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의 monologue

by 안개바다

다시는 그대 생각 안 하겠다던 결심도 허물어지고
정신없이 보고 싶을 땐, 그대가 멋있다던 카키색 낡은 잠바를 입고 외출을 해요.

아기 쥐를 노리는 길고양이처럼 한껏 어깨를 접은 채 바람 부는 골목길을 숨죽이며 쏘다녀요.

지나온 골목길엔 그대를 질투하며 원망했던 더러운 편린들만 부유하고 있어요.

바람이 데려다준 곳 목련 여인숙.

다행히 어제 떨이로 팔았던 그림값으로 물감 사고 화실세 내고도 조금 남았네요.

목련 여인숙의 문을 여는 루저들은 결핍과 열등감에 배불러있고 사랑에는 허기져 있지요.

그중에서 내가 결핍 대장이에요.

안내실 골방 전축에서 들리는 가브리엘 포레의 청승맞은 레퀴엠, 덕분에 여인숙이 거대한 무덤이 돼 버려요. 목련 여인숙 여주인은 첼로를 전공한 음대출신이라지요.

장미 꽃무늬 벽지가 도배된 목련 여인숙 205호.

오른쪽 벽 너머에서는 장기 투숙한 남자들의
화투장 내던지는 소리가 들려요.

왼쪽 벽 너머에서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여자의 떨리는 목소리도 부끄럽게 들리죠.

그대가 못 견디게 그리운 날엔 스테레오로 들리는 양쪽 옆방의 모든 음성들이 통곡처럼 느껴져요.

심지어는 왼쪽 손 검지와 중지의 신경을 잃어 첼로의 현을 잡지 못한다는, 이제는 포주가 돼버린 여인숙 여주인까지도 불쌍해요.

어쩌다가 이 후미진 곳에 날개를 접은 늙은 천사 미스 민이 "오늘도 뻔뻔하게 살아 있군요." 정겹게 인사를 해요.

밤꽃 향기 머금은 미스 민의 값싼 키스에도 나는, 풍선처럼 부푼 세포가 쉽게 뜨거워져요.
그러다가 끝내는 하얗게 하얗게 터져 버려요.

아!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개새끼 인가 봐요.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옥탑 화실로 돌아와서는, 화단에 피어있는 꽃들 보기에 면목없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새벽잠을 청해요.

잠 속에서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이 말을 하네요.

"그대의 사랑은 이미 기억의 지층에서 화석으로 동결되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