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만 오면 아주 힘이 바짝 들어간다. 그냥 아무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생각해 놓고 이 흰색 배경은 너무 부담된다. 분명 샤워 중에는 아주 낙서장처럼 뭐든 다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자신감이 하수구에 다 흘러갔나 보다.
카페 와서 브런치 로그인한 게 실수였다. 옛날에 쓴 글들을 보는데 정말 최악이다. 아 진짜 너무 꼴사나운 글들이다. 우엑! 노트북 밝기 최대한 낮추고 글을 다 삭제했다. 아무도 못 보셨길 바란다. 눈 버리시는 게 내 손해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해 주고 싶지 않아요..
하 그냥 기록이나 해보자. 꾸준함이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면서 매번 시도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나는 엄마는 없지만! 5년 전까지는 매년 종이로 된 다이어리 샀었는데, 그래도 이제 그건 주제를 알고 끊었다. 역시 30대가 되니 남다른 현명함을 갖게 되었다. 다이어리 쓰기를 3일을 넘긴 적이 없는데, 매번 도전하던 젊은 나 대단했다.
디지털이 참 편하다. 기록 정리가 금방금방 된다. 인터넷 세상의 정보는 다 남는다는데, 내 구구절절 글자 덩어리 가지고 뭐 하고 싶은 사람도 없을 테다. 이 사회에는 남들한테 관심 없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말이다. 남들에게 그만큼 관심받는 것도 재능이다. 관심은 돈이니까, 난 평생 그런 걸로는 내 통장이 불어날 일이 없다. 노잼 인간, 흥도 안나는 쑥스러운 사람이라서.
또 다른 새해 다짐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보니 정말 난 대중이다. 아주 평범해. 남들이 다 하는 것만 꼭 목표로 잡고 있다. 독창성은 없지만 성과는 있다. 최근에 마운자로를 맞았고, 식욕이 사라졌다. 1달 정도 됐는데 7kg 정도 빠졌다. 쌉T인 성격이라서 그런지 이성적으로 먹는 게 너무 편하다. 이전에는 스트레스받고 오만가지 만찬에 맥주에 달다구리에 빠져 살았다. 마운자로가 식욕을 없앴다.
먹는데 시간이 아껴지니까 남는 시간이 생겼다. 뭐 먹을지 고민 안 하고, 탄단지랑 식이섬유.. 영양제들을 고민 없이 털어 넣는 게 너무 만족스럽다. 극강의 효율충, 현대과학기술 만세! 이 기세로 15kg는 더 빼고 싶다. 욕심쟁이 같지만 그래봤자 응~ 정상체중이야! 흑흑 숫자로 보면 항상 돼지다. 겉으로는 그냥 보통 체형 같은데 역시 술 마시면 내장 지방이 장난 없다. 복부비만의 지옥에서 탈출해야지..
이제 스트레스받으면 먹지 않고 뜨개질을 한다. 뜨개질은 손으로 하는 명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아무 생각 안 나고 좋다. 퇴근하고 돌돌 돌아가는 내 실뭉치가 너무나도 평화롭다. 일은 고되고, 돈 쓰는 건 너무 재밌다. 예쁜 실은 너무 많고, 내 손은 느리지! 편물이 너무 늦게 자라지만, 행복하다. 겨울은 빨리 가서 처음으로 아쉽다. 여전히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또 다른 인생의 험난함, 얼마 전에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됐다. 우움.. 그럴 수 있다. 실업급여받을 수 있고, 위로금도 쏠쏠하게 나올 예정이다. 연락 오는 곳에서 면접도 보고 다니고, 안되면 노무사 자격증이나 따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괜찮다가도 안 괜찮은 게 정상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나 혹시 일부러 감정을 무시하나..? 후폭풍 맞기 싫다.
권고사직 뭐 어쩔 수 없지. 잘못한 것도 없고, 회사에서 할 만큼 했고, 내가 기분 나쁘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
이 정도 사건은 나에게 그리 큰 타격을 줄 수 없다. 어디서든 성실하게 일하면 돈이야 벌 수 있을 것이고, 별 불안함이 없다. 걱정한다고 성공했으면, 난 이미 일론 머스크였겠지! 두쫀쿠 내가 개발했겠지!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는 내가 서울에서 대학 나오고, 먹고 살만큼 돈 벌고 살았으면 이런 건 너무나도 쉬운 문제다. 꽤나 꼬질꼬질한 자부심이 있다. 생긴 모양이 좀 반짝반짝하고, 남들이 욕심나고 싶게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쉽다.
- 이런 나라도 사랑해 주겠니 나야?
- 그래그래, 그래보자!
이렇게 다짐해도 그게 말 뿐일 때가 많다. 그래 날 안사랑해도 그게 나다. 뭐 어쩌겠어. 받아들이는 모양새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인생이 너무 험난해도 어쨌든 흘러간다. 시간은 계속 간다. 쇼츠랑 릴스 개미지옥에 빠져있어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다 너무 예쁜 뜨개 편물이 나를 구원한다. 귀여운 병아리 같고, 잔디밭 위에 피크닉 같은 실뭉치들이 나를 유혹하고, 내 통장을 쓸어간다. 아무것도 없는 내 계좌 위해서 나는 돈으로 주고 산 평화를 얻는다. 결론적으로는 마음이 놓이니까 좋은 결말 아닐까? 아니라도 재밌으면 됐다. 고되고 재밌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