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마라톤에는 경기에서 완주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페이스메이커"들이 있다. 과하게 달리다 금방 지쳐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 달려 뒤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함께 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함께하면 평소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우리의 하루에도 "페이스메이커" 같은 긴장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서 달리기가 제일 빠른 사람을 묻는 다면 항상 내 이름이 친구들 입에 오르내렸다. 같은 반에서 달리기 기록 측정을 하면 항상 제일 좋은 기록을 냈고 체육대회를 하면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기에 내 이름이 오르고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체육대회 날 반 대표로 나와 달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결승선을 앞에 두고 다른 친구들이 얼마큼 왔는지 뒤 돌아 확인한 후 결승선을 통과한 적이 있을 만큼 건방지지만 항상 자신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떨어진 외곽에 있는 남자 중학교에 진학했다. 남자 중학교였던 만큼 운동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첫 체육대회가 다가올수록 들뜨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체육대회 보다 중간고사가 먼저였지만 교실 뒤편에는 운동을 잘하고 활발한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다 모여 축구 포지션을 정하고 한 친구는 다른 반을 찾아가 그들의 전략을 분석하고 순위를 예상하는 일을 하기 바빴다.
"내가 4반 000이랑 같은 초등학교 졸업해서 물어봤는데 축구 잘하는 애들 엄청 많대 그래서 4반이 예선은 쉽게 올라갈 거 같아"
"8반에도 힘 잘 쓰는 애들 엄청 모여있어 아마 축구도 잘할걸? 8 반도 예선에서 피해야 돼"
대진표가 나오기 전부터 다른 반의 전력을 파악하느라 학교는 들떠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 이름도 나오기 시작했다. 함께 중학교를 진학한 초등학교 친구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반에서도 내가 달리기가 정말 빠르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로 나는 다양한 스킬과 센스가 필요한 축구는 자신이 없었지만 결승점만 보고 달리는 일은 자신이 있었고 새 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실시한 체력측정에서 50미터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체육 대회 날이 다가올수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다른 반 친구들이 찾아와 내 50미터 달리기 기록을 묻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런 일이 생기다 보니 마음 한편에는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체력측정에서의 내 모습을 지켜본 같은 반 친구들은 내가 달리기 종목에 1등을 한 후 높은 점수를 획득해 종합 1등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역시 내가 초등학교 시절 시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받았으니 학교 체육대회에서도 1등을 할 거라고 내 속도 모르고 자랑하고 다니고 있었다.
내가 부담감을 느끼는 큰 이유는 다른 반 친구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체육대회 전에 내 이름을 다른 반 친구들이 알게 된 것처럼 육상 대회 경험이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친구와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은 당연히 그 친구가 우리 중학교에서 제일 빠르고 체육대회에서 1등을 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내가 1등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서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응원하는 친구와 그 친구를 응원하는 친구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육상 대회 경험은 있었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본 적 없었기에 친구들의 기대가 커질수록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부담감만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 친구도 주변에 기대 때문에 부담감을 느껴 나와 다른 조에서 뛰기를 바랐다고 한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체육대회가 점점 다가왔다. 부담감은 체육대회 당일이 다가올수록 크기를 모르고 커져갔지만 지금까지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기에 2등을 한다는 건 그때의 나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나를 응원하는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달리기에서 1등을 했는지 생각해 봤다. 나는 또래보다 항상 키가 컸고 엄청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 가변운 몸에 큰 보폭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달려 1등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등을 놓치지 않은 이유에 작은 초등학교와 작은 시 대회에서만 뛰어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았다.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만큼 절대 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 앞 산책로를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육상 선수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모르지만 체력이 좋아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타이어를 매달아 달려볼까 생각할 정도로 그때의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체육대회 당일, 남자들만 있는 체육대회는 초등학교 때 경험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여기저기서 굵은 응원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승리를 향한 힘찬 목소리는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 두근거리게 했다.
점심시간을 통해 예선을 진행했기 때문에 체육대회 당일에는 본선 경기를 진행했다. 아침부터 진행된 본선 경기 끝에 결승전에 올라가는 반들이 정해졌고 그 결과는 예상했던 결과를 비슷하게 따라갔다.
우리 반 반장은 체육대회 전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다른 반의 전력을 분석해 어느 반이 결승에 올라갔는지 예상했는데 그 결과는 대체로 적중하고 있었다. 반장은 자신의 예상이 적중할 때마다 신이 났고 우리 반도 진행 되는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체육대회 1학년 전체 우승에 가까워졌지만 나는 마냥 웃고 있을 수 없었다.
축구, 농구, 피구, 씨름 등 반 전체를 단합하게 하고 경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종목들이었지만 단연 체육대회의 꽃은 계주 이어달리기였다. 이어달리기 마지막 주자와 50미터 달리기 반 대표는 "나"였다. 다른 반의 쟁쟁한 라이벌들, 내가 1등을 할 것으로 예상한 반장과 반 친구들의 기대는 부담감을 절정으로 만들었다.
며칠을 부담감에 시달려 나름의 특별 훈련을 했지만 '정말 내가 우물 안 개구리가 맞았으면 어떡하지?' 생각에 자신감을 잃은 채 떨리는 마음으로 50미터 달리기 조 편성을 확인했다.
조 편성 결과 다른 학교에서 제일 잘 달려 다른 반 친구들이 나와 내기를 하게 만들었던 그 친구와 다른 조의 편성됐다.
내기를 했던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빅 매치가 성사되지 않은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고 같은 반 친구들은 내가 속한 조에서 무난히 1등을 해 체육대회 전체 우승이 쉬 어질 것이라 좋아하기도 했다.
반면 내 기분은 이상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실망에 가까웠다.
'부담 느끼던걸 생각하면 다행인데 왜 허탈하지?'
조 편성을 확인하고 허탈한 감정을 느낀 걸 보면 내가 우물 안 개구리가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됐다. 떨리는 마음은 사라졌지만 기대도 같이 사라졌다. 이후 내가 속한 조에서 무난히 1등을 했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피하고 싶던 마음 뒤에 숨어있던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실망감을 가지고 왔고 아직 나는 우물 안 개구리다.'
라이벌로 생각했던 000에게 쓰는 편지
안녕! 우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다니는 3년 동안 서로를 신경 쓰며 지낸 거 알고 있어
1학년 체육대회 때 네가 이길지 내가 이길지 내기하고 싸우는 친구들까지 있을 정도라 기록 측정이라도 하는 날에는 항상 부담이었는데 나중에 너도 그랬다고 솔직히 이야기해 줘서 고마웠어.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불안과 열등감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긴장감이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됐거든! 1학년 체육대회 날 너랑 같은 조에서 달리게 될까 봐 학교 끝나고 집 앞 산책로 달리면서 나름 훈련도 했었는데 그건 아무도 모를 거야 너랑 같은 조가 돼도 상관없다는 듯이 여유 있는 척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어 그래도 네가 있어서 처음으로 꼭 이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훈련도 하고 친하지는 않았지만 너라는 친구가 좋은 긴장감으로 작용해 나를 발전시킬 수 있었어.
꼭 달리기 뿐만 아니라 공부 그리고 사회에 나와 할 수 있는 도전들에도 너와 같은 친구가 항상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혼자서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만족하고 그만할 일들을 좋은 자극과 긴장감이 있으면 나를 더 움직이게 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 정말 많은 도전을 하고 살아가야 해 그때 너처럼 라이벌 없이 혼자 달리는 경기가 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1등으로 통과해 무수히 많은 도전을 하는 다른 이들에게 너와 같은 긴장감이 되고 싶어
너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좋은 페이스메이커를 만나 너의 도전을 완주하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