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이제 나는 내 인생을 살아보려고 해(1)
부모님께 드디어 말씀드렸다.
매일 밤 부모님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 날 괴롭게 했다. 꿈에서도 그 무거운 마음의 짐들이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다. 카페에 앉아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말하기 직전까지 수백 번을 고민했다. 말씀을 드릴지 말지, 말씀을 드린다면 어떻게 드릴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한 번 부딪혀야 하는 일이고 내가 이겨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더 이상 속여서도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일에 확신이 들고 자신이 있었다.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열정은 누구보다 강했고 에너지는 넘쳤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 미래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께 전화로 이제 더 이상 공부 하지 않는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당황하셨다. 내 세상의 전부인 부모님이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시니 나도 살짝 겁이 났다. 손에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부모님은 내 세상의 전부였다. 고개를 들면 부모님이 나를 항상 감싸고 있었고 나는 그게 세상의 전부 인 줄만 알았다. 아빠 말이 내 세상에서는 곧 법이었고 진리였다. 아빠 말을 거스르면 안 되었다. 처음으로 내 세상에서 위법을 저질렀다.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왔고 큰 사고를 쳤구나 인식하게 되었다. 아빠라는 세상의 법을 어기니 역시나 아빠가 노발대발하셨다. 나는 죄인이 되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들었다. 처음에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는데 귀가 터져나갈 정도의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로 나를 나무라셨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너무 속상해하셨다. 당신들의 딸이 공무원이 되는 날만 기다리고 계셨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마치 내 세상이, 인생이 다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빠의 화는 아직도 풀리지 않으셨는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신다고 하셨다. 두려웠다. '이 상황이 잘못되었구나. 다시 공부한다고 말씀드릴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건 내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부모님이 서울 올라오시는 것보다 내가 대구로 내려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눈뜨자마자 대구 가는 ktx를 탔다. 그렇게 나는 막무가내로 선전포고 하고 난 후 부모님을 처음 뵈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 얼굴,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여기서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엄마랑 안부를 물었다. 애써 웃는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나와 13년을 같이 살아온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지금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른 채 꼬리만 살랑살랑 흔든다. '누나 이제 더 이상 공부 안 해.' 마음속으로 강아지에게도 알렸다. 어쩌면 우리 강아지도 나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들어오셔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점심을 드셨다. 그리고 시작된 한 마디,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
0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