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제원 및 상세 (2)

아저씨와 로봇, 그 시절의 여름에서-

by 민폐

세상의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함은 대다수의 사람이 이미 머리로 알고 몸으로 체득한 만고의 진리지 않나 싶다. 다들 삶에 있어 제각기 처한 상황과 들고 있는 무기를 가늠하고, 눈앞에 있는게 토끼인지 용인지 파악하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 움직이곤 한다.


주어진 손패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내가 가진 장비로 충분히 저 토끼로 보이는 존재를 단칼에 토막낼 수 있으리란 계산을 마치고 덤벼들었더니 사실 99렙 만렙 킬러 토끼였다던지, 차마 도전하지 못했던 용은 사실 초식에 겁많은 생물이라 다른 이가 수월하게 토벌에 성공했다던지.


뭐 그러한 세상의 불합리를 적든 많든, 적어도 한번씩은 겪은 적이 있을 터다. 그에 아저씨는 우리네가 살아가는 인생이란 놈이 이토록 버그가 심한 똥게임이라 욕하고 탄식할 일인지, 그저 아저씨의 통찰과 직관이 부족해 섣부르게 정의하고 안이한 결정을 내린 탓인지, 아직까지도 그 답을 내리진 못했다.




흔히들 세간에서 말하는 오타쿠의 이미지는 음험하고, 탐닉하고 끝없는 욕망으로 점철 되어있는 그... 뭐? '파오후?' 뭐 그런 이미지가 강했던 시기가 있었다. 헌데, 작금의 너드남이니 뭐니 하면서 '오덕' 조차도 잘 생긴 연놈들의 이미지가 되어가는 것에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제기랄!


이에 아저씨는 감히 분노를 담아 세상에 천명하는 바, 오덕의 정통성은 8, 90년대의 황금 컬쳐 시대를 감히 겪지 않은 이들이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깊이가 있노라고. 메종일각의 오토나시 쿄코를 모르는 이들이 어찌 감히 사랑을 논할 것이며, 64년 철인 28호를 필두로 72년 아스트로 강가, 74년 마징가Z로부터 이어져내려오는 그 장대한 계보조차 모르고 거대 로봇에 대해 논할 수 있는지.


79년도에 탄생한 건담은 기존 슈퍼로봇 작품들의 문맥을 어떻게 파괴했으며 그 제작 배경은 어떠했는지, 왜 현대까지 걸작이라 불리우며 그 평가가 인정되는지에 대해서 과연 요즘 것들은 얼마나 심도 있게 떠들 수 있냐 이 말이다!!!!


…일단 폭주에 사과드리며 갑작스레 오타쿠 운운하며 급발진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어떤 지성있는 이들은 이미 유추 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렇다. 아저씨는 현재 흔히 말하는 오타쿠의 속성을 은폐하고 살아가는 사회인이다.(전문 용어로 일코라고들 하지.) 그런 오타쿠로서의 아저씨의 지난 슬픈 과거를 금번 글로서 빚어내려 한다.


자자- 오시라 보시라, 그리고 읽으시라.


그 뒤에 울건 웃건 지적하던 품평은 온전히 독자의 즐거움이요, 영역일테니.



바야흐로 90년대 초중반. 30년도 더 된 기억의 파편 조각을 맞춰보니 유난히 높고 흰 구름이 흘러가는 여유롭던 무드의 어느 초여름 하늘 아래, 한 주택가 골목에서 한 꼬맹이가 질주하듯 모퉁이의 한 비디오 가게로 달려들어가던 참이었다.


집에서 나올 무렵. 어머니가 시킨 미션은 비디오 가게에서 ‘파란새’인가 뭔가 하는 애니메이션을 빌려오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알게 뭔가, 기억 속 아저씨는 퇴계 이황 선생 한 분을 그 손에 모시고 비디오 가게를 가라는 말을 들은 시점부터 ‘내가 전투로보트 다이모스를 몇 편까지 봤더라'하는 생각만 하면서 뛰쳐나왔으니까.


소년이라 부르기도 뭣할 유년의 꼬맹이에게 온전한 미션 성공을 기대한 어른이 나쁜거라 작금의 아저씨는 그 시절을 변호하는 바다.


그렇게 패기로운 여행길을 떠났으나, 분명 배나온 지금보다 출고한지 얼마 안됐을텐데. 그리 짱짱한 출력을 자랑하지 못했던 꼬마 아저씨의 체력은 고작 세 네 가구 정도를 달리며 바닥났고. 미닫이문이었던 비디오 가게의 문을 굉장히 힘겹게 열었더랬지.


-현대 게임으로 빗댄다면 마치 라틴어가 들리는 장엄한 배경음악과 함께 공상 소설에 나올법한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지는 거대한 서재. 그 정가운데 턱을 괴고 앉은 보스 포지션의 사서. 그 앞에 초라하게 선 도전자의 모습으로 소년은 그저 오른손에 꾸욱 쥔 퇴계 이황 선생의 든든함에 의지할 뿐이었더랜다.


사실 그저 8평 남짓한 낡은 비디오 가게와 매일같이 찾아오는 꼬마를 반가히 맞이해주는 넉살좋던 사장님이었지만 작금의 대형 문방구를 방문해봐도,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 낡은 문방구가 주던 설렘의 크기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처럼, 한 미취학 아동의 그 작은 세계관 내에서 비디오 가게가 주는 그 압도적인 볼륨감은 그 당시에는 엄연한 진실이었을게다.


"뭐 찾는 거 있냐?"

By 던전 보스비디오 가게 사장님



솔직히 당시 사장님의 인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30년이 지났다니까? 그대가 30년 전에 먹은 점심 메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랑 같은 거란 말이다- 딴 길로 새는 건 아저씨 전매특허니까 일단 여기까지로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아저씨는 이미 그 시점에 사장님의 인사를 한 귀로 흘리고 문 앞에 나열 된 신작의 산과 한참 보고 있던 작품의 후편을 두고 그 나잇대에 아이가 지기 힘든 선택의 강요 속에 고통받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처럼 서마터폰을 통해 흰 재생버튼이 새겨진 빨간 아이콘을 누르면 무한에 가까운 오만가지 볼거리를 제공하고, 넷O릭스, 티O 등처럼 구독만 한다면 취향에 맞지 않아도 바로 퇴각하여 다른 방향을 향해 진격이 가능한 자비 넘치는 요즘과 달리 퇴계 선생 한분으로 단 하나의 비디오를 빌릴 수 있었던 그야말로 잔혹의 시대.


오직 표지에 새겨진 빈약한 문구와 짧은 스틸 이미지만으로 생사결(生死決)에 가까운 결단을 내려야 했던, 참으로 불친절한 시대였음을 통감하면서 아저씨는 결국 비겁하게도 보장 된 재미를 위해 전에 봤던 로봇 만화의 뒷편을 요구했다. 현재까지도 아저씨를 관통하는 '가장 안전한 선택지'를 고르고자 하는 기질은 이때부터였을까.


도망쳐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

- 미우라 켄타로, '베르세르크' 中


모든 모험을 포기하고 '아는 맛'으로 도망친 그 비겁함이 벌을 받은 것일까. 아저씨의 번뇌 끝에 도달한 그 선택지는 사장님의 손 끝에 위치한 '대여 중'이란 표식 앞에서 그 의미가 상실되었고 캄캄해지는 시야와 풀리는 하반신의 감각을 마지막으로 아이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좌절감 속에 될 대로 되라는 체념 속에 사장님이 권유-지금 생각하면 영업 당한 거 같지만-로 빌려온 비디오는 당연히 어머니께 부탁하셨던 '파랑새'가 아니었고, 모친으로서의 정당한 훈육의 권리로 행하게 된 '벽 보고 30분 손들고 있기'는 '사명을 잊고, 실패한 용사'의 결말로서 걸맞는 엔딩이 아니었을런지.


그 날 저녁 훌쩍거리며 마친 저녁 식사를 뒤로 하고 빌려온 비디오는 작금에 와서는 제목조차 떠오르지 않고 그저 궤멸적인 재미없음에 아저씨는 내일은 기필코 다이모스를 다시 빌려오리라 다짐했더란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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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옆 방 전시용 선반에 나열된 거대 로봇 피규어와 프라모델들을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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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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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니까 존중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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