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가진 무게에 대해 배웠습니다.

선물 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by 온규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우리가 첫 제자인 신입교사셨지만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모습은 베테랑 교사로 마음이 정말 따뜻한 진짜 선생님이셨다.

20대 중반의 젊은 담임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반 전체 학생들을 안아주며 "프리허그"에 대해 먼저 알려주셨다. 따뜻한 마음만큼 따뜻한 체온으로 따뜻한 말을 전하는 "프리허그"는 5학년 4반만의 따뜻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본격적으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시기에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며 배우게 될 학문의 기초를 다지는 일보다는 말이 가진 힘과 사람을 대하는 행동의 중요성을 중요하게 알려주시는 따뜻함 덕분에 어딜 가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고 선생님들도 이른 퇴근을 하는 토요일이면 학생들과 함께 하교를 하며 아기새 같이 조잘거리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동네 빵집에 들러 간식을 사주시곤 했다.

등굣길에도 어느새 학생들이 모여 마치 보디가드라도 된 듯 동그랗게 선생님 주변을 둘러싸 지난밤 집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거리며 학교를 향했다. 학생들을 어린아이가 아닌 각자 다양하고 재밌는 생각을 가진 한 사람으로 대해주시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셨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잘 따르는 선생님이 돼 있으셨다.


학생들에게 칭찬을 아끼시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시는 만큼 학생들이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고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지도해 주셨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은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무리를 형성해 놀이를 하는 분위기가 형성 돼 있었다. 그렇다고 반학생들끼리 친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 지도에 따라 학급과제를 하는 게 아니라면 몇몇 짓궂은 학생들이 여학생과 놀이를 하는 남학생을 보고 "얘 여자랑 놀아 얘도 여자인가 봐" 하며 놀리는 일이 있어 그런 분위기는 초등학생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있었다.


그날은 학교가 일찍 마치는 토요일이었다. 친구들과 수업이 끝나자마자 방방을 타러 다른 학교 앞 문방구로 향했다. 다른 학교 앞이지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정신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방방에는 우리들 밖에 없었고 합기도장에서 연습한 백텀블링을 자랑하며 초등학생의 귀여운 허세를 부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다. 문방구에서 500원을 내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방이었기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들어오면 작은 기싸움을 벌이는 일도 종종 일어나는데 그날도 다른 학교 학생들과 기싸움이 일어났다. 어떻게 보면 초등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이곳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서로 욕을 하거나 주먹을 부딪히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방방에서 더 많은 구역을 차지해 더 높이 뛰오 오르며 놀기 위한 기싸움에서 승리하고 지친 채로 방방에 누워 쉬고 있던 중 같은 반 여학생 무리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같은 반이고 친한 여학생들이었지만 친한 만큼 서로에게 틱틱거리고 모질게 대하는 초등학생들의 심술이 그 순간에도 발동해 우리는 여학생들이 뛰어노는 자리에 가서 체중을 싫어 가며 더 높이 뛰어오르고 여학생이 넘어지면 정신없이 뛰고 웃었다.

우리들의 철없는 장난에 기분이 상할 만큼 상한 여학생 무리들은 씩씩거리며"우리도 놀게 저기 구석에 좀 가있어, 왜 이렇게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거야?" 따져 물었고 장난으로 시작한 일에 서로의 감정이 조금씩 상하기 시작했다.


학교 안팎이든 절대 욕을 하지 말고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말을 조심하라는 우리 학급의 절대적인 규칙이 있었던 만큼 서로에게 절대 욕을 하며 상한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목소리는 커지고 말다툼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서로 떼를 쓰고 논리는 없는 말다툼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초등학생의 어휘력 한계로 상한 감정을 표현할 말들은 떨어지고 결국 누군가의 거친 욕이 한마디 들려왔다.

그 한마디가 신호탄이 돼 누구를 뭐라 할거 없이 한 마디씩 모두 거친 말을 뱉어낸 다음에야 말다툼이 끝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돌아오는 월요일 주말 동안 쓴 일기장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확인한 담임 선생님은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방방에 있었던 친구들을 호명하며 방과 후에 교실에 남으란 말을 남기신 채 무거운 얼굴로 수업을 이어나가셨다.

남으라고 한 친구들을 보고 무슨 일인지 예상이 됐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과 불안한 마음으로 남은 모든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루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남은 우리들에게 예상한 대로 방방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적으라 하셨다. 생에 첫 진술서였다. 그렇게 첫 진술을 마치고 책상 위에서 무릎을 꿇어앉아 선생님의 실망감 섞인 화난 목소리로 한참을 혼이 나야 했다. 살면서 그렇게 무섭게 혼난 적은 없었을 정도로 크게 혼이 났다.

한참을 책상 위에 올라가 혼이 난 후 우리는 매일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명심보감 언어 편"을 쓰고 외우며 반성해야 했다. 한 달을 넘게 명심보감 언어 편을 쓰고 외우며 어려운 한자가 가진 뜻을 알고 말의 무게를 느끼며 반성했다.

초등학생들 몇 명이 여자 남자 편을 갈라 거친 말을 하며 싸운 어쩌면 흔한 일이지만 "사람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살 인생이 달라진다 "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었고 그런 교육을 잘 따르고 바른 행동을 하던 귀여운 학생들이었기에 더 큰 실망감에 크게 화를 내신 거라 생각한다.

하루만 크게 혼내고 그만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 한 달을 넘는 시간을 이용해 알려주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나는 말 한마디의 무게를 아는 사람으로 커 갈 수 있었다.

000 선생님에게 쓰는 편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6살이 됐습니다. 저희를 처음 보셨을 때 선생님 나이도 이쯤이셨을 거 같아요. 한 없이 어리기만 한 저희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잘못한 일에는 차갑게 지도해주시는 모습에 믿을 수 있는 진짜 어른으로만 바라봤어요. 그렇지만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저는 따뜻하게 웃고 있는 어른이자 교사의 모습 보다 화를 내고 속상해하셨던 눈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 노력했던 날들이 많지만 지금 제 모습을 보여드리기에는 부끄러운 모습이 앞서 편지로 지금 저의 이야기와 선생님 반의 학생이라 좋았던 저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합니다.

군대를 가기 전 같이 선생님 반이었던 친구와 함께 인사를 드리고 싶어 졸업한 학교에 찾아갔지만 끝내 뵙지 못하고 지금까지 시간이 흘러 많은 아쉬움이 남아요 그때 문자로 오랜만에 소식을 전했는데 저희를 잊지 않고 정말 반갑게 답장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말썽만 피우던 제자들의 연락을 오히려 감사하다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진짜 선생님 다운 선생님으로 저희 마음에 남아 찾아뵙고 싶어요.


선생님만큼 괜찮은 어른이 되어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아직까지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저희 집 근처에 사시는 것도 알고 남편분과 산책하시는 모습도 봤지만 서로 나은 모습으로 앞에 서고 싶어 인사드리지 못한 기억이 있어요 저도 모자 쓰고 트레이닝복 입고 강아지 산책 중이었거든요..


그때 마지막으로 안부 전한 후 군대 다녀오고 대학교 졸업하고 인테리어 창업을 해서 일했었어요 지금은 다른 목표가 생겨서 그만뒀지만 일 년 동안 재밌게 일하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아닌 창업을 선택하고 자리 잡을쯤 다른 목표로 그만둬서 그런지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는 느낌에 불안한 마음에 크게 자리 잡은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 더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는 거 같아요 진짜 어른한테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대학 졸업이 다가 올 시기에 친구들은 뚜렷하게 취업하고 싶은 기업을 목표로 하고 다니고 싶은 건물들을 찾았지만 저는 가고 싶은 건물이 아닌 저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로 돈을 벌고 살고 싶어 창업도 해보고 다른 목표를 세웠어요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한 행동이고 선택이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요즘 많이 느끼고 있어요.


토요일이면 같이 하교를 하며 시끄러운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시다 간식을 사주시고 일주일에 몇 번씩 반 전체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시던 따뜻함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편을 갈라 욕을 하며 싸웠다는 이유로 한 달을 넘게 방과 후 명심보감 언어 편을 쓰고 외우도록 하고 반성시켜 주신 덕분에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으로 커 갈 수 있었어요 저희 반 반장을 했던 친구가 보령으로 전학 가던 그날 작은 파티를 열어주시고 친구들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다 같이 눈물을 흘리던 날 이별의 아쉬움이 뭔지 알 수 있었어요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교과 과목 보다 사람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방법을 더 중요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5학년 4반, 긴 인연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곁을 지키는 친구들과 아쉽게도 짧은 인연으로 지금 소식을 모르는 친구들이 있지만 가능하다면 다 같이 모여 선생님을 찾아뵙고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따뜻한 어른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금방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어리다는 변명 뒤에 숨어 거칠게 표현할 줄 밖에 모르던 저에게 따뜻함을 알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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