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녘 태백으로 향하기로 했다.
남녘에서는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요동쳤지만, 오랜 벗과의 약속이 나를 북쪽으로 이끌었다. 36년 지기 친구와 통화를 하고 저녁에는 물닭갈비에 한잔하기로 했다.
낡은 무궁화호 열차는 늙어가는 나를 태우고 묵묵히 북쪽 길을 달린다.
태백은 겨울 나라였다. 봄은 아직 시늉도 없었다. 산등성이마다 눈빛이 남아 있었고, 바람 끝에는 겨울의 기운이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친구를 만나 물닭갈비에 술잔을 기울였다.
태백 물닭갈비는 광부들의 먹거리가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 산나물과 채소, 닭고기를 육수가 담긴 가마솥에 넣어 끓여 먹던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닭볶음탕이나 철판 닭갈비와는 결이 다른 소박한 맛이다.
36년 세월을 함께 건너온 친구와 마주 앉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태백의 밤도, 우리의 우정도 함께 깊어진다.
친구와 헤어진 뒤 태백에 오면 늘 묵는 사우나로 향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씻고 몸을 누인다. 내일 아침 6시 20분, 검룡소로 가는 첫 버스를 타야 한다. 그렇게 태백의 하루가 저문다.
다음 날 아침 6시 15분.
밖은 아직 어둡다. 하지만 태백버스터미널 안은 불빛으로 환하다.
6시 17분, 조탄행 버스에 오른다.
기사님께 검룡소에 가는지 여쭤본다.
“네, 갑니다.”
짧은 대답이지만 어딘가 믿음이 간다.
6시 20분, 버스는 조용히 출발한다. 6시 40분, 검룡소 버스정류장에 내리며 기사님께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넨다.
그때까지 버스 안에는 기사님과 나, 단둘뿐이었다.
버스가 떠나자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눈 내린 숲길을 따라 검룡소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눈길은 사람 한 명 지나갈 만큼만 치워져 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자국이 눈 위에 ‘보드득’ 소리를 남긴다.
숲길 옆 계곡물은 ‘졸졸졸’ 잔잔한 리듬을 만들며 나그네의 귀를 어루만진다.
숲길 끝에서 마침내 검룡소를 만난다.
태백의 깊은 산속에서 한강의 첫 숨결이 조용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명승 태백 검룡소는 길이 514km에 이르는 한강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곳이다.
검룡소는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아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석회암반을 뚫고 하루 약 2천 톤의 지하수가 솟아나는 냉천이다. 사계절 내내 약 9℃의 수온을 유지하며 20m가 넘는 계단식 폭포를 이룬다. 오랜 세월 흐른 물줄기가 암반을 깎아 깊이 1~1.5m, 폭 1~2m의 물길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이 몸을 틀며 오르는 형상처럼 보인다.
이렇게 솟아난 물은 정선과 영월을 지나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 뒤 서해로 흘러간다.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도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이 물줄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민족의 젖줄 한강의 생명 근원지라 부른다.
매년 8월이면 이곳에서 한강발원제가 열린다.
한강은 이렇게 조용한 산속에서 첫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천천히 발걸음을 돌린다.
눈 위에 발자국을 하나하나 남기며 걷는다. 다음에 올 사람이 이 길을 안심하고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태백을 좋아한다.
대부분 기차를 타고 이곳을 찾는다.
태백역 안에는 우현 김민정 시조시인의 시 「철로변 인생 - 영동선의 긴 봄날 1」이 걸려 있다. 나는 그 시를 읽으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무심히 피었다 지는 풀꽃보다 더 무심히
모두가 떠나버린 영동선 철로변에
당신은 당신의 자리 홀로 지켜 왔습니다.
(중략)
세월이 좀 더 가면
당신이 계신 자리
우리들의 자리도
그 자리가 아닐까요.
열차가 사람만 바꿔 태워
같은 길을 달리듯이.”
시를 읽고 나니 마음이 잠잠해진다.
당분간은 남쪽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