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추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선물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90년대의 막차를 탑승해 태어난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이웃이라는 이름아래 나를 키워주시는 분들이 많은 세상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늦으실 때면 옆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고 비디오테이프로 녹화된 만화영화를 보며 기다렸다. 주말이면 갑자기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놀자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엄마는 짜장라면을 끓여주시곤 하셨고, 놀이터에서 놀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할 때면 가까운 집 문을 두드려 "아줌마 저 화장실 한 번만 쓰면 안 될까요?" 물으면 처음 본 나에게 흔쾌히 화장실을 안내해 줬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개인주의 때문일까 지금은 도통 찾아볼 수 없는 문화들이다. '나만 생각하며 살자' 운동을 한 적도 없는데 작은 피해가 와도 크게 확대하고 그것을 기회로 삼아 금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금이다. 현재는 이웃이란 말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
나는 이웃과 함께 자랐다.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는 많은 세대수가 모여있는 작은 평수의 주공아파트였다. 주말 늦은 아침 일어나면 창 밖에서 또래 친구들이 모여 뛰어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빼고 재밌게 놀고 있는 친구들 소리를 듣고 나면 같이 뛰어놀고 싶은 항상 마음이 급해졌다. 이불을 발로 차고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친구들 사이로 뛰쳐나가려 하면 나를 붙잡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밥은 먹고 나가야지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뛰어나가는 애가 어딨어"
허둥지둥 밖에 나가 놀려하는 나는 붙잡혔고 엄마는 금방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급해졌지만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던 어린 나이의 나는 밥 몇 숟가락을 국에 말아 들이킨 후에야 나갈 수 있었다.
주차장이지만 차가 빠지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기 좋은 공터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있었다. 형 누나 동생부터 친구까지 처음 시작은 한두 명 밖에 없었지만 놀다 보면 어느새 동네 아이들이 전부 밖에 나와 같이 놀고 있었고 그렇게 우리들은 다 같이 주말을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얼음 땡" 놀이를 하며 공터가 된 주차장을 누비다가 지치면 놀이터에 앉아 만화 영화에서 처럼 물이 솟아 나오길 바라며 괜히 흙을 파보기도 했다. 우물이라도 터지길 바랐던 구멍은 다른 친구의 아이디어로 함정으로 바뀌기도 했다. 고작 발 한쪽이 빠질 만한 깊이의 구멍이지만 친구가 꺼낸 "함정"이라는 단어 하나에 모두의 눈은 초롱초롱 해져 각각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모아 와 그럴싸한 함정을 만들었다.
'이제는 누군가 저 함정을 밟고 꽈당 넘어지기만 하면 돼'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무척이나 티가 나는 함정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지만 우리를 찾아온 건 지나거든 아저씨의 불호령이었다.
"이런 구멍 누가 밟고 넘어져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얼른 다시 구멍 메워 놓고 집에 들어가"
소리를 높여 무섭게 말씀하시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작은 구멍이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빠진다면 크든 작든 분명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재밌는 장난이라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만화에서 처럼 깊은 함정에 빠져도 몸을 털고 멀쩡하게 일어나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일이었다.
구멍을 메우고 아저씨한테 혼이 나 기가 죽은 채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밖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아저씨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
아저씨한테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엄마는 같은 행동을 지적하지도 아저씨가 본인 아이를 혼냈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하지 않으시고 잘못에 대해 생각하라고만 말씀하셨다.
기운을 차리고 친구들과 다시 모여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기로 했다. "경찰과 도둑"은 경찰과 도둑으로 팀을 나눠 경찰은 도둑을 잡으면 되는 간단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 최고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놀이다.
팀을 정하고 도둑들은 흩어졌다. 아파트 단지 전체로 흩어졌기 때문에 동 하나하나의 계단을 모두 확인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해서 경찰팀이 매우 불리했다. 도둑팀 중 한 곳에 숨죽이고 가만히 숨어 버티는 친구들도 있고 달리기에 자신이 있으면 당당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경찰들을 몰고 다니다 여유롭게 도망쳐 스릴을 즐기기도 했다. 경찰 팀 중에 도둑 팀 친구들을 찾다 지쳐 집에 돌아가는 친구들이 생길 정도로 끝은 항상 어설픈 놀이었지만 동네 친구들이 여러 명 모인다면 빠질 수 없는 놀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어설프게 끝이 나고 해가 철길 옆으로 넘어갈 때쯤 집에 돌아와 6시 넘어 시작하는 만화를 보려고 TV앞에 앉았다. 씻지도 않고 집에 오자마자 TV 앞에 앉아 만화를 본다고 혼이 났지만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어 손만 후다닥 씻고 다시 TV앞에 앉았다. 만화가 끝나면 오늘 저녁은 엄마가 햄을 구워줄지 기대를 해보고 일기는 내일 몰아서 써야지 내일의 나에게 부탁하며 하루를 끝냈다.
같이 뛰어놀던 친구들과 동네 어른들에게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친구들 그리고 항상 놀이터를 지키던 우리들에게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주시던 동네 어른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몇 년 전 시작된 재개발로 동네 곳곳 추억이 남아 과거의 일을 머릿속에 자동 재생시키던 장소들이 지금 전부 사라졌지만 오래도록 기억을 공유할 거 같습니다. 지금 흐릿하게 떠올릴 수 있는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도 동네가 허무하게 사라진 거처럼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면 허무하게 잊히겠지 생각합니다.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나이 같은 시기에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연히 마주친다면 매우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생각해요. 같은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저를 기쁘게 합니다.
더운 여름날 놀이터 옆 정자에 누워 바람을 맞았던 일, 겨울날 눈이 오면 주차장에 눈사람 가족을 만들어 함께 봄을 기다렸던 일들이 떠올라 지금 감사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친구라 말하기 어려운 사이가 됐지만 꼭 다시 친구로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면 좋겠어요
동네 어르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 드립니다. 노인정에 모여 앉아 놀고 있는 저희들을 흐뭇하게 바라봐 주시는 것만으로 보호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 기분이 정말 따뜻했습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언 마을이 필요하다." 말처럼 위험한 행동을 하면 걱정해 주시고 잘못된 행동을 하면 혼내주신 덕에 이만큼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말 많은 복 받은 아이였습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놀고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부채질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시던 저희 동네만의 소란스러움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도 아이가 생긴다면 제가 자라난 따뜻함 속에서 키우고 싶습니다. 이웃 어른들이 경계해야 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따뜻한 이웃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이웃의 따뜻함을 먼저 배우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