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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 맺는말

by 포레스트 강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1991년 일본 소니사가 휴대용 이동기기의 전원으로 상품화에 성공한 이후 그 성능이 향상되어 20세기말에는 휴대용 컴퓨터인 노트북의 전원으로 채용되었다. 이즈음에 세계적인 학술대회장에서 참가자들의 노트북이 발화하는 일이 종종 목격되었다. 대부분 일본 회사 제품들이었다. 발화된 노트북의 제조 회사들은 발화사고에 대하여 사과하기에 바빴고 그 뒤에는 피해자들로부터 거액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휘말려 회사의 존립까지도 걱정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소형 전자기기의 전원으로 채용되는 상황을 지켜보아 온 한국의 유수 회사들은 20세기말에 리튬이온 이차전지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상품화에 성공하였다. 적용 대상 기기로 마침 한국에서 많이 제조하던 노트북으로 잡았던 터에 일본 제품의 발화사고를 접하게 되어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방안을 마련하여 한국제 전지가 채택된 노트북이 많이 팔리게 되어 배터리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그 뒤에 휴대전화가 등장하여 그 전원으로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채용되고 한국제 배터리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판을 얻어 이차전지 시장의 점유율을 높게 지킬 수 있었다.

후발 업체인 한국의 배터리 제조업체가 기술 개발의 선두에 있던 미국이나 일본을 제치고 해당 시장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전지 관련 기술자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당시 한국의 전지 제조와 관련하여 인프라가 좋았다고 생각된다. 1970년대부터 한국의 제조 공장에서는 음성 저장을 위한 자성 테이프(magnetic tape)의 제작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 제품 제조 과정에서 얇은 고분자 막에 자성 분말을 고르게 붙여서 릴을 만드는 게 핵심이었는데 이를 위해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체득한 공정기술이나 장비 제작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제조 과정에서 집전체 포일 위에 양극활물질 및 음극활물질을 분말 형태로 부착하는 공정이 자성 테이프의 제조공정과 유사하다.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제작 과정에 해당 기술과 장비가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한국에서 반도체 칩 제조를 위한 청정실(clean room) 안에서의 제조 작업 경험도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어찌 되었든 한국의 회사가 전지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두에 서게 되었다.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성능이 날로 향상되면서 사용처를 이동용 전자기기의 전원에 만족하지 않고 큰 용량이 필요한 자동차의 동력원으로 검토되었다. 전기자동차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과정에 이른바 환경론자들의 수사(rhetoric)를 갖다가 쓰는 경우가 생겼다. 지구온난화와 도심 매연이 과도한 휘발유 자동차의 운행에 그 원인이 있으니 휘발유 자동차를 줄이고 배터리 자동차를 늘리면 된다는 이론이다. 전지 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나 회사들은 전지의 수요가 커지는 방향이니까 여기에 찬성한다. 주식시장은 새로운 시장이 열리니까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자동차 제조 회사는 전기자동차 개발에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지만, 정책이 그러니까 이 경향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하는 제철 회사들은 지금까지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 공장을 운영한다는 오명을 받고 있던 차에 새로운 수요가 생기니까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책을 입안하는 정치가들도 새로운 게임의 창출로 재미를 볼 수 있으니까 전기자동차에 대한 정부 보조금 제도나 휘발유 자동차의 단종을 법률로 규정하였다.

이 책에서 살펴보았듯이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형태를 단순히 변환만 할 뿐 전기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 리튬이온 배터리 전기차는 발전소에서 만들어 공급하는 전기를 충전해서 화학에너지의 형태로 틈틈이 배터리에 저장해 두어야 운행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로 100% 전기를 공급하면 화석연료의 사용을 영(0)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환경론자들은 원자력 발전소는 극구 반대한다. 결국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소비하는 화석연료가 석유나 천연가스 혹은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소에 전가될 뿐이다. 전기자동차의 운행으로 도심에서는 매연이 없는 거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배터리 자동차는 발전소에서 운반되어 오는 전기에너지의 손실 등 효율을 감안(勘案)하면 휘발유 자동차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를 소비하게 된다. 휘발유를 취급하는 대형 회사나 산유국들이 배터리 자동차 바람에 속으로 느긋한 이유이기도 하다. 도심에 수많은 정유소를 운영하기보다는 큰 물량을 소비하는 발전소에 석유를 공급하는 게 훨씬 쉽고 경제적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언론매체에서 정치가들이 수소전기차란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 수소연료전지를 채용한 자동차를 수소전기차라고 하나 보다. 물론 그 용어를 그들이 만들어 쓰는 거는 아니겠고 아마도 참모를 통해서 관련된 기술자가 챙겨 주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수소전기차란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정치인들이 배터리 자동차에 관한 정책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수소전기차는 배터리 전기차와 혼동하여 이해되기가 쉽다. 둘 다 내연기관 대신에 전기로 구동하는 점에서는 같으니까 말이다. 리튬이온 이차전지와 수소연료전지는 이온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영 다른 것이다. 배터리 전기차는 전기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나, 수소연료전지는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수소전기차는 충전이 필요 없고, 연료전지에 수소를 공급하면 공기 중의 산소를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동력원으로 쓰는 점에서 휘발유 자동차와 비슷하다. 배터리 전기차는 화력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공급해야 하지만 수소전기차는 그 차에서 그때그때 전기를 만들어 쓴다.

그런데 그 수소를 만드는 과정이 문제이다. 물을 전기 분해하면 수소를 얻을 수 있지만, 맹물로 가는 자동차가 열역학적으로 불가능함은 이미 초등학생도 아는 이야기이다. 현재 가장 경제적인 수소 가스 채집 방법은 천연가스를 분해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 열 즉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고 취급 시에 부주의하면 큰 폭발사고로 이어진다. 수소전기차 얘기는 한동안 수소 생산기술이나 공장 건설 붐을 이루었지만, 어디선가 수소공장 폭발사고가 나서 시찰하던 사람들이 사망하고 난 뉴스가 나온 뒤에 언론에 수소전기차 얘기가 쑥 들어갔다. 그 뒤에 정부에서 나오는 수소전기차 연구비나 업체 지원금의 공급이 대폭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수소전기차도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은 전기차라고 말하면 깨끗하고 환경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무를 태워서는 밥이나 짓고 보일러 정도나 목탄차를 움직일 수 있지만, 발전소에서 석탄이나 석유를 태워 전기를 만들면 전철의 운용에서 볼 수 있듯이 큰 힘을 낸다. 환경론자들의 얘기를 쉽게 풀어쓰자면 좀 불편하고 답답하더라도 큰 힘을 내는 휘발유 자동차보다는 목탄차나 타자는 얘기다. 항공유도 큰 힘을 내기보다는 비행기가 뜰 정도의 힘만 내는 연료로 대체하자는 얘기이다. 반대로 개발론자들의 주장은 언젠가는 그럴 날이 올 줄 모르지만, 아직 주위 여건이 그 정도는 아니니까 지금은 그냥 넘어가 보자는 얘기이다. 지구온난화 감소를 의한 탄소배출 줄이기 정책이 소위 선진국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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