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의 딸

by 안개바다

첫차를 기다리는 종점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기차에서 먹으라고 삶아주었던 계란도 동생들에게 남겨놓은 채, 바퀴에 쇠사슬 체인을 감은 버스를 타고 큰누나는 싸리재를 넘었다.


첫 월급

큰 누나가 식모 살러 떠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누나가 보고 싶을 때마다 자욱이 눈이 내렸고 무령광산행 완행버스는 눈 속에 길이 막혀, 며칠씩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날이 잦아지고 있었다.

우체부 아저씨가 자전거에 소포 꾸러미를 싣고 눈길을 미끄러져왔다.

큰누나가 보낸 소포였다.

엄마 아버지에게는 첫 월급이라며 독립문표 내복 한 벌씩, 동생들에게는 어깨동무 어린이 잡지와 뉘어놓으면 눈을 감는 노랑머리 인형도 보내왔다.

'부모님 전 상서'

맞춤법도 엉망인 큰누나의 편지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식모살이에 대한 고달픔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래도 다시 오라고 해야겠어, 차라리 옆집 복순이 다니는 공장에 보내는 게 났지."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복순이 누나는 서울 구로공단 옷 만드는 공장 시다로 있었다. 명절이면 나팔바지에 하얀 머리띠를 하고 영화배우처럼 팔랑거리며 사택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에 광산의 젊은 광부들이 휘파람을 불며 희롱도 했었다.

"내일 당장 전보를 치던가 전화를 하던가 해야겠어요."

가을에 바른 문풍지가 엄마와 함께 울었다.

다음날 엄마는 거액의 돈을 주고 우체국에서 시외 전화를 했다. 누나가 식모로 있는 집에서 봄이 올 때까지만 있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렇게 큰누나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귀가

신작로를 따라 진달래가 피고 우체국 앞 살구꽃 봉오리가 터질 무렵 누나가 막차를 타고 돌아왔다.

단발머리로 떠났던 누나는 윤기 없는 머리가 어깨를 덮었고, 손은 동상에 걸려 벌겋게 부어있었다.

"언니 과자 안 사 왔어?"

"이 호랭이가 물어갈 년이 언니가 이 꼴인데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으이구 속 터져."

엄마가 동생 미숙이를 흘겨보면서 가슴을 쳤다.

누나가 퉁퉁 부은 손으로 옷 가방 지퍼를 열었다. 종합 선물세트와 화약 넣고 쏘는 딱총, 내년에 중학교 올라가는 작은 누나에게 샤프연필, 처음 보는 샤프연필은 참으로 신기했다. 바늘만큼이나 얇은 연필심이 누르기만 하면 끝없이 나왔다.

"엄마! 복순이가 편지했는데 자기네 공장 사원 모집한데 거기 가기로 했어."

"그래 아무렴 남의 집 식모 사는 거보다는 낫겠지 아무 생각 말고 일단 푹 쉬고 동상 걸린 거나 다 났거든 그때 가거라."

엄마는 누나의 밥상 옆에 앉아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주며 훌쩍거렸다.

공장에 가면 밤에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볼 거고, 동생들 고등학교까지는 자기가 책임지고 보낼 테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큰누나는 국민학교 3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다. 광산으로 이사 오기 전 농사를 지었는데 동생들 업어 키우느라 학교는 일주일에 몇 번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삼 남매를 앉혀놓고 넋두리를 했다.

"니가 장남이니까 큰누나한테 잘해야 한다. 니들 육성회비 대느라 학교도 못 다녔어 이것들아."

아버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세뇌를 해서인지 나에게 큰누나는 엄마와 동급이었다.


진달래꽃

"누나랑 나물 뜯으러 갈까? 산에서 호랑이 나오면 네가 누나 지켜줘야지."

큰누나가 활짝 웃으며 장난을 쳤다.

"걱정하지 마 누나 우리 반에서 내가 싸움 제일 잘해 호랑이 열 마리도 문제없어."

왠지 모르게 큰누나는 정말 내가 지켜줘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누나 다음 달에 복순이 있는 공장에 가기로 했으니까, 너 편지 자주 해야 한다."

누나가 취나물을 한 움큼 뜯으며 말한다.

"복순이 누나 발랑 까졌다고 엄마가 욕했는데 같이 안 놀면 안 돼?"

"복순이가 얼마나 착한데, 집에 올 때 옷을 그렇게 입어서 그렇지 서울 멋쟁이들은 다 그렇게 입고 다녀."

누나가 말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누나와 바위에 말없이 앉아 봄 햇살도 같이 먹었다.

조용한 산골에 때 이른 뻐꾸기 우는 소리만 들렸다.

이 세상에서 누나와 나 뻐꾸기만 있는 거 같았다.

문득 누나를 올려다봤다. 누나의 눈물이 볼에서 반짝거렸다. 언제부터인지 누나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누나 왜 울어?"

누나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당황한다.

나도 그만 엉엉 울었다. 오줌 싸서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을 때보다 더 길고 서럽게 울었다.

"누나 안 울게 너도 빨리 그쳐."

한참을 누나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개울가에 세수하러 왔다.

응달의 버들강아지들이 오스스 떨고 있었다.

"너! 누나 운 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빨리 세수해 눈물 자국 보이겠다."

"누나 아까 왜 울었어?"

"진달래가 너무 예뻐서 울었지, 그러는 너는 왜 울었어?"

"누나가 우니까 울었지."

물오른 버드나무를 잘라 피리를 만들었다. 누나의 버들피리는 얇아서 높은음이 났고 내 피리는 굵어서 낮은음이 났다.

소쿠리 가득 봄나물을 뜯어서 내려오는 길, 신작로에 동발을 가득 실은 제무시가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기사와 조수가 누나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누나 얼굴이 진달래 빛이 됐다.

"저 조수 놈이 누구한테."

옆에 있던 내가 욕을 하며 주먹감자를 먹이고 짱돌을 던져 버렸다. 누나가 깔깔대며 어깨를 쳐주었다.

"이제 그만해 저형들 겁나서 도망간다."

정말 제무시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누나가 말렸지만 한참을 씩씩거렸다. 제무시 뒤꽁무니에 매달렸다가 저 조수 놈한테 꿀밤 안 맞은 애들이 없었다.

진달래가 지고 무령 광업소 까만 신작로에 아카시아 꽃잎이 봄비처럼 내리던 밤에, 큰누나는 가방을 열어놓고 구로공단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울보 엄마는 옆에서 옷가지를 챙겨주며 또 울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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