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 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 이미자(1941~ ) 노래, <동백 아가씨>(1964)
위 노래는 1963년 당시 동아방송국의 라디오 드라마 <동백 아가씨>를 리메이크하여 1964년 발표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같은 이름의 영화 주제가라고 한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로 국내 가요 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 동안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올리며, 당시 신인이었던 이미자를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곡이다. 노래의 곡조가 일본의 엔카와 비슷하다고 한때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동백이 일본 꽃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동백나무는 서해, 남해, 동해안, 제주도에 널리 자생하고, 고려, 조선 시대에도 우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꽃이다. 동백꽃의 빨간색을 ‘그리움에 울다 지쳐서 빨갛게 든 멍’에 비유한 게 듣는 사람이나 따라 부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나 싶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이 노래는 금지곡에서 풀리게 된다. 이후 여러 가수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나 커버하였다.
동백은 우리 식 한자로 冬柏이라고 쓴다. 동백을 영어로 camellia라고 하는데, 이 식물을 런던에 처음 가지고 간 사람의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를 쓴 프랑스의 작가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의 아들인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가 1848년에 발표한 한 소설 작품으로 인하여 이 식물이 인류에게 유명해졌다. 당시 현지에서 소설이 히트 치면서 작가가 희곡으로 개작해 1852년에 초연됐으며, 1853년에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에 의하여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각색되었다. 그 소설의 원제는 'La Dame aux Camélias‘인데, ’ 동백꽃을 들고 있는 여인'으로 번역될 만하다. 그런데 일본인이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소설 제목을 '춘희(椿姫)'라고 했다. 이는 명백한 오역으로, 椿은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를 뜻하는 글자다. 우리나라에서 동백을 나타내는 한자는 柏(측백나무 백) 자이다. 겨울에 꽃이 피니까 冬柏(동백)이라고 부른다. 일본어로 만든 그 소설의 제목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춘희’가 되었다. 혹자는 원 뜻을 살려서 ‘동백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에서 ‘춘희’ 혹은 ‘동백 아가씨’가 가여운 여인의 이름이나 그 여주인공이 일하는 술집 이름(예를 들어 동백 바)이 되었다.
경칩(驚蟄)인 3월 초순이 되어야 피기 시작하는 다른 꽃과는 다르게 동백나무의 꽃은 특이하게 경칩이 되기 훨씬 전부터 핀다. 대략 11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2~3월에 만발하는 편이다. 이 시기에는 곤충이 별로 없어서 수정을 꿀벌 같은 곤충이 아닌 동박새나 직박구리에게 맡기는 조매화(鳥媒花)다. 동백꽃은 향기가 나지 않는다. 새는 향기를 못 맡으니까 향기가 새를 불러오는데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꽃 자체가 수려하고 풍경이 황량해지는 겨울에 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흰 설경 사이에 빨갛게 피는 모습이 보기 좋다. 동백꽃의 색이 잎사귀 색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돋보이는 색이라 조합이 좋다. 빨간색과 초록색은 보색이니까 그렇다. 동백꽃이 질 때는 꽃잎이 전부 붙은 채 한 송이씩 통째로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통째로 떨어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여인이나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였다. 개량종이 무척 많고 색상 분류도 흔히 떠올리는 홍백(紅白)의 동백 말고도 분홍 동백, 줄무늬 동백 등으로 다양하다. 잎사귀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특이한데, 기본적으로 낙엽이 잘 안 지는 상록수 계열이면서 잎이 타원형으로 넓은 편이다. 다른 나무에 비하여 잎이 두껍고 반짝거리며, 어린잎의 경우 특히 연두색이 섞인 맑은 녹색으로 빛난다.
우리나라의 부산, 여수 등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동백꽃을 많이 볼 수 있다. 남부지방의 곳곳에 동백에 얽혀 있는 지명이 꽤 많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으로 시작되는 인기 대중가요도 있다. 서울 등 중부지방은 추워서 자생하기 힘든 환경이지만,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최근에는 아파트 등 주택가에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위 사진은 필자의 아파트 단지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동백꽃이다. 여러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소재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의 경우, 강원도 방언으로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부르는 것과 연관된다. 동백꽃이 자생하지 않는 강원도 지역에서 꽃의 색과 모양, 나무 형태 등이 전혀 다른 생강나무를 동백으로 부르는 이유는 동백기름을 머리 미용으로 사용하던 시절, 비싸고 귀한 동백기름 대용으로 생강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하고 이를 머릿기름으로 사용하면서 동백기름이라고 부른 데에 기인한다고 추정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늘 섭섭해 울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1934)
동백꽃이 지고 봄이 짙어지는 4~5월이 되면 모란꽃이 핀다. 모란의 본래 우리 한자음은 목단(牧丹)이다. 활음조 현상 때문에 '모란'이라고 읽는다. 모란은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부귀의 상징으로 쓰였다. 모란은 커다란 꽃을 피워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 중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모란은 흔히 작약과 많이 헷갈린다. 꽃의 생김새와 개화 시기, 전체적인 생김새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약 뿌리에 모란 줄기를 접붙이는 방법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로 모란과 작약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모란은 작약과 비슷한 나무라는 뜻으로 ‘목작약(木芍藥)’이라고도 한다. 작약은 크고 탐스러운 꽃이 함지박처럼 넉넉하다고 해 ‘함박꽃’이라고도 부른다. 모란의 개화 시기는 4~5월, 작약의 개화 시기는 5~6월이지만, 요즘은 모란과 작약이 동시에 꽃을 피우는 경우도 많다. 모란과 작약은 꽃의 모양이 비슷하고, 개량종도 많아 꽃만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모란의 꽃봉오리는 장미처럼 끝이 뾰족하고, 작약 꽃봉오리는 공처럼 둥글다. 모란꽃은 작약꽃보다 대체로 큰 편이다. 모란과 작약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모란과 작약은 모두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식물이지만, 모란은 낙엽관목, 작약은 다년생 풀이다. 나무인 모란은 나뭇가지 끝에서 새순이 돋지만, 풀인 작약은 땅속에서 붉은 싹을 틔운다. 나무인 모란과 달리 작약은 알뿌리 한 포기에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곧게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겨울이 되면 나무인 모란은 잎이 떨어진 가지가 남아 있지만, 풀인 작약은 뿌리만 남고 줄기를 찾아볼 수 없다. 모란은 보통 2~3m 정도까지 자라며, 작약의 키는 60cm 정도다.
위 시는 김영랑(1903~1950)의 대표적인 서정시로서 원하는 바를 체념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기다려보겠다는 결연한 시인의 의지가 보인다. 화려한 모란꽃은 대엿새 펴있다가 지고 나면 그만이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다시 화려한 꽃이 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또 기다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래 노래는 영랑보다 한참 뒤에 나타나 소설가, 시인, 화가, 가수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의 소위 ‘전방위 예술가’로 불리는 이제하(1937~ )가 작사 작곡 노래한 곡으로 가수 조영남(1945~ )의 애창곡으로도 유명하다. 동백과 모란을 묶어서 우리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 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제하(1937~ ) 노래, <모란 동백>(1998)
신라 선덕여왕이 공주 시절 당나라에서 온 모란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겠다고 추측했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그림과 동봉된 모란 씨를 심었더니 실제로 향기 없는 꽃이었다고 한다. 옛날에 중국에서는 모란을 그릴 때 나비와 고양이를 함께 그렸는데,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며, 고양이는 모(耄)로 70세를 상징하며, 나비는 질(耋)로 80세를 상징한다. 즉 모란과 나비, 고양이를 함께 그리면 부귀모질이란 뜻이 되어 70~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고양이를 그릴 수 없으면 나비를 넣을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둘 다 빼고 모란만 그렸다고 알려진다. 흔히 알려진 화투의 6월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