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의 크리스마스
일 년에 한번 교회 가는 날
해마다 무령 광업소엔 눈이 무릎까지 쌓이고, 사택 슬레이트 지붕 끝에는 내 키만한 고드름이 겨울방학 끝날 때까지 밑으로 자라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 오는 버스도 며칠씩 자취를 감추어 무령 광산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이다. 강릉으로 전학 간 영식이의 편지도, 위문편지 썼던 군인 아저씨의 답장도 눈 속에 매몰돼 버렸고, 큰누나가 소포로 보냈다는 어깨동무와 종합선물세트 과자는 읍내 큰 우체국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탄가루 풀풀 날리던 까만 신작로는 하얗게 지워졌고, 지워진 길을 바퀴에 쇠사슬을 감은 제무시가 동발을 가득 싣고 지나간다. 힘 좋은 제무시도 언덕에서는 커다란 바퀴가 제자리걸음을 하며 어김없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빌빌거리는 제무시 꽁무니에 매달려 시커멓게 뿜어내는 매연을 맛있게 먹었다.
새벽송
크리스마스 전날 밤 주일학교 아이들이 무령 교회에서 연극을 했다. 나는 누나들이 동방박사로 분장을 해준다. 수염까지 붙이고 나니 영락없는 페르시아 노인처럼 보였다. 철민이는 마구간의 당나귀였는데, 형들이 만들어준 당나귀 가면을 쓰고 말구유 옆에서 침 흘리며 졸고 있다.
황금, 유황, 몰약을 아기 예수께 바치고 연극은 끝이 났다.
자정이 되어 중, 고등부 형과 누나들과 함께 조를 나누어 새벽송을 돌았다.
저녁부터 내리던 눈은 여전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자욱이 내리고 있었다.
방울 달린 모자에 쌓인 눈을 몇 번이나 털어냈다. 도깨비가 살고 있다는 늙은 소나무에서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덩이가 힘없이 떨어지고 부엉이는 먼 산에서 귀신처럼 웅웅 거렸다.
나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았다. 하얀 눈밭에서 찬송가를 부르면, 애들과 욕하고 싸웠던 일들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거라 믿었다. 교무실 담벼락에 '우리 선생님과 옆 반 선생님이 좋아한대요' 낙서했던 것과, 자다가 오줌 싸서 동생을 내 자리에 끌어다 놓은 것, 일 년 동안 죄지은 모든 것들도 오늘 새벽에는 눈처럼 하얗게 죄 사함을 받을 것만 같았다. 벙어리장갑 낀 손을 호호 불며 기도를 할 때면, 혹시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내 어깨에도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까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끔씩 양쪽 날개 죽지가 간질거렸다
작년에 갱이 무너지는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영자네 집 앞에서 찬송가를 부른다.
"저 들밖에 한밤중에 양틈에 자던 목자들~"
영자네 엄마가 준비해 두었던 여러 종류의 과자를 자루에 담아 준다. 어느 집을 가든 뽀빠이와 박하사탕이 제일 많았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지만 폭설은 멈추지 않았고, 형과 누나들은 산타 할아버지처럼 자루를 어깨에 메고 눈 속의 새벽을 지나고 있었다.
성탄절 아침
새벽송을 돌고 나서 예배드릴 아침이 올 때까지
읍내에서 자취하는 고등부 누나와 성경공부를 했다. 그중에서도 바다에 길을 만드는 모세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그러다 졸리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바다를 꿈꾸며 방석을 덮고 쪽잠을 자기도 했다.
하얀 아침 장로님이 종탑과 연결된 기다란 줄을 잡아당기자, 무령 광업소에 탄일종이 울렸다. 하나님과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이 일 년에 한 번 교회 오는 날이다. 쫀드기 하나도 사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성탄절만큼은, 거짓으로 하나님을 믿고 쑥스럽고 속 보이는 예배를 드려야 과자 한 봉지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눈은 그쳤고 햇빛에 반사된 눈의 입자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며 녹고 있었다.
가짜 신도들의 입속에서도 박하사탕이 하얗게 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