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의 수호신들

by 안개바다

아침부터 싸우는 소리에 사택이 시끄럽다.

출근길에 광부 앞으로 여자가 가로질러가면 갱坑이 무너진다는 말도 안 되는 미신 때문에 오늘도 싸움이 났다.

출근하는 영수 아버지 앞으로 민수 엄마가 홱 지나갔기 때문에 영수 아버지가 쌍욕을 했다

그날 영수아버지는 끝내 성황당 고개를 넘지 않고 집에서 술을 마셨다.

막장으로 가는 길목 성황당 고갯길에는 커다란 돌무더기와 오백 년을 살았다는 당산나무가 오색의 천 쪼가리를 두르고 '오늘도 무사히' 광부들의 목숨을 지키고 있었다.

누구나 그 옆을 지나가는 이들은 어른 애 할 것 없이 돌멩이를 던져놓고 침을 세 번 뱉었다.

그런 행위를 하면 악귀를 쫓고 재수가 좋다고 한다.


신들의 대장 처녀 무당

광산에서는 워낙 사고가 많이 나는 바람에
사택 사람들은 저마다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무속이든 식구들을 지켜줄 마음속의 신들은 하나씩 모시고 있었다.

종교의 인기 순위를 따지자면 단연코 하나님은 꼴찌였다. 교회 가서 기도하는 것보다 성황당에 짱돌 하나 올려놓고 치성드리는 것이 더 효험 있다고 생각했으며, 스무 살 처녀 무당이 하나님과 부처님보다 끗발이 더 좋았다.

처녀 무당이 굿을 할 때면 머리 하얀 할아버지나 꼬부랑 할머니에게도 반말을 찍찍했다. 그런데도 머리를 조아리며 손녀뻘 되는 무당에게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 꼴을 볼 때마다 나는 무당 누나가 상당히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유 없이 며칠을 아팠던 어느 날, 엄마의 부탁으로 밤늦게 방문한 낯선 할머니가 부엌칼로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쌀 한 줌을 내 몸에 냅다 뿌린 적이 있다. 엄마는 옆에서 사기그릇에 정안수 한 사발 떠놓고 손을 싹싹 빌면서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반면에 교회 다니던 작은 누나는 엄마 몰래 부엌에 숨어서 마귀야 물러가라 중얼거리며 동생의 쾌유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부엌과 방에서 두 종교가 대립하고 있었다.

다음날 머리가 맑아지고 깨작거리던 밥도 두 그릇이나 먹었으므로 엄마에게 그 할머니는 영험한 점쟁이로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다.

자식들과 생과사의 경계 막장에서 먹이를 찾는 남편만 지켜준다면 엄마는 어느 신이든 상관없었다.

우리 집의 종교는 큰누나와 아버지는 부처님, 작은누나는 하나님, 나는 무교, 동생은 과자가 있는 곳이라면 예배당이든 절간이든 굿판이든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을 줄 아는 실속 있는 아이였고, 엄마는 점쟁이가 모시고 있는 장군 신을 믿었다. 전능하신 신들이 세분이나 혼재돼 있는 막강한 집이어서인지 아버지는 빈번한 사고에도, 들것에 실려 나오는 광부들과는 달리 경미한 부상만 입고 걸어서 집에 오시곤 했었다.


신들도 못 가는 막장

동발을 실은 까만 제무시가 지나간 까만 신작로에 까만 광부들이 막장으로 출근을 할 때면
무령 광산의 하얀 신들이 배웅을 하며 그들의 무사한 귀가를 다 같이 기원했다.

그럼에도 갱坑이 무너져 광부들이 죽는 것을 보면 신들도 막장까지는 너무 깊고도 멀어서 따라가지 못하나 보다.



갱坑: 석탄을 캐기 위해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간 굴.
막장: 굴 속 끄트머리에 있는 작업장.
동발: 굴이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통나무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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