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또 어디서 술 퍼마시고 있나 보다 점방에 없으면 춘천옥에 가보거라."
엄마는 술 마시러 나간 아버지 동선을 다 알고 있었다. 광산에 하나밖에 없는 무령 극장의 간판 불도 꺼진 지 오래, 다행히 달빛이 밝아 넘어지지 않고 시장 끝 판잣집 춘천옥에 도착했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아버지의 '유정천리' 노랫소리다.
술상과 주전자를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네댓 명의 아저씨들이 반은 취하고 반은 졸면서 춘천옥 아줌마를 중심으로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아부지 엄마가 아부지 데리고 오래요."
아버지 팔을 잡고 흔들었다.
아버지가 옆에 끌어다 앉히며 구운 양미리 하나를 집어 주었다.
"얘가 우리 집 장손인데 공부도 잘하고 장래희망이 대통령이라네."
술친구들에게 자식 자랑을 늘어놓았다.
무령 국민학교 남자애들 대부분 장래희망이 대통령과 군인, 경찰이었다.
장손인 것과 장래희망이 대통령인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 잘한다는 것은 정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늘도 나머지 공부를 했으며 손바닥과 엉덩이를 다섯 대나 맞았다. 매일 맞다 보니 한 학기가 끝나면 손바닥과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였다.
"어! 너 어제 개 쫓아준 애 맞지?"
춘천옥 아줌마가 반색을 했다.
어제 공터에서 목줄 풀린 영식이네 메리가 춘천옥 아줌마를 물려고 왕왕거렸다. 나는 태권브이처럼 멋있게 나타나 짱돌 하나로 똥개악당을 가볍게 물리쳤었다.
"아제요 얘 과자 좀 사주고 올게요."
춘천옥 아줌마가 손을 잡았다.
엄마에게 느끼지 못했던 분 냄새와 보드라운 손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답답했다.
"어제 개 쫓아줘서 고맙다, 나는 개가 제일 무서워."
볼에 뽀뽀를 해주었는데 입에서 막걸리 냄새와 담배 냄새가 났지만 분냄새를 이기진 못했다. 가까이서 본 얼굴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였다.
담벼락의 영화 포스터 김지미 보다 더 예뻤다.
뽀빠이와 박하사탕을 사줘서 예뻐 보이는 건 절대 아니다.
아버지와 춘천옥을 나섰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아버지가 신작로 한가운데서 비틀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말복이 지났어도 운 좋게 살아있는 영식이네 메리가 컹컹거리며 짖었다.
그날 이후로 내 볼에서는 춘천옥 아줌마의 향긋한 분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줌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다.
가을날 옥색으로 물들인 한복에 반짝이는 큐빅이 알알이 박혀있는 핸드백을 들고 코스모스 흐드러진 신작로를 걸어갈 때면, 마주치는 아저씨들이 가볍게 묵례를 하고 몇 걸음 못 가서 뒤돌아봤다. 술집 여자인데도 거친 광부들은 항상 예의를 갖추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예뻐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인지 춘천옥 아줌마는 사택 못생긴 아줌마들 공공의 적이었다.
막장에서 번 돈이 저년의 치마 속으로 다 들어간다거나,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술집 작부라는 소리를 들으며 머리채를 잡고 싸울 때도 기가 죽지 않았다.
"니 남편 간수나 잘해 이년들아 니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내 치마폭에서 놀겠냐."
용감하게도 사택 아줌마들 전체를 상대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와 춘천옥 아줌마가 욕지거리하며 싸울 때도 나는 속으로 아줌마를 응원했었다. 엄마는 광산 사택의 아줌마들이 전부 편을 들었지만 아줌마 편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숨바꼭질하던 어느 날 춘천옥 뒤에 숨어서 울고 있는 아줌마를 본 적이 있다. 쭈그리고 앉아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울었는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숨죽여 울고 있었을까.
그때 난 다짐했었다.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춘천옥아줌마의 편이 되어주기로, 광산 똥개들로부터 지켜주기로 그림일기를 썼다.
아이들과 말뚝박기 하다가도 멀리서 춘천옥 아줌마가 보이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내 손에는 매끄러운 짱돌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아줌마가 제일 무서워하는 똥개가 나타나면 또 멋있게 구해줘야 하니까.
아줌마를 구해주면 분 냄새나는 뽀뽀와 달콤한 박하사탕을 사 줄지도 모를 일이다.
춘천옥 아줌마가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다가 똥개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으면, 왠지 모를 허전함에 옥수수밭으로 짱돌을 힘껏 던져버렸다.
"툭' 덜 익은 옥수수 대궁 하나가 힘없이 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