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게 된 경위에 대하여. -하-
(역 : 독한 할머니가 따악 붙어있으니 강림(도령)이 뭘 할수가 없다.)
어- 음, 삼춘, 게민 돈도 좀 허영 벌 수 이신거마씸? (역 : 그러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건가요?)
나름 그 딱딱한 대화를 부드럽게 하고자 회심의 소셜리티를 담은 말이었는데, 무심한 표정으로 흘끗 쳐다보시더니 이내 쯧- 하고 혀를 차시곤 이내 카악-하고 걸죽한 객담을 뱉어내시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 그 모습에 영험한 할망이 과연 맞는지 의구심이 들던 찰나에, 그 신묘한 대화는 애타게 나를 찾는 상사의 목소리로 강제로 끝나버리고야 말았더랜다.
그렇게 자원봉사자들 아주망들과의 라포르(Rapport) 구축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던 아저씨는 벌써부터 땡땡이 치고 있냐는 차장의 안목없음에 속으로나마 탄식했으나, 곧바로 '죄송합니다-'라는 영혼없는 사과를 입에 올렸다. 당장은 이 옌장맞을 상사의 오더를 쳐내는 게 우선이고, 아저씬 프로였으니까.
그 기묘한 대화가 있고 난 뒤에 시간이 꽤 흐르고.
화장실에 앉아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갈등과 사투를 펼치던 중, 당최 판가름이 나지 않는 지독한 시간 끝에 침통한 마음으로 패배를 선언하고 주섬주섬 화장실에서 나오며 우울해하던 어떤 휴일의 아침 날. 아저씨는 그 쓰라림의 원인에 대해 냉정히 '식이섬유 섭취가 좀 모자라긴 했지.'라며 분석하고 있었다.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제각기 나름의 성찰과 고민 끝에 내린 선택들이 있었을테고. 그게 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든, 부정적인 결과를 낳던가 할테지만.
아저씨는 보통 내가 손에 쥐고 있는 패만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선택지는 외면하거나 가장 뒤로 미뤄버리는 대범함을 보이는 편이다. 그 위진남북조 시절의 정사서인 남제서(南齊書)에서 인용하자면,
"단공(檀公: 단도제)의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제일이다."
뭐 어쩌겠나. 당장 뭘 해도 해결이 안된다는데. 잡고 끙끙대봐야 나만 손해지. 거기서 힘 더 줘봐야 참혹한 결과가 기다릴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법도가 무너진 이 세상 속에 옛 성현의 고사를 떠올린 아저씨의 지적인 모습에 도취한 채로, 아저씨는 작고 소중한 이부자리에 다시 몸을 뉘이러 가던 참이었다.
♪~♬♩~
휴일의 호출이라니 이 무슨 결례인가, 하며 한껏 짜증난 목소리로 나의 불쾌함을 어필하리라며,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오늘 제산거 알지? 잊지 말고 지주 상 오라." (역 : 오늘 제사인 거 알지? 잊지 말고 제주(술) 사서 와라.)
그 위대하신 단공께서도 아마 제사는 못 도망치셨을테지. 제기랄.
"큰아부지. 그 혹시 우리 할머니 말인데요."
"할망? 무사."(역 : 할머니? 왜)
-아니, 요 할머니 말고요. 하고 버릇없이 젓가락으로 영정을 향했다가 쏘아지는 눈초리에 바로 쭈글거리긴 했지만, 큰아버지가 답지 않으신 모습으로 다시 물어오셨다. 당장 제사의 주인공도 할머니는 할머니셨지만. 내가 말한 분이 누굴 칭하시는 것임을 이미 짐작하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라면 언급 될 일조차 없던 분이 조카의 입에서 나왔다니 궁금하셨을 수도 있고.
그 후에- 전 화에서 언급되었던 큰 사고에 대해서는 친인척들 모두도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그 꿈에 대해선 언급했던 적이 없던 터라, 다들 그저 조심하지 않고 운전했다가 차를 해먹은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그나마 사지가 멀쩡히 끝난 것에 그저 하늘이 도왔다며 감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던 사안이었다.
사촌형제들과 어른들과 같이 잿밥을 음복하면서 사실 그 날 전에 꿨던 꿈에 나왔던 검은 바다와 열차.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으신 아버지, 그를 막아선 흰 소복을 입으셨던 내가 '할머니'라고 인지한 그 젊은 아주머니에 대해서까지.
밥상머리에서 밥 먹으면서 말하는 것에 혼날 타이밍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이야기 자첸 끊기지도 않고 끝까지 무난히 진행됐던 것에 좀 의아하던 참에 큰아버지가 탁-하고 내려놓은 젓가락 소리에 '아- 역시 우리 집안의 꼰대력'은 어쩔 수 없구만. 탄식하던 차였다.
-○○이는 이땅 큰아방 방으로 와보라.
당시 아저씨가 아무리 젊은 시절이라고 해도 이립을 목전에 둔 청년인데. 설마 밥상머리에서 썰 좀 풀었다고 방 안에서 따로 독대하자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닐까. 억울함과 거북함, 동년 사촌 형제들의 한심한 표정 속에 허겁지겁 음복을 마치고 이미 방을 들어가신 큰아버지의 뒤를 따라 안방으로 향했다.
부디 우리 백부 어르신께서 조카의 체면을 생각하시어 가볍게 끝내주시기를 바라며 들어간 방에는 예상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양반다리로 앉아계시던 큰아버지의 모습에 기시감을 느끼며 다소 긴 얘기를 나눴다.
생전 파락호로서 참 인생 재미지게 살다가신 우리 할아버지. 이미 제주에 본처와 식솔들이 있었음에도 사나이 가는 길 막을 수 없다 일갈하시며, 전국 팔도를 유랑하며 노름판이란 노름판엔 전부 참석하셨더라나. 그렇게 강원도에서도 그 호방한 발걸음을 옮기시고 현지 첩을 두시어 세 자식을 낳았더라니. 그게 바로 우리 친할머니와 우리 아버지 삼형제였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을 거부하셨던 위대하신 우리 조부께서는 그곳에서조차 정착하지 않고 떠나가셨고. 그 척박한 강원도 땅에서 홀로 3형제를 키워내시던 할머니께선 이내 홧병인지 골병인지 모를 병을 얻어 막내였던 우리 아버지가 9살이 되던 해, 향년 서른일곱의 그 젊은 나이에 눈을 감으셨다는 내 친할머니.
찢어질듯한 가난 속에 수의로 쓸 흰 소복 정도나 간신히 마련해 장례를 마친 큰아버지는 영정사진조차 없이 그저 할머니의 이름 석 자만 기억한 채로 동생들과 제주로 내려와 그 삶을 살아오셨다는 대목까지 듣고 난 뒤에,
-꿈에서 본 할머니로 인식된 흰 소복의 젊은 아주머니.
-심방 할망이 말한 나한테 붙어있다던 '독헌 할망'.
-큰아버지의 말씀 속에 증명 된 나의 '친할머니'
'이래도 안 믿어?'하고 때려박는데. 이 즈음이면 아무리 아저씨가 미신을 터부시한다고 해도, 그 신념이 흔들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어멍이민 진이헌티 경허고도 남을 사람이주..' (역 : 어머니라면 진이한테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명이었다. 먼저 망자가 되어버린 막내 동생과 어머니를 떠올리며 울먹이는 듯했던 그 분위기 속에서 아저씨 역시도 평소와 같은 능청을 떨 수는 없던터라.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아저씨는 불혹을 앞두고도 자녀는 커녕 장가도 가지 못한 노총각이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가까워야 할 친족인 부모와의 관계 역시 그리 바람직하진 못한 탓에 세간에서 말하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말할 수는 없겠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쉬이 논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세상의 넘쳐흐르는 다양한 감정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사랑이란다. 또 나아가 그 사랑 중에서 가장 지고지순한 형태를 아가페(Agape)라 부른다. 절대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정의되는 개념이라던가.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연인들이 사소한 갈등의 파편으로 헤어지고, 흔히 동화 등지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는 결말로 많이 쓰이는 결혼식을 마친 부부들이 시간 속에 지쳐 갈라서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모 자식간의 폭거가 만연한 차가운 세상사에서, 홀로 고고히 빛날 뿐인 듯한 단어를 보고 아저씨는 조소했더랜다. 그야말로 '신(神)'과 같은 존재나 할 법한 괴력난신(怪力亂神)에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던가.
그러나, 얼굴은커녕 성함조차 외지 못했던 손주를 그저 피붙이라는 이유 하나로, 강원도에서 제주까지의 그 아득한 거리를 건너고 시공(時空)마저 초월하여 현현(顯現)하신 나의 할머니
아홉 살 어린 막내를 남겨두고 먼 길을 떠나야 했던 한 어머니가 그 서러운 세월을 지내보낸 후에 손주를 데려가려는 장성한 아들을 막아서야만 했던 그 웃기지도 않을 비극 속에 품으셨을 한을 어찌 아저씨가 설명할 수 있을까. 그 통한의 깊이를 감히 짐작하기조차 무서울 뿐이다.
자식과의 최악의 재회를 마친 뒤에도, 행여 다칠까하는 마음에 손주의 곁을 차마 못 떠나고 수호령으로 붙어계신다니. 그 독한 사랑이야말로 아저씨가 허황되다며 애써 비웃던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사랑' Agape- 그 자체가 아니던가.
죄송함과 감사함이 섞인 벅차오르는 감정이 파도처럼 들이닥치며 냉소로 견고히 쌓아올린 척했던 세계에 균열을 내고, 그 일부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더랬다.
그 뒤로도 특별히 교회나 절을 다닌다던지. 오컬트에 심취한다든지 그런 다이나믹한 변화는 없었다. 단지 캔커피를 홀짝이며 회사 복도를 걷다가 미신들 등지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아이고,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며 조소하던 모습에서, 그런 것들이 만약 실재하고, 사실로서 존재한다면. 조금 더 이 세상은 재밌고 멋진 곳이지 않을까? 하며 바라보게 되는 관점의 여유 정도가 생겼을 뿐이다.
어쩌면 낮은 확률로 우연들이 겹친 것들에 대해 아저씨 입맛대로 수렴해서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를 일일테지만 말이다.
아니 근데, 염라대왕이나 강림차사가 명부를 들고 찾아와도 그저 드러누워 배를 째라고
맞다이를 치는 할머니가 나한테 붙어계신다는데. 세상천지 뭐가 두려울쏘냐. 다 덤벼!
근데 할머니. 로또 번호 하나 정도는 어떻게 좀 안될까요.
아니면, 어디 좀 참한 색시라도-
손주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요.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