 버린 이곳은 대체 어떤 세상인가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158)
“우리는 서로를 아주 많이 닮았다. 너무도 연약한 데다 필멸의 숙명을 타고난, 파괴되기 쉬운 존재다. 모두 하늘 아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있지만, 사실 하늘이 정해 놓은 우리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봄은 단지 짧은 막간일 뿐이고, 그 뒤에는 강력한 죽음의 군대가 도사리고 있다.” (179)
그녀의 외침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도 가열차게 살고 있는 생명이기에 그들의 생명권을 보장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인간은 영원한 포식자가 아니다. 또한 우리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어떤 생물도 유용하거나 무용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적용하는 어리석은 구별일 뿐입니다.” (223)
그 후에도 몇 건의 살인이 더 발생한다. 경찰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작은 마을 고원의 사람들은 뒤숭숭해한다. 그녀는 계속 동물들의 복수를 얘기한다.
“동물들은 정의감이 매우 강하거든요. [...] 내가 도대체 왜 신성한 법칙을 어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지독히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죠. 그 애들은 내게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정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세상을 느끼는 관점이 있답니다.” (281)
“사람들은 동물들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생명체가 아닌 물건인 양 취급하죠. 제 개들은 사냥꾼들의 총에 맞아 죽은 것 같습니다.” (282)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나는 블레이크의 시구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 (317)
“연단에 선 인간은 자신이 다른 생명체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생사 결정권을 부여한다.” (331)
“마치 우리가 공통점이 아주 많은 것처럼, 그리고 한 가족인 것처럼, 나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임을 깨달았다. 본질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아이디어도 내놓지 않으며, 필요한 물건이나 식량을 만들어 내지도 않고, 땅을 경작하지도 않고,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자손을 번성시킨 것도 아니다. [...] 지금껏 우리는 세상에 유용한 뭔가를 제공한 적이 없다.” (339)
“하지만 왜 우리는 꼭 유용한 존재여야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또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는가? 엉겅퀴에게는 생명권이 없는가?”
“나는 누구인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내 사망 날짜를 알고 있다.” (372)
그녀는 약자이면서 약자의 생명권을 보호하려 애쓰던 사람이고, 폭력을 증오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생명권에 대한 신념과 논리는 그녀가 살리려 애쓴 동물에게만이 아니라, 폭력적인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했다.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디지오, 기쁜 소식, 괴짜 그리고 곤충학자는 왜 그녀를 품었는가’이다. 물론 그녀를 깊이 신뢰하기 때문이었겠지만, 그 이해와 신뢰가 그녀의 행위를 덮을 만한 것인지. 사회의 규범이나 법질서 같은 논리는? 그들 모두 그녀의 주장, 약자들의 생명권 같은 신념에 깊이 동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들이 사랑하는 그녀를 살리고 싶은 인간적인 마음 때문이었을까?
작가가 선택한 제목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죽은 자의 유해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일구어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기억하고 죽음이 상징하는 오래된(사라진) 가치를 재구성하겠다는 상징적 의미. 죽은 자가 땅과 공기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것처럼, 인간 역시 자연 속에 스며들어 그 유산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모든 건 이렇게 작동하는 거야, 디지오. 난 알고 있어, 아직 내게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는 걸.” (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