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장 골목, 잊히면 슬플 밥상

by 바롱이

제주 서귀포매일올레시장 골목 안에는

작은 밥집 하나가 있었다.


작고 마르신 할머님이

30여 년 넘게 지켜온 곳이었다.


보리밥 정식 3,000원,

사골국밥 4,000원.


지금은 쉽게 믿기 어려운 가격이지만,

그곳에서는 늘 한결같은 밥상이었다.


연세가 드시며

음식 만드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고,

결국 2023년,

밥집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보리밥을 주문하면

할머님은 맹물 대신

예스러운 주전자에 담긴 결명자 물을 내어주셨다.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한 잔.

그건 손님을 향한

소박하고도 깊은 배려였다.


잠시 뒤, 금색 쟁반 위에

보리밥과 밑반찬이 한 상 차려졌다.


콩나물국의 칼칼한 시원함,

꼬독하게 씹히는 무말랭이무침,

짠맛 속에서도 아삭함이 살아 있는 짠지.


여기에 통팥의 은은한 단맛과

향긋한 미나리무침이 더해졌고,

부추 넣은 김무침까지 곁들여졌다.


짭짤하고 구수한 찬들이 모여

집밥의 온기를 만들었다.


그 사이에서 보리밥은

담백함으로 맛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대접에는

꺼끌한 보리밥과 고슬한 쌀밥,

채 썬 배추와 숙주나물, 버섯, 어묵볶음,

부추무침과 깻잎, 달걀프라이가

소담하게 얹혀 나왔다.


고추장과 깨를 더해

슥슥 비벼 먹은 그 한 그릇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묵직했다.


거칠면서도 통통한 보리알과

여러 재료들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수수한 맛의 여운을

길게 남겼다.


값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던

소박하고도 든든한 한 끼였다.


지금은 사라진 밥집이지만,

그 골목 어딘가에는

여전히 할머님의 손맛과 인심이

조용히 머물러 있을 것만 같다.


이젠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을 제주의 맛.


잊히면 슬픈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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