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저씨와 뱃살, 그리고 과거-
여느 때처럼 아저씨는 가벼운 샤워를 마치고 2005년 인기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에서 나온 차인표처럼 망할 선배와 빌어먹을 부장을 곱씹으며 분노를 칫솔에 담아 애꿎은 잇몸을 학대하던 중이었다. 한껏 고통받던 잇몸이 뇌를 향해 욕을 날리기 시작할 즈음,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생소함이 나를 당혹케 했다.
마치 세상이 단절되고 프레임 바깥에서 스스로를 부감하는 그 기묘한 감각은 아저씨의 없는 말재간으론 설명하기 힘든 섬짓한 느낌이었다.
바닥에… 치약이 떨어지지 않는다…?
몰아치듯 잇몸을 훓던 칫솔의 움직임 속에 휘둘리며 탱고를 추던 계면활성제가 피워낸 거품은 응당 뉴턴의 법칙에 따라 차가운 욕실 바닥에 추락함이 당연할진데. 그것이 없었다. 그 기묘하고도 서늘한 공포 속에 아저씨는 시선을 내렸고 이내 깨달았다.
힌두교 경전으로 유명한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भगवद्गीता)에서 특히나 유명한 어구를 빌려 당시 아저씨가 느낀 참담함을 묘사하고자 한다.
이제 나는 음식의 파괴자요, 뚱땡이가 되었도다.
아저씨의 무관심 속에 굶주린 복부가 어느새 장성하여 흰 거품을 그 위에 얹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단다.
어느새 장성한 신체의 일부에 그 날 아저씨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조용히 흐느끼듯 울었다. 아- 인생이란.
대한민국, 아니 세계 어떤 아저씨들도 그랬듯이 '아저씨'도 아저씨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단다. 지금이야 흘러내린 치약이 상복부에 내려앉고, 세상의 풍파란 놈이 찍어누른 탓에 축 늘어진 거북목이 볼품 없지만 나름 이 아저씨도 10대 때는 오히려 삐쩍 말라서 군대나 가겠냔 소리를 듣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이 말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의 여느 청소년이 그렇듯, 당시의 아저씨는 평범과 평균이란 단어를 혐오하며,
내 삶의 스페셜리티를 추구하리라 굳게 다짐하며, 계획을 세웠더랬지.
여기서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복서,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다시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구나 계획이 있다. 한 대 쳐맞기 전까진.
By Mike tyson(with 핵이빨)
유감스럽게도 아저씨는 성인이 되어 갓 사회에 진출한 때부터 제도로부터 한 대 거하게 얻어맞고 계획이 무너졌던 적이 있다. 서문에서 강조했던 대한민국의 표준은 커녕 그 아래 판정을 받고, 어디 비실거리는 약골이 감히 성스러운 병역의 입문에 서려 하는가, 하는 통렬한 일갈에 후려맞은 아저씨의 추억을 MSG 조금 가미해서 오늘은 좀 풀어볼까 한다.
서문에서 그렇게 강조한 대한민국 중위 평균을 자처하더니, 결국 시작부터 장난질이냐라고 묻을 수도 있겠지만. 금전적 이득을 얻고자 사기를 치려 했던 건 아니었으니, 좀 더 들어보시라.
어느 옛날, 한 옛날에 아저씨는 지금과 대조되는 삐쩍마른 몸에 인민복을 입히면 그야말로 북괴군의 이미지에 걸맞는 그런 몸을 가지고 있었단다. 학창 시절에 존경하던 은사께서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시며 그런 제자에게 진지한 진로의 방향성을 제언하시곤 하셨다.
넌 소말리아 해적이 딱이다.
1953년 11월 6일 대한결핵협회 설립 이후, 사실상 2000년대 들어 선언만 되지 않았을 뿐 국가 주도로 박멸되다시피 한 폐결핵 소견을 가진 청년.
외견만 봐도 어디서 피죽도 못 얻어먹은 듯한 20대 남성에게 연민보다 의심을 보낸 점은, 국가 안보를 위해 인력을 수집하는 병무청이 응당 취해야 할 '프로의 스탠스' 그 자체였다. 어찌알겠나, 간첩일지.
여튼, 책임감과 직업 정신을 찾아보기 힘든 현 시대에서 '7급 재검사'를 소견한 그 검사관의 투철한 직업 정신 덕에 '아 빨리 다녀오고 끝내야지.'라고 생각한 아저씨의 플랜 A는 그렇게 무너지고야 말았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이행 된 플랜 B에 짜증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며 적응라는 생명이기에 젊은 아저씨는 곧바로 삶을 즐기기 위한 자본 마련에 착수하고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청춘이라는데,
노동을 통해 돈을 모아 내가 밟고 있는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조망하고 돌아오리라. 하는 장대한 여행 계획을 세우며 스스로에게 취해 '아, ㅇㅇ(추임새로 자주 쓰이는 욕설의 일종), 나 진짜 ㅇ나 멋있다.' 이랬던 그 때의 아저씨를 추억하니.. 뭐 누구나 인생의 치기어린 역사가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오늘 밤도 애꿎은 이불만 의미없이 먼지를 뱉어내는 것으로 이 여행 준비 썰은 언젠가 다시 조망하는 걸로 하고 암튼간에. 징병자원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국가의 치근거림 속에 몇 번인가의 재검은 학을 뗄 정도였고.
’이 놈의 국가는 군대 빨리 못가는 것고 서러워죽겠는데, 왜 이리저리 오라가라야?’
란 생각을 하며 슬슬 열이 올라왔지만 직전 검사에서 담당 검사관으로부터 다음 검사가 마지막일 것이란 말을 들었기에 마음을 추스리고 이번 검사만 마치면 그래도 공익을 하든 면제를 받든 하겠지. 하면서 청주로 향했다.
아니,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그렇게나 뺑뺑이 돌리며, 재검사를 해놓고서는 마지막 순간에 ‘현역’ 이러고 데려가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처사 아닌가. 아직 이 사회의 정의와 양심이 살아있다면 그리 쉬이, 그리고 무심히 행해질 개인을 향한 국가의 유린이 발생해선 안될 일이다 이 말이다. 안되고 말고.
그 시절의 아저씨는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아직 세간에 남아있을 인류애를 믿으며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삐빅- 3급 현역. 입영 대상입니다.
가을무렵이었을까. 하늘은 높고 청명했으며 광활했다.
그런 날, 아저씨의 세상은 한번 무너졌다.
아 글쎄, 확실히 세상에 정의 같은 건 없더라니까!? 빌어먹을!
참고로 아저씨 다음 주 부터 헬스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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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짼진 묻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