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못붙어먹을 놈들이 즐비하더라고. -1-
2026년을 맞이해서 누구나 꿈꾸듯 아저씨에게 원대한 포부가 몇 가지 있었더랬다.
뭐가 됐든 모처럼 이 브런치라는 공간에 심사도 통과했으니만큼 종종 글도 써서 올리면서 어쩌면 올지 모르는 등단의 기회를 잡아 주지육림의 삶을 누리는데 있어 한 부분을 담당케하자고. 뭐 그런 거 말이다. 마치 잘 익다못해 푹 쉬어버린 갓김치의 걸쭉한 국물에서나 날법한 시큼탑탑힌 김칫국물을 들이키면서 장미빛 미래를 꿈꾸고 카타르시스에 도취하는 것이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사람은 원래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랬다. 늘 예상을 벗어나는 세상한테 후려맞더라도.
이제 낼 모레 마흔 앞두고 주책 부리지 말고, 철 좀 들라는 말에 수긍보다 반발이 먼저 차오름에,
어쩌겠나, 이 아저씬. 아직 불혹(不惑)은 아닌 것을.
세상의 꾐에 아직 한참 넘어가기 좋은 나잇대라 이 말이다. 요컨데 팔랑귀란 소리다.
재작년 이 맘 즈음에 잘 다니던 직장의 계약이 종료되고, 보험이라 생각했던 세 가지의 루트가 기가 막히게도 조금씩 틀어져서 빠그라져버리고. 고단한 존버의 기간을 수렴하던 때가 있었다.
퇴사 직후에야 '설마 굶겠나 사지 멀쩡한데.'란 패기와 더불어 어느 정도의 낙관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가드를 올려 '드루와 드루와' 이러면서 세상에 시비를 털고야 말았더랜다. 상상 이상으로 잔혹한 세상이란 놈은 야 잠깐 뼈 맞았어. 잠만 잠만- 뭐 이런 것도 안통하던지라. 대리운전도 뛰고 떄로 일수 노가다도 뛰면서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면서 심신이 꽤나 마모되어 가던 떄였다.
문학적 클리셰 중 '끝이 안보이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간다.'란 표현처럼. 진부함을 혐오하는 아저씨지만. 저 이상의 맞는 표현이 있는진 잘 모르겠다. 헤어나오지 못하는 늪, 끝 없는 수렁. 뭐 그런 것들 사이에서 지쳐나가던 중에 그 해 연말인가에 굶어죽기 직전에 흩뿌린 이력서가 마냥 무의미하진 않았던 것인지.
본업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살짝 걸쳐져는 있는 곳에서 일을 할 기회가 왔고. 아직 하늘의 부르심을 받들지 않아도 됨에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아저씨 나이 즈음되면 얕보이면 끝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지속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첫 인상이 중요한 법이다. 지난 경험 속에서 예스맨으로 비집고 들어가봐야 결국 부하가 걸리고 복장이든 머리든 둘 중 하난 터지는 걸로 게임오버. 과도한 업무 분담을 블로킹하는 것 역시 중요한 법이다. 사회초년생들은 유념하도록.
사실 곳간의 빈 쌀통을 생각하면 딱히 지를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면접 자리에서.
'XX를 위해서는 ㅇㅇ 같은 장비 들이 필수이며, 이를 귀사 측에서 제공해줄 용의가 없다면 외람되지만 저를 채용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라던지,
귀사의 규모에서 직전 연봉을 맞춰주기 힘들단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재직 중에 낸 성과로 다시 제 연봉의 조정 건의하겠습니다.
등의 배짱을 부린게 주효했던 탓일까. 아저씨는 '홍보실장'이란 직함을 받고 일을 다시 할 수 있었더랜다.
아사 직전에 다시 먹고 살 수 있는, 그것도 기존 능력을 어느 정도는 살릴 수 있는 여건이란 점에서 참 고마운 회사긴 했다. 뭐, 관련 인수인계가 전무하고 나홀로 하나부터 열까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그걸 해내는게 프로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아저씨는 다시금 프롤레타리아의 일원으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자로 회귀했더랜다. 가슴 한 켠에 '더 나은 본업 자리 나오면 런쳐야지'라는 장대한 포부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