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들처럼

by 안개바다

점심시간

몇 사람에게 생명을 기증하고 떠난 어린 소녀가 구내식당 tv에서 영정사진으로 웃고 있다. 엄마가 울음을 참으며 담담하게 인터뷰한다.

고등어 가시가 식도를 찌르며 내려간다. 면목 없이 보고 있다가 마지막 남은 밥 한 숟가락은 끝내 삼키지 못했다.

나는 피붙이를 제외한 일면식도 없는 남을 위해서 목적 없이 인정을 베푼 적이 있었을까.

이 세상에 잠시 머물던 흔적 남기지 않으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살았다. 언뜻 보면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그날 밤 장기기증을 검색했다.


어쩌다 금연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하기로 했다.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도 기증자의 의무다. 사후에 늑골이 열리고 오장육부가 드러났을 때 쪽팔리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담배는 끊어야 한다.

하루 한 갑 30년을 넘게 피웠으니 대충 계산해도 10.950갑이 넘는다. 그 많은 니코틴을 먹고도 살아있다니 경이로운 목숨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한방에 담배 끊는 방법이라던지 금연센터에서 얻어온 여러 가지 금연 보조제는 아무 소용없었다. 그냥 참았으며 지금도 참고 있다. 참는데 한계가 오면 시민 체육공원 400m 트랙을 쉬지 않고 달렸다. 폐가 부풀고 헛구역질이 날 때면, 풀코스를 완주한 초보 마라토너처럼 온기 없는 벤치에 누워 한참 동안 거친 호흡을 했다.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감사했다. 담배의 금단현상을 이길 수 있는 나의 인내심에 감사한다. 늘 낮은 곳에서 버텨주는 운동화에 감사한다. 생각해 보니 감사한 일들이 가을밤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이나 많다.


금연 100일째 되는 날이다.

등록을 해야겠다. 음식점 키오스크도 인정머리 없어 꼴 보기 싫은데 장기기증까지 인터넷으로 신청하기엔 서운해서 마을버스 6번을 타고 보건소로 간다. 보건소까지 열다섯 번의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한 명의 승객도 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히터도 틀지 않은 겨울의 버스 안은 썰렁하기까지 했다. 이러다간 6번 노선이 폐지될 거라고 운전기사가 룸 미러에 눈을 맞추고 큰소리로 말했다. 맞는 말이라고 웃어준다. 모든 것이 정치인들 잘못이라고 또 한 번 룸 미러가 말했다. 난 침묵한다.


코로나로 아비규환이었던 보건소.

입구의 키 작은 단풍나무는 약해빠진 인류의 절규를 기억한 채 무심히 빈 가지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이 많은 공무원이 달랑 한 장의 장기기증 신청서를 밀어준다.

'나 죽거든 내 몸은 마음대로 하시오. 가능하다면 뼈 한마디 피부 한 조각 남기지 말고 모두 가져가시오. 혹시 내 영혼까지 필요하다면 집사람에게 별도의 허락을 받으시오'

서명을 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애매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하얀 보건소 담벼락으로 흘러내렸다.

봄의 입김 아지랑이가 화단에서 아른거린다.

사랑의 계절이 꽁꽁 언 지층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새해 소망

부디

온몸의 세포들이 시들기 전에
그대에게 닿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대가 서있을 건조한 모래밭에
물기 머금은
선인장 하나로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