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게 된 경위에 대하여. -상-
그런 생각을 꽤나 하고 살았다. '종교, 귀신, 영혼' 뭐 그런 오컬트, 미신들에 대한 아저씨의 성찰 말이다.
살면서 어쩜 그런 단어들만큼 가성비 좋은 대피소도 드물지 않나 싶다. 인류의 역사는 곧 불안의 역사이며, 그 거대한 우주의 무작위성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붉은 팥을 뿌리거나 문턱을 밟지 않는 식의 해괴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때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숭상받았고,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권위로서 질서를 내세우며 존재해왔다. 결국 그 본질은 하나라고, 아저씨는 냉소하곤 했다.
결국 나약한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심리적 도피처일 뿐이지 않는가,
그런 식으로 아저씨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 크큭'하고 웅얼거리며 '신성'을 비롯한 모든 미신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스탠스를 취하곤 하였다. 매해 연례행사로 치루는 수 번의 집안 제사 등지에 대한 피로감의 발현이지 않았을까? 실은 그저 어느 니힐리즘과 시니컬한 스스로의 모습에 심취한 한 소년의 유감스러움이 현실적인 정답에 더욱 근접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솔직히 다들 그런 시기 한번 씩은 겪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
아저씨는 사람은 한번 어떠한 주관이 정해지면 쉽사리 바뀌지 않음을 믿는 사람이다. 흔히들 말하 듯이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다.'란 표현을 신봉하는 완고하고 재미없는 타입의 유형이라 이 말이다. 살다보면 주관 속에 갖춰진 나름의 신념들은 삶을 살아가며 '정보 편향'으로 인해 더더욱 공고하게 굳어지고 이는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 남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고집불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얘기다.
비록 중2병에서 비롯한 괴력난신(怪力亂神), 이매망량(魑魅魍魎)을 부정하던 태도는 성년이 되고 사회에 뛰어들어 그 구성원으로 구르고 다니는 동안 더욱 공고해지며 이내 온갖 종교에 대한 존중보다 조소를 먼저 보내는 청년이 되고야 말았다. 그 시절엔 그것이 '쿨'한 것이라 믿고.
하지만 인간은 결국 경험 속에서만 답을 찾는 존재라 했던가. 이 아저씨가 작금에 와서 그 시절의 청년처럼 '쿨'함을 신봉하고 예수는 그저 사막잡신이요, 부처는 인도빈민이라 떠들고 다니지 않는 나름의 성숙함을 지니게 된 계기가 있다. 굳이 없음을 주장하며 의미없음을 떠드는 것보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있다면 좀 더 세상은 아름다울지도 모르지.
란 관점으로 바뀌게 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을 오늘은 풀어보려한다. 자자 츄라이 츄라이. 나름 현실에서도 잘 먹히던 썰이니까 한번 잡솨봐.
그러니까 어디보자- 2010년 중반 그 어느 즈음의 2-3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첫 직장에서 2년 간 재직하고 계약만기로 퇴사를 한 시점이. 아직 20대 중반이던 아저씨는 살면서 처음으로 일이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직장을 뒤로 하고,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서 나름의 확신과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때였다.
첫 끝발이 개끝발이란 만고의 진리를 그 시절의 내게 알려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지 크리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 종반부에 쿠퍼가 그랬듯이 아저씨는 추억 속 청년에게 'Stay!!'를 연발하지만, 낭만과 꿈에 취한 청년을 누가 막으랴. 2년 채 재직분의 퇴직금을 고스란히 C사의 풀프레임 카메라 구입에 거침없이 때려박던 그 모습은 지금 아저씨가 봐도 반할 거 같긴 하다.
참으로 단순한 계획이긴 했다. 장비도 갖춰졌겠다, 낡은 중고차도 있겠다. 학창 시절 오지게도 들었던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과 김동률의 '출발'을 MP3에 담고 청년은 몇 박이 됐건 내가 사는 이 곳의 모든 것을 이 카메라에 담아오리라는 장대한 포부를 안고 덜덜거리는 은색 프라이드에 올라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더랜다.
분수를 모르고 산 전문가용 카메라 바디는 마치 광활한 초원의 야생마에 올라탄 기수를 농락하는 듯 했고 아직 젊었던 아저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길들여보겠다고 끙끙대면서 해안 길과 도심을 오가며 보이는 것들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해가 떨어질 무렵에 교외 변두리의 한 무인텔에서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다.
일반적인 모텔과 달리 방안에 떠억하니 존재감을 자랑하던 성인용품에 한참 때의 아저씨가 정신을 팔렸던 것은 부정하진 않겠으나, 여느 청년과 달리 빈약한 체력을 자랑하던 아저씨는 샤워를 마치고 카메라 점검 마저해야지, 란 포부가 무색하게 샤워를 마침과 동시에 바로 의식을 잃었던 거 같다.
어, 잠깐 잠들었나- 하고 눈을 드니 왠걸. 다소 경박한 인테리어와 핑크빛 무드등이 남사시러웠던 그 무인텔의 침대 위가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그야말로 칠흑의 바다. 그리고 거세게 몰아치던 파도 위로 수평선 저 저멀리까지 펼쳐진 기차의 선로가 있었고, 그 시작점을 좇아 시선을 옮기자 은하철도 999에나 나올 법한 검은 바다보다도 더 음침한 새까만 색의 레트로틱한 기차가 연기를 콜록대고 있었다.
뭐, 사실 여기까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저씨는 갑작스레 닥쳐오는 상황 변화에 나름 강한 편이라 자부했으니까. 그 시선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 안 입던 검은 색 정장을 입은 채로 날 주시하는 것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리 온화하지만은 않았던 부자 관계, 오히려 적대감이 더 컸던 관계 속에 바짝 약오른 긴장감으로 나타날 즈음에 아버지는 그저 말 없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하셨고. 청년 아저씨는 생전 이뤄내지 못했던 부자의 유대를 원망하듯이 내가 왜 아버질 따라가야 하냐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몇 컷 정도 루프하듯이 흘러갔다. 이윽고 다소 화난 표정의 아버지가 열차에 내려서 억지로 나를 끌고 가려고 하셨고, 생전에도 무력으로 감히 대적할 수 없던 아버지의 폭거에 아저씨는 그저 질질 끌려가며 악을 쓸 뿐이었다.
어, 할머니다.
내 친할머니는 아버지가 9살인가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지, 영정사진조차 남지 않으셨기에 분명히 나로선 할머니의 얼굴도, 존재를 알 길이 없었고. 일상 속에서 할머니란 개념조차 희미했을 터임에도 꿈 속의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뒤끄덩을 잡힌채 질질 끌려가던 중 하늘에서 홀연히 나타난 흰 소복의 30대 중후반 남짓의 아주머니를 보고 왜 그러한 인지를 했는지에 대해서 글을 쓰는 지금도 어찌 표현을 해야 할지.
할머니라고 인지 된 그 아주머니께서는 그렇게 홀연히 하늘에서 내려오시고는, 나를 끌고 가던 아버지를 밀쳐내면서 일갈하셨다. 참으로 정석적인 등짝 스매시를 수 차례 시전하면서 그저 맞고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소했다. 누군가를 때렸음 때렸지 결코 맞지만은 않던 양반인데.
'억울함이 남았더라도 미련없이 떠날 일이지, 왜 니 자식까지 안고 가려 하느냐.'
'망할 놈아. 그냥 그대로 혼자 가라. 제발 그냥 가라.'
거칠게 밀어냈다. 란 표현만으로는 그 울분과 슬픔, 애달픔이 섞였던 할머니의 역정을 대체 뭐라 말해야 하는지. 부족한 아저씨의 필력으론 감히 묘사할 수 없음에 지금도 헛웃음이 난다. 그렇게 아버지는 홀로 그 칠흑색 열차에 떠밀리듯 올라 저 수평선 넘어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눈을 깜박이자 교외 특유의 샛소리와 그 핑크핑크한 무드등이 눈에 들어왔다.
꿈이라는 세계의 기묘함은 누구나 한번 즈음 통감해봤을 법 하다. 단순 물리법칙의 왜곡은 물론이고, 꿈에서 행한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 일어난 뒤에 '내가 꿈에서 왜 그랬지? 내가 그럴리가 없잖아.'하는 그런 설명이 힘든 인지적 왜곡까지. 그리고 분명 나 자신의 기억과 지식을 초월한 그러한 메타인지적 상황의 발생까지도.
그리고 이내 현실로 귀환했을 때, 아무리 절박하고 애달픈 꿈이라 할지라도 금새 바스러지듯 사라지는 여운까지. 그렇게 아저씨는 그 기묘한 꿈을 '개꿈인가?'란 쉬운 한 마디로 정리하고 다시금 미처 정비하지 못한 카메라로 시선을 옮기고 어디로 갈지 생각을 옮겼다. 꿈이란 때때로 시그널임을 망각한 여느 현대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