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게 된 경위에 대하여. -중-
하지만 아저씨는 그 무렵부터 궤멸적으로 그런 방향으론 영 눈치가 없었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짐을 싸고 구석 한 켠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던 성인용품 자판기를 괜히 한번 더 살펴보곤 청년 아저씨는 명확히 정의조차 하지 못할 꿈을 향해 그 여정을 떠났다. 곱씹어보면 꿈'을 향해간다기보다, 그저 '꿈을 향하는 모습' 자체에 취해있었다는 것에 가깝지 않았을까?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 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 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By - 김동률 <출발> 中
교외로 빠져나가는 도로를 타고 시내에서 꽤나 멀리 빠져나온 아저씨는 조수석에 올려놓은 카메라. 활짝 열어둔 운전석의 창문에 팔을 걸치고 시속 70km의 광란의 질주 속에서 목청을 드높여 김동률의 출발을 열창하며 스스로의 센티멘탈함에 흠뻑 취한 상태였다.
아시○, 나 지금 진짜 존○ 멋있다.
초봄을 만끽하던 시기- 기분 좋은 춘풍과 퇴사 후 만끽하는 자유로운 시간은 한창 때의 젊은이를 폭주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법이라. 훗날 결국 이불을 털어내는 거센 발길질로 그 업보를 청산할테니, 한 젊은이의 희망찬 발걸음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봐주는 것도 참된 어른으로서의 덕목으로 지켜봐야 하겠다.
유감스럽게도 그 거한 '뽕'이란 미주(味酒)에 한껏 취한 음주운전에 하늘이 그다지 자비롭지 못한 탓인지, 싼마이한 가격에 홀려 샀던 애마가 그 오글거림을 미처 버티지 못한 탓일는지 갑자기 핸들링을 거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세상천지가 개벽하듯 맹렬히 쾅 쾅 거리면서 발작을 일으켰다. 아니, 자뻑 좀 했기로서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 격렬한 흔들림 속에 제일 먼저 무언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러왔고 사리분별조차 힘든 상황 속에서 시야를 덮는 뭔가 포근한 아녀자의 품과 같은 느낌에 보드라움과 아늑함을 느끼다가- 뒤늦게 '아, 에어백이란 놈이 생각보다 포근하구나.'라는 감상부터 올라왔던 걸 보면 아저씨의 대범함은 그 기원이 꽤나 길다 할 수 있겠다.
거, 아저씨. MSG가 좀 과하네.
현실에서 이 썰을 풀 때마다 꼭 이런 딴지를 걸어오는 이들이 독자 중에서도 없으랴, 이에 아저씨의 명예를 위해 당시 공업사 입고 된 아저씨의 애마였던 폐기물 사진을 증거로서 첨부하는 바다.
여튼 에어백은 터지고나서 급격히 시들어서 쪼그라든다는 것을 본의 아니게 알게 된채로 주섬주섬 차 밖으로 나온 청년 아저씨는 천운 속에 사지가 멀쩡함에 감탄하거나 놀라기에 앞서, 파손되지 않은 카메라(=퇴직금 2년치)를 공손히 끌어안은 채로 생각했다.
집에는 어떻게 가지?
그래도 목숨을 구해줬는데, 의리는 지켜야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지만 애마가 튼튼해서 에어백도 잘 터져주고 날 구해줬으니 나도 쟤를 폐차하기보다 어떻게든 살려서 타야된다라는 부채 의식 속에 '그돈씨'의 법칙은 엿 바꿔먹고 거의 차량을 구매했던 가격에 맞먹는 수리비를 지불했고, 삼도천을 건너려다 강제로 소생 된 애마는 한동안 차라리 죽여달라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곤 했지만- 뭐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넘어가고.
몇 개월 뒤-
애마를 회생시킨 대가로 아저씨는 다시금 프롤레타리아적 삶을 강요받으며 자유를 박탈당하고 차가운 자본주의의 세계로 복귀했다. 그리고 회사 주관의 한 전국 고교 축구대회의 주최진으로서 '일하기 싫다'란 주문으로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며 행사도우미로 자원봉사를 오신 아지망(역: 아주머니)들의 도시락을 챙겨주던 때였다.
나름 아저씨의 신체적 리즈 시절이었던 것에 더해, 커리어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장을 입어야했던 직장이었던 터에 뭇여인들의 선망의 시선을 즐기는 것에 익숙해진 시기였음에도 왜인지 버티기 힘든 강렬한 시선이 뒷통수에 꽂히는 것을 느꼈다.
그 시선의 발원지를 향하니 범상치 않은 오오라를 휘감은 채로 오른손에 쥔 궐련을 뻐끔뻐금 피워대는 그 할망의 분위기는 뭇 아지망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품위나 위엄이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 특유의 서늘한 위압감에 다소 쫄았던 점은 부정치는 않겠으나 아저씨는 프로였다. 만고의 진리이자 어르신들의 영원한 동반자, 맥○ 믹스커피를 호다닥 제조해서 괜스레 사근거리며 말을 걸었다. -로컬 사회에선 사투리를 병행하는 게 최고의 방패이자, 창이다.
"삼춘, 무사 무섭게스리 경 배렴수과?" (역 : "아주머니(삼춘),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고 계세요?")
답변 없이 매섭게 이 쪽을 바라보기만 하는 그 침묵의 시선에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러내렸지만. 한 편으로는 다가서자마자 믹스 커피부터 낚아챈 그 손놀림에 적의는 없었다. 그리 짧지만은 않았던 미묘한 긴장이 지속되던 중 아저씨의 프로 의식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할 즈음 들려온 목소리는 생물학적 여성의 목소리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굵고 낮았다.
"독허다. 잘도 독허여." (역 : "독하다. 정말 독해.")
"네?"
"이녁 할망 말여. 지 손지 저승길에당 드러놩 느 할망." (네 할머니 말이다. 저승길에 누워계신 너희 할머니.)
장담한다. 대뜸 무서워보이는 할망이 묵직한 중저음으로 혀를 차며 탄식하 듯이 맥락상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말을 했을 때 과연 당황치 않을 이들은 거의 없으리라고. 과부하 된 입력을 처리하느라 잠시 뇌의 연산이 버벅이던 무렵에 옆에 다른 아지망이 '맥께라- 성님, 뭐 본솅이여게.'(어머, 언니 뭐 봤나보네)하며 넉살스레 껴들었다.
1만 8000여 신들이 머무는 섬, 탐모라. 제주의 토속 신앙은 육지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곳에는 '심방'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있다. 뭍의 박수·무당처럼 신의 종복인 그들과 달리, 심방은 표현한다면 대 '신(神) 접객 영업'의 스페셜리스트들이라 칭할 수 있겠다.
그 본질부터 다른 분한테 '무당 같은 건가요.'라고 말했다가 경을 칠 뻔 했더란다. 여튼 그 무서운 노파께서는 그야말로 마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심방이셨고,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 다른 아주망 말로는 옆 동네 심방들도 인사하러 오는 그야말로 제주 무속계의 대모님이라시라나.
흔히 스탠다드한 무당들의 이미지는 현란한 깃으로 장식 된 갓을 쓴 무당이 합죽선을 촤륵-하고 펼쳐 얼굴을 가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왜 이제 왔어!'. 뭐, 대충 이런 느낌이지 않은가.
눈 앞의 대모께서는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궐련을 맛깔나게 한 모금 들이켜시더니 그냥 통고하듯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전번에 이녁 죽을 뻔 한거. 느 할망이 쫓아낸거난 감사하멍 착허게 살라."
(역 : 저번에 네가 죽을 뻔한 것은 너네 할머니가 막아냈으니 감사하면서 착하게 살아라.)
.
.
.
그 왜, 드라마나 영화 등지에서 영험한 이로부터 어떠한 통찰과 본질을 꿰뚫렸을 때 듣는 이가 소름이 돋거나 당황하는 것으로 진부한 전개를 하곤 하지 않는가. 일종의 클리셰로.
아저씨가 그 진부한 클리셰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통탄스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