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다시보는 이야기]

by skybunny

깊은 밤,

성 안의 한 구석

에릭 왕자는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편지에는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당신만을 위해, 나는 모든 걸 버렸어요.”



결혼식을 앞둔

그의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에릭은 입술을 깨물며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원한 적이 없는데…”


그때, 어둠 속에서

우술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는 적으로만 보였던 그녀가

오늘은 묘하게 담담한 얼굴이었다.


“또 그 애 때문이지?”

우술라의 질문에

에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 애는 목소리를 내어주고,

바다도 버리고, 심지어 가족까지 떠나왔어…

하지만 그건 전부… 내가 부탁한 게 아니야.”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나는 자유롭게 웃고 싶었고,

나답게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녀와 있으면 늘 빚진 사람처럼 숨이 막혔어.”


우술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애는 순수하다고 믿겠지.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걸 묻지도 않고

자기 방식대로 모든 걸 던져버린 거야.

그건 사랑이 아니야, 자기 욕망일 뿐이지.”


에릭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맞아. 나는 항상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사실은… 곤란했어, 부담스러웠어!!

내가 원하지 않은 희생이 쌓일수록….

그녀가 두려워졌어.”


우술라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해.

그 애는 널 사랑한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강요한 거지.”


순간, 에릭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인어공주의 희생은 눈부셔 보였지만,

사실은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철저히 이기적인 사랑이었다는 것을.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촛불이 흔들렸다.

그 불빛 속에서,

에릭은 처음으로 마음속에 숨겨둔 말을

입 밖에 냈다.

“나는… 그녀가 무섭다.”





“사랑은 상대를 옭아매는 게 아니라,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