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하나 됨의 신명 대축제(3)
회의는 이미 중반을 넘기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 회의의 목적은 노래를 잘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선지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노래를 새로 제정하기로 한 건 이미 합의된 사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래는 공연용 주제가가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함께 부를 수 있는 하나의 공통 노래*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남은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국민이 어디서부터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호태가 말했다.
“노래 제목부터 가야 합니다.”
누군가 고개를 들었다.
노래라면 보통 가사나 멜로디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호태가 설명을 보탰다.
“가사나 곡조는 작성하는데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목 하나쯤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목은 완성된 작품의 이름이 아니다.
‘이 노래가 어떤 방향과 감정이면 좋겠는지’를 던지는 한 문장이다.
“제목은 답이 아니라 힌트이기도 합니다.
가사 제정에 참여하는 국민에게 주는 *한마디 조언*입니다.”
정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 노래가 어떤 내용을 가졌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방향 표시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제목 공모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강한국이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공모의 취지를 설명하고 제목을 공모하면
제목은 대부분 비슷해질 겁니다.”
이 말은 수천 명이 참여하면
‘하나’, ‘함께’, ‘신나는’ 같은 단어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럴 겁니다.”
호태가 바로 답했다.
“그리고 그게 정상입니다.
비슷하다는 건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선지훈이 물었다.
“그럼 그 많은 제목(출품작) 중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를 선택합니까.”
“가르지 않습니다.”
호태가 말했다.
“같거나, 의미가 유사한 제목은 하나의 묶음으로 봅니다.”
윤필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묶음 안에서는 어떻게 결정하나요.”
호태가 답했다.
“같은 제목을 가장 먼저 올린 사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이 공모는 *누가 더 잘 썼는지*를 가리지 않는다.
*누가 먼저 응모했는지*를 기록한다.
정세린이 구조로 정리했다.
“가장 먼저 공모에 응했기 때문에 시작자이고,
그 이후에 공모에 참여한 나머지는 확산자입니다.”
“플래시몹과 똑같습니다.”
호태가 덧붙였다.
“한 사람이 먼저 움직이고,
나머지는 참여 인원수를 늘어나게 합니다.”
강한국이 말했다.
“그럼 ‘베꼈다’는 논쟁도 사라지겠네요.”
“논쟁이 사라집니다.”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니까요.”
선지훈이 정리했다.
“그래서 이 제목 공모에는 경선도 없고, 결선 투표도 없습니다.”
정병문이 의미를 짚었다.
“의미를 놓고 싸우지 않겠다는 거군요.”
“시작한 사람을 남기겠다는 겁니다.”
선지훈이 잠시 말을 멈췄다.
“여기서 한 가지만 분명히 합시다.”
그는 참석자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우리가 제목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얹는 이유는
아이디어 공모를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제목 하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 제목을 주체로 가사를 씁니다.
그 가사에 멜로디가 붙고, 그 멜로디에 맞춰 몸이 움직입니다.”
호태가 그 말을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율동은 어느 순간 플래시몹이 됩니다.
처음엔 한 사람, 그다음엔 옆 사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시작했는지 중요하지 않게 되죠.”
그는 잠시 멈췄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압니다.
‘아, 내가 응모한 제목이 플래시몹에 기여했구나’ 하고요.”
선지훈이 정리했다.
“그래서 제목은
작은 공모가 아니라
*국가 설계의 첫 입력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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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순이 질문을 던졌다.
“제목을 응모할 때
왜 그런 제목을 썼는지 설명을 받습니까.”
정세린이 바로 답했다.
“설명을 필수항목으로 두면 안 됩니다.”
“설명을 요구하는 순간 참여 속도가 죽습니다.”
윤필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이나 학급 단위 참여를 생각하면,
제목 하나는 가능해도 설명까지 요구하면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서 설명은 선택 항목이 돼야 합니다.”
정세린이 정리했다.
“제목은 필수항목, 제목에 대한 설명은 선택항목.”
강한국이 물었다.
“설명이 평가에 들어갑니까.”
“아니요.”
정세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설명은 다음 단계인 가사 공모를 준비하는 응모자에게
참고 자료로만 남깁니다.”
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상금 이야기로 가죠.”
호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나 됨의 노래’ 제목 공모는 제목 하나를 응모하는 행위가
얼마나 큰 가치인지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강한국이 즉각 반응했다.
“그럼 상금 규모를 평범하게 갈 수는 없겠군요.”
선지훈이 물었다.
“얼마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1등, 3억입니다.”
호태의 말이 떨어지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반대의 침묵이 아니라, 무게를 재는 시간이었다.
윤필순이 물었다.
“2등은요.”
“1억입니다.”
강한국이 현실을 짚었다.
“2등 상금이 1억 인 공모전은 사실상 전례가 없습니다.”
윤필순이 다시 물었다.
“그다음 순위는요.”
“3등부터 7등까지. 전부 3천만 원입니다.”
정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위 경쟁은 1, 2등까지만 두고
그 이후는 같은 흐름을 만든 참여로 보겠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참자입니다.”
정병문이 다시 말했다.
“그래도 7등 상금이 3천만 원이면 상당합니다.
공고문 자체가 큰 화제가 되겠군요.”
호태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목적은 관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참여입니다.”
강한국이 숫자를 정리했다.
“1등 3억, 2등 1억,
3~7등 총 1억 5천. 상금 총액은 5억 5천입니다.”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이정재 배우 회당 출연료가 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4억이 넘습니다. 지금은 그만한 돈이 상징이 되는 시대죠.”
“맞습니다.”
“손흥민, 김연아 같은 스포츠 스타,
임영웅, 아이유, 유재석 같은 최정상급 모델의 연간 전속료가 10억을 넘는 세상입니다.”
윤필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목 공모 상금은 저희 재단에서 부담하겠습니다.”
정병문이 자연스럽게 받았다.
“그럼 가사와 곡조 공모 상금은 저희 재단에서 맡겠습니다.
율동은 어렵겠지만, 가사와 곡조까지는 충분합니다.”
강한국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 재단이 ‘국민 재단’ 선점 경쟁을 하시는 것 같군요.”
모두 오랜만에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윤필순이 다시 물었다.
“늦게 응모한 사람들은요.”
“1등 작품에 한해서.”
“같은 제목으로 참여한 모든 응모자에게 소정의 상품을 지급합니다.”
강한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늦게 참여해도 의미가 있겠군요.”
“그래야 합니다.” “속도 때문에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강한국이 마지막으로 짚었다.
“그래도 밖에서는 ‘제목 하나 정하는 데 왜 이렇게 큰돈을 쓰느냐’
이런 질문이 나올 겁니다.”
말한 사람의 얼굴에는 반대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표정이 있었다.
이건 이견이 아니라 넘어야 할 문턱이었다.
선지훈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준비해 둔 한 장짜리 메모를 회의 테이블 위로 밀어 놓았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그 말만 남기고 입을 다물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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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의 가치, 그리고 비용에 대한 비교
지금 던진 말은 감정이 아니라 비교의 논리다.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결과를 만든다면,
그 비용이 100억이든 500억이든 비싸다고 할 수 있는가.”
숫자부터 보자.
100억.
500억.
이건 국가 예산으로 보면
정책 한 줄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홍보 캠페인 하나, 일회성 정책 실험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과 같은 급이다.
반면에 총선 한 번에 들어가는 비용은 단순한 선거관리 비용을 넘는다.
행정 비용,
사회적 갈등 비용,
분열의 피로,
선거 이후 4년간의 정치적 소모.
이건 숫자로 환산조차 어렵다. 총선 한 번의 결과는 이렇다.
국회의원 몇 명이 바뀌고, 정권 구도가 조금 달라진다.
그리고 곧 이런 말이 나온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
“또 똑같다.”
“사람 잘못 뽑았다.”
국민은 결과에 참여했지만, 과정에 남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가 노리는 결과는 다르다.
노래 하나를 같이 부른다.
몸을 같이 움직인다.
학교와 지역과 세대가
같은 장면을 공유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
국민이 결과를 ‘지켜본’ 게 아니라 직접 ‘만들었다’고 느낀다.
그래서 돈을 쓰는 대상이 다르다.
총선 비용은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쓰는 돈이고,
경쟁을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비용이며, 분열을 전제로 한 시스템 비용이다.
이 프로젝트의 비용은 다르다.
분열을 줄이기 위해 쓰는 돈, 경쟁을 놀이로 흡수하기 위한 비용,
참여를 남기기 위한 투자다.
즉,
총선 비용은 균열을 견디기 위한 돈이고,
이 프로젝트 비용은 균열을 줄이기 위한 돈이다.
질문은 금액이 아니다.
“이 돈으로 무엇을 사느냐”다.
총선은 지역대표를 산다.
이 프로젝트는 공동의 기억을 산다.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은 바뀔 수 있지만,
공동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총선 한 번으로 국회의원을 뽑고 국민이 한탄하는 나라라면,
한 번쯤은 그 돈으로 국민이 직접 하나가 되는 장면을 만들어도 된다.
100억? 작다.
500억? 그래도 작다.
국가의 1년 예산을 다 던져서라도,
*분열된 국민이 통합되고 2002년 '하나 됨'의 환희를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다면
그건 비용이 아니라 국가 자산이다.
이 프로젝트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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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는 이미 알고 있다는 공기가 깔려 있었다.
재원 문제는 이 자리에서 다시 다룰 안건이 아니었다.
앞선 논의에서,
이 공모에 필요한 재원은 지이디(G.E.D) 운영체계 안에서
기업의 공공기여를 환류시키는 PCC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 전제 위에서,
논의는 더 이상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돈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로 넘어가 있었다.
메모를 다 읽었을 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선지훈이 그 침묵을 정리했다.
“우리는 돈으로 공모제 참여를 독려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테이블 위 메모를 한 번 가볍게 눌렀다.
“제목 공모에 참여한 국민 한 사람의 가치를
국가가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겁니다.”
정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국민들이 너도나도 응모할 수 있습니다.”
회의는 더 이상 길어질 필요가 없었다.
이건 합의가 아니라 좌표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선지훈이 회의를 정리했다.
“이 방식은 정치에서 이미 한 번 검증했습니다.”
그가 말한 정치는,
국공위원장 후임을 국민 공모 추천으로 선발했던 과정을 뜻했다.
“그때도 우리는 밀지 않았고,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호태를 보았다.
호태가 답했다.
“그래도 참여는 나왔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방식으로 갑시다.”
정세린이 노트북을 열고 한 문장을 적었다.
*공모 과정 자체가 국민축제가 되는 오디션 설계*
커서가 ‘공개’ 버튼 위에 멈췄다.
아직 누르지는 않았지만,
이 방 안에서는 이미 결정은 끝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