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똑 닮았네
나는 8살부터 18살까지 엄마와 따로 살았다. 아예 연락을 끊은 건 아니었지만 주로 양육자는 아빠였으며, 내가 19살이 되던 해에 이사를 가면서부터 부모님은 다시 살림을 합치셨다. 그래서일까? 딸은 주로 엄마와 더 유대관계가 깊은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빠와 유대관계가 더 깊었고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엄마보단 아빠의 성격을 더 닮았다고 생각해 왔다. 고민이 생겨도 혼자 생각하고,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도 겉으로는 무덤 해 보이고, 모든 표현에 있어 무뚝뚝한 모습들이 말이다. 그와 반대로 매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희로애락의 표현이 확실하게 보이는 엄마를 보며 난 확실히 아빠 피를 받았구나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어느 때와 같이 집에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에 주방을 정리했다. 그러던 중 무심결에 전자레인지를 열어봤고 그 안에는 내가 먹으려고 데워놨던 반찬이 있었다. '아. 이거 먹으려고 데워놓고 안 먹었네.' 그 반찬을 도로 치우던 나는 매번 전자레인지에 무언가를 데워놓고 까먹는 엄마가 생각났다. "아이고 그거 먹으려고 데웠는데 까먹었네. 꺼내놔 줘."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근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함께 하던 중, 친구가 내가 전에 일했던 분야에 대해 물어봤고 나는 답변을 해주던 중에 관련해서 줄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하던 식사를 멈추고 예전 메일과 파일함을 뒤져보았다. 뭔가 지금 주지 않으면 나중에 잊어버릴 것 같고, 바로 이 자료를 넘겨줘야 해결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친구가 "밥 먹고 해. 지금 급한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내가 평소 식탁에서 엄마에게 말하는 모습이 오버랩 됐다. "엄마 밥 먹고 해. 그거 이따가 해도 되잖아." 우리 엄마도 그랬다. 밥 먹던 와중에도 생각난 게 있으면 밥은 뒷전이요, 생각난 걸 찾기 바빴다. 그날, 내 모습은 엄마와 같았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일기장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버릇이 있다. 현재 나의 상태가 됐든, 욕이 됐든, 앞으로의 계획이 됐든. 무언가를 끄적이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어느 날, 무언가를 찾으려 엄마 방에 들어갔던 나는 엄마의 침대 위에 대충 놓인 종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하얀 종이에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든 검정 글씨로 가득했다. 엄마도 엄마만의 슬픔이 있고, 고충이 있고,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었고 그걸 종이에 끄적여놓았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녀는 매일 밤 각자의 방에서 무언가를 끄적이며 마음을 채웠던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음식을 잘게 쪼개먹는 게 보기 싫었고, 큰 이모가 유난히 절뚝거리면서 걷는 게 보기 싫었거든? 근데 이제 엄마가 그러고 있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닮기 싫어했지만 결국 닮아져 가고, 나 역시 엄마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엄마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엄마도 젊었을 땐 나와 같은 생각과 모습이지 않았을까?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품어주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