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의 추한 민낯을 쓰려했다.
누가 더 나쁘냐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이 왜 늘 국민을 배신하는 방향으로 굴러가는지, 그 작동 원리를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정치는 입으로는 “국민”을 말한다.
그러나 손은 늘 다른 것을 잡는다.
자기 영달, 자기 안전, 자기 편의 숫자.
그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명분을 만들고, 적을 만들고, 침묵을 만들고, 기록을 지운다.
사후 수습은 능숙해지고, 사전 확인과 멈춤은 늘 늦어진다.
그리고 그 늦음이 쌓이면, 어느 순간 국가는 “사건”이 아니라 “상태”로 무너진다.
이야기는 민주연대의 공작왕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공작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고, 한 인물의 기술로 끝나지도 않는다.
권력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자리를 바꾸면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공작왕의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신호다.
한 왕이 사라진 자리에서, 민주 세력 내부의 주류와 비주류는 끝을 보며 맞선다.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같은 권력 언어를 쓰는 자들 사이의 내전이다.
그리고 지금, 보수 공작의 결과는 내란 세력의 단죄로 진행 중이다.
직전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형을 선고받는 참담한 장면은, 한 개인의 추락이 아니라 국가가 권력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할 때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결론은 처벌이 아니다.
나는 단죄를 엔딩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쓰려는 것은 “누가 죄인인가”가 아니라 “왜 멈출 수 없었는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준.사(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가 등장한다.
미.준.사는 정치가 아니다.
권력을 잡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는 작동 원리를 바로 세우려는 사람들이다.
누가 집권하느냐보다 중요한 질문을 붙든다.
무엇이 통과되는가. 누가 멈출 수 있는가. 그 책임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정치는 현재의 속도로 달리지만, 국가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실패를 전제로 설계되어야 하고, 권력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2028년, 미·중의 입장 표명 요구는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대한민국에게 던져진 시험지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그 질문을 강요받지 않을 나라가 될 수 있는가.
태극루트키와 부전승은 그 답을 만들기 위한 조건이다.
그래서 중간 로드맵이 필요했고, 그래서 성숙을 앞당겨야 했다.
김천(2025)과 광주(2026)의 체전은 축제가 아니다.
구호로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움직여본 경험으로 하나가 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장이다. 광토연이 하는 일은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일상에 남는 작동을 설계하는 일이다.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갈 지형을 바꾸는 일이다.
나는 이 소설을 절망으로 끝내지 않는다.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을지 몰라도, 국가의 작동 원리는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멈출 수 있게 하고, 책임이 개인에게 떠넘겨지지 않게 하는 것.
그 단순한 원칙을 제도와 삶의 습관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선택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이 소설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