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by 새벽

(밀란쿤테라 글, 민음사, 2023)


밀란쿤테라의 첫 장편 소설로 1967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루드비크와 헬레나, 야로슬로프, 코스트카 네 명의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모두 주인공 루드비크와 관련이 되어 펼쳐지는 구조이다.


스무 살의 루드비크는 대학생 연맹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여자를 좋아했고, 심각하고 진지하지만은 않은 사람이었다. 단순히 예뻤다는 이유로 좋아했던 마르케타에게 보낸 엽서에 겉멋으로 휘갈겨 쓴 몇 구절이 반동적 행위로 규정되어 당과 학교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맞는다. 어린 친구의 객기 같은 행동이었지만, 공산화된 체코 사회는 그런 객기에 대해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검은 표지를 받고 군대(탄광)에 끌려간 젊은 루드비크의 좌절과 자포자기가 너무 생생하게 읽혔다. 그곳은 끔찍한 노동과 무지막지한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지만, 그는 노동하면서 자신의 본성을 이해하고, 점점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뚜렷하게 자각한다. 또한, 그곳에서 묘령의 여성을 만나기도 한다. 그는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자신이 그 여성을 가장 사랑했다고 여기는데, 그녀가 평범했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사실, 사람에게 빠져드는 게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여서, 한순간 어떤 표정에, 어떤 움직임에, 혹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환경 때문에 빠져들기도 하니, 루드비크가 그 여성의 평범함 때문에 빠져들었다고 하는 건 아주 설득력 있게 읽혔다. 거기다 그녀와는 슬픔과 우울의 감정을 공유했다고 하니, 아마 루치에는 루드비크가 그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숨구멍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루드비크뿐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도 역시 ‘농담’ 같은 운명에 갇혔다.


루드비크의 복수 도구로 이용당하는 헬레나는 남편(젊은 루드비크를 당에서 쫓아낸 장본인)의 외도로 방황하지만, 루드비크를 만나 사랑을 찾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가 루드비크가 시도한 복수의 일환이었음을 알게 되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인 줄 알고 먹은 약이 설사약이어서 마지막 순간이라고 믿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아픈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그야말로 지저분하고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아닐 수 없었다.


루드비크의 어린 시절 친구인 야로슬라프. 그가 지키려 했던 민속 음악이 현대 소음에 갇혀 버리는 모습 또한 거대한 농담처럼 그려진다. 또 한 명의 주변인인 코스트카는 기독교적 신념과 공산주의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지만, 양쪽에서 다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인처럼 그려져, 그의 노력 또한 이율배반적인 농담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에서 루드비크는 가장 큰 농담을 마주해야 했는데, 15년 전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던 제마네크에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했지만, 제마네크는 공산체제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변해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치사한 복수가 제마네크에게 타격감 제로였다는 것을 알고 쓰디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결국, 이야기 전체가 ‘비극적 농담’처럼 보인다.


‘농담’ 그저 웃픈 현실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계획과 희망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시대와 관계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었을지. 결국 저자는 루드비크의 입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손을 쓸 수 없는 농담 속에 살고 있고, 과거를 되돌려 복수하거나 복구하려는 시도조차 다른 농담을 낳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밀란쿤테라’라는 이름을 ‘허무주의적인 데카당스 문학가’와 동일시했던 것 같다. (물론 작품을 별로 읽지도 않았다. 원래 뭣도 모르면 더 용감한 법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내 같잖은 편견이 와장창 깨졌다. 심리 분석이 매우 날카로울 뿐 아니라 아주 섬세해서 완전 몰입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있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임에도 불구하고 휘리릭 읽어지는 가독성 높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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