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지만 따뜻한 사람
선물 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한 살 많은 사람을 존경하게 되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나는 군대에서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2014년도 군대를 배경으로 탈영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통과 실제 행해졌다 군대 내 악습들을 실제와 유사하게 스토리를 풀어내 많은 인기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던 작품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유사하게 다뤘던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 한 2014년 이후 군대는 그동안 이어져온 악습과 부조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폭행과 폭언을 비롯한 많은 병영생활이 개선되었지만 폐쇄적인 군대 특성상 내가 군복무를 시작했던 2017년도 까지 많은 악습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매 년 군대 내 가혹행위와 부조리로 인한 사건 사고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삼보일배를 하듯 눈에 보이는 모든 선임들에게 "수고하십니다"를 반복하고 내가 한 작은 말이 와전되어 소문이 되고 동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집합 당해 연대 책임을 묻고 "나다 싶으면 나가"에서 "나"를 맡아 모든 작업과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이등병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힘은 동기들도 있었지만 나의 맞선임 덕이 제일 컸다.
사람이 사람을 존경하는데 이유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앞서 이룬 후 성공담을 나누고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 수많은 도전과 땀으로 일궈낸 재물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나누는 사람 이렇게 존경에는 성공 다음에 오는 선행이 존경으로 이어진다 생각했는데 맞선임과 군생활을 하면서 그 사람의 성과가 아니라 마음에 존경하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부대는 6개월 동기제를 실시하고 있었기에 5월 군번인 나는 같은 해 1월 군번과 6월 군번까지 전부 동기였다. 전역까지 있어야 할 부대에 운전병으로 전입을 갔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같은 수송부 운전병 동기 중 제일 똘똘하다는 이유로 모두가 기피하던 수송부 배차 업무를 하는 행정병으로 군생활을 해야 했다. 부대 내 많은 행정병이 있지만 모든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인정하는 제일 힘든 행정병이 수송부 배차업무를 하는 행정병이었고 그런 사실 쯤은 알지 못한 채로 얼렁뚱땅 행정병이 된 나는 일과 시간 내내
왜 내가 신청한 배차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묻는 전화에 매일을 시달리며 간부라는 고래들 사이에 새우등이 터지는 일과를 보내야 했다. 여담으로 내가 전역한 후 내 부사수는 스트레스 때문에 전화선을 뽑아 놓고 생활관으로 올라갈 만큼 힘든 보직이었다.
수송부에는 배차가 없는 운전병들과 나를 포함한 행정병 두 명 그리고 정비병들이 내려와 일과를 한다. 내 맞선임은 6명이었지만 대부분 운전병 선임들이었기에 운행을 나가는 일이 많았고 수송부는 정비병들과 행정병들이 지키며 일과를 해야 했다. 내가 닮고 싶고 존경하는 맞선임은 정비병으로 16년도 12월 군번으로 내가 전입 갔을 시기 일병이었지만 일도 잘하고 까칠하지만 따뜻한 매력으로 선임과 후임 사이 평판 좋고 다음 분대장으로 예정된 선임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수송부 사무실에 앉아 신청 온 배차를 확인하고 간부들 사이를 조율하며 운전병들 운행과 자력 관리를 한다. 그리고 종종 수송부 사무실에 들어온 간부들과 선임들에게 동정의 눈빛을 받은 후 동정에 대한 대답으로 취향에 맞게 커피를 타드리는 일을 반복했다.
이등병과 일병들은 사무실에 있는 커피를 타먹기 눈치가 보이지만 행정병이란 특권 아닌 특권으로 일병부터 마음대로 커피를 타서 마실 수 있었다. 수송부에 오는 간부들에게 일을 멈추고 커피를 타고 선임들에게 더운 날은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추운 날은 따뜻한 커피를 타주다 보니 믹스 커피를 타는데 나름의 노하우가 생길 정도였다.
종이컵에 화이트모카 믹스 한봉을 넣고 뜨거운 물을 2초 정도 얼음을 3개 정도 넣고 몇 번 흔들어 커다란 얼음을 적당히 녹인 커피를 들고 정비병과 행정병들이 쉬는 꼴을 보지 못하는 수송관님이 자리를 비운 타이밍에 맞춰 차량을 정비하고 있던 맞선임에게 찾아가 흡연장 방향을 손가락으로 조용히 가리키고 준비한 커피를 전하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시작됐다.
같은 중대 다른 분과의 동기들은 선임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은 내가 잘못한 일이 없어도 더 잘하기 위해 혼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몇 번을 곱씹으며 혼났는데 내 맞선임은 달랐다.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말 끝에 "그래 이 새끼야"를 붙이지만 직접 들어본 사람만 아는 그 말투는 설명하지 못할 만큼 따뜻했다.
정말 친한 형처럼 장난을 치면 팔을 툭툭 치지만 폭력이지만 폭력과는 다른 어딘가의 친근함이었다.
"000 일병님은 손이 너무 거치십니다. 그러다 진짜 저희 마음의 편지 씁니다." 장난기 가득 섞어 말을 건네면
"그래 이 새끼야 일로와 넌 더 맞아야 해" 웃으며 마찬가지로 장난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선후임간에 허울 없이 지낼 정도로 좋은 맞선임이었다.
선임이 담배를 하나 태우고 같이 커피를 마시며 야간 근무에 탄약고에서 뭘 할 건지 실없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친한 형과 몰래 숨어 일탈을 하는 듯한 재미와 거친 말투 속 따뜻함은 군생활을 버티게 했다.
부대에서 막내인 내 동기들이 사고를 치면 최고참 선임이 맞선임을 불러 우리를 혼내라 네가 얘기해라 했지만 그럴 때면 우릴 조용히 불러내 "너 지금 나한테 뒤지게 혼난 거다. 알았나" 한 마디만 할 뿐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선임이 되고 사회에 나와 일도 해보니 누군가의 잘못을 덮고 내리는 비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자처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 간다.
맞선임과 있었던 일을 길게 설명하고 싶기도 하지만 후임인 내가 존경한다 말을 한다는 사실이 맞선임과 있었던 시간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 줄 거라 생각한다.
000 일병님에게
형 잘 지내? 형도 나도 병장 전역했지만 그래도 형은 일병이 더 잘 어울려 ㅋㅋ 전역하고 맨날 형 보러 울산 간다 이야기했지만 한 번을 못 간 거 너무 미안하게 생각해 울산 오면 킹크랩 사주고 좋은 술도 사준고 형이 엄청 꼬셨는데 결국 한 번을 못 갔네 벌써 전역한 지 4년의 시간이 흘러 버려 형 번호를 화면에 띄워 놓고 전화 버튼을 누르기 망설임이 생겨 버려 이렇게 내 마음을 먼저 전해
형 전역하는 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무런 날도 아닌 듯 평소랑 똑같이 수송부 사무실 내 옆 의자에 앉아 우리 동기들한테 둘러 쌓여 서로 거친 말이나 내뱉고 형한테 끝까지 까불다 마지막으로 한 대 맞기도 하고 그랬었지만 우리 속으로 너무 아쉬웠어 나한테는 정말 닮고 싶고 친 형처럼 편하고 가깝게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둬 형은 전역하고 바로 일을 시작하고 나도 이제 일을 시작해서 이제 만나기 더 힘들 진거 생각하면 내가 학교 다닐 때 진짜 애들이랑 같이 울산 안 간 거 조금 후회된다.
훈련 때 같이 수송근무반으로 있으면서 간부님들 욕 엄청 같이하고 훈련도 힘들었지만 우리 수송부 인원들이랑 같이 밥 먹고 씻고 했기 때문에 훈련도 버티고 군생활도 잘 버틸 수 있었어.
우리 동기들 때문에 왕고 선임들한테 자주 불려 가서 우리 대신 혼난 거 다 알고 있었는데 그때는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이라 생각해서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어 앞장서서 우리한테 날아오는 싫은 소리와 부조리들을 다 막아줘서 고마워 형도 그때 일병이었는데 무슨 깡으로 우리 감싸고 그랬는지 우리도 시간 지나고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 알게 됐어.
형이 우리한테 해준만큼 나도 후임들한테 싫은 소리 안 하고 친구처럼 지내고 그랬어 나 전역날 수송부 후임들이 휴가 써서 나 보러 와 놀아줄 만큼 잘 지냈어 다 형한테 받은 거 똑같이 했는데 애들이 다 나 좋아하더라고 ㅋㅋ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끄럽지만 보고 싶고 형이랑 다른 선임들이랑 동기들이 다 같이 모여 음료수 하나씩 들고 담배 피우던 수송부 흡연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 기억 때문에 억지로 끌려갔던 군대가 좋은 추억으로 나에게 남았어. 형도 군대가 좋은 추억이고 그 이유안에 우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형 결혼할 때는 꼭 나한테 연락해! 내가 냉동 얻어먹은 거 몇 배로 해서 축의금 내고 제일 많이 축하해 줄 테니까
우리 수송부 다 같이 꼭 한번 보자 건강하게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