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1권 10장)

초대 교실 따라 하기

by 또 래 호태

김대한의 교실


김대한은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말했다.

“어제 통로를 먼저 비운 친구가 있었다.

덕분에 다들 빨리 지나갔다.”


김대한은 일부러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면, 그 순간부터 비교가 시작될 것 같았다.)

김대한은 자랑의 대상을 ‘아이’가 아니라 ‘행동’으로 두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칭찬을 기다리지도, 다음 문장을 묻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단 하나만 있었다.

다음 지시의 대기.


김대한은 칠판 옆에 작은 상자를 올려두었다.

김대한은 상자를 “작은 상자”라고만 불렀다.

박철우 교실에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이 상자에는….”

김대한은 말을 멈췄다.

(설명부터 꺼내는 순간, 어제 지운 문장이 되살아난다.)


김대한은 문장을 바꿨다.

“여기에는, 내가 오늘 본 행동을 넣겠다.”

김대한은 ‘넣는다’라는 동사를 선택했다.

그 행동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가 들어가요?”

질문은 상자를 향하지 않았다.

질문의 목적어는 “누가 인정받나”였다.


김대한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은….”

김대한은 말끝을 흐렸다.


그 사이에 교실 뒤쪽에서 의자가 끌렸다.

연필이 떨어졌다.

누가 주워야 하는지,

누가 전달해야 하는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대한은 박철우 교실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거기서는 연필이 떨어져도 누군가 주웠다.

거기서는 가방이 통로에 놓이지 않았다.


김대한은 말했다.

“주운 사람이 쓴다.”


그러나 아이들은 김대한을 보았다.

아이들의 눈은 “규칙”을 묻지 않았다.

김대한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아이 하나가 연필을 주웠다.

그리고 연필을 든 채 김대한의 얼굴을 한번 봤다.

(이게 맞나?)라는 눈빛이었다.


김대한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칭찬하지도 않았다.

김대한은 그 아이가 다시 자기 공책에 연필을 대는 순간까지 기다렸다.

그 순간, 김대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걸로 충분해야 한다.)


하지만 교실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조용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조용하지 않음”이 곧 “통제 실패”로 읽힐 수 있었다.


점심시간 직전, 김대한은 자기 교실을 나왔다.

복도 끝에서 조민국을 만났다.

조민국은 얼굴이 조금 굳어 있었다.


“어땠어?” 김대한이 먼저 물었다.


조민국이 말했다. “안 돼.”

김대한은 웃지 못했다.

(‘안 돼’는 요약이 아니라, 하루의 무게다.)


조민국이 말을 이었다.

“나도 아침에 자랑을 했다. 상자도 꺼냈다.

근데 애들이… 기다려. 기다린다. 내가 뭘 더 말하길.”


김대한이 말했다.

“우리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가 봐.”

조민국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확신은 없었다.


“더 정확히 하면 되겠지.” 김대한이 덧붙였다.

김대한의 문장은 해결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는 유예였다.


조민국이 낮게 말했다.

“근데… 박철우 선생님 교실에서는 설명이 짧잖아.

우리는 설명이 짧아지면 더 흔들려.”


김대한은 그 문장을 들으며, 자기 속에서 어떤 사실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우리는 박철우를 흉내 냈다. 그런데 박철우는 흉내 낼 대상이 아니었다.)


둘은 그 결론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둘은 “우리”라는 주어를 붙잡고 헤어졌다.

그 주어는 아직 무겁지 않았다.

아직은 기술의 영역이었다.



중간 압력 1 ┃ 관리자 호출: “책임의 대상은 누구인가”


며칠 뒤, 김대한에게 면담 요청이 왔다.

김대한은 회의실 문을 열기 전에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 잘못이라기보다… ‘불안정’이라고 했지.)


관리자가 말했다.

“요즘 수업이 조금 불안정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관리자는 전달받은 문장을 그대로 읽었다.

“설명이 적다.”

“아이들이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질서가 느슨해 보인다.”


말의 대상은 김대한의 ‘의도’가 아니라

김대한의 수업 방식과 그로 인해 나타난 교실의 상태였다.


젊은 교사는 고개를 숙였다.

부정하지 않았다.

(이 지적이 자신의 수업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김대한은 고개를 들었다.

관리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의도된 기준 정착 과정입니다.”


“과정이라는 말은,”

관리자가 말했다.

“교실 안에서 반복되는 결과가 보일 때 비로소 설득력이 생깁니다.”


젊은 교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 제시할 결과를

아이들의 행동으로 묶어 보여줄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관리자가 물었다.

“계속하겠습니까?”


질문은 허락이 아니라

이 수업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의 책임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를 묻는 말이었다.


젊은 교사는

연필을 주워 들던 손과 가방을 끌어당기던 움직임을 떠올렸다.

(그 장면들은 성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네.”

그는 말했다.

“이 기준을 계속 적용하겠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며 김대한은 복도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날 저녁, 김대한은 조민국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불려 갔다.”

“계속하냐고 묻더라.”

“계속한다고 했다.”


조민국은 짧게 답했다.

“나도 곧 오겠지.”


둘은 같은 문장을 공유했다.

그러나 그 문장의 목적어는 달랐다.


김대한에게는 ‘수업 방식’이었고, 조민국에게는 ‘다가오는 압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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