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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Oct 28. 2023

자신이 분노조절장애라는 아이

세상엔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이곳 인도네시아 외곽으로 이사를 하면서 새롭게 만나게 된 초등 남자아이가 하나 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교포 엄마와 바쁘게 회사 다니는 아빠 사이에 두 자녀가 있는데 그중 큰 아이가 지금 내 학생이다.


초등 5학년때 한국에서 현재 아빠가 일하고 있는 이곳 인도네시아로 이주해 왔고 영어가 주 언어인 국제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작은 아이는 초 1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스스로 교과과정을 잘 따라가고 있는데 초등 고학년에 해당되는 초 5 과정으로 바로 들어가게 된 큰 아들은 ABC도 정확히 깨치지 못한 상태라 힘들어했다.


보통 한국의 학부모들은 아이를 국제학교 보내기만 하면 영어는 저절로 깨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실상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도 적응할 때까지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겨우 따라갈 수 있다. 하물며 알파벳도 모르니 간단한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그 아이에겐 완전히 바뀐 학교 생활에 스트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을 이다.


그 아이는 잦은 말썽으로 학교에서 몇 달간 가정학습을 할 것을 권고받고 집에서 지내는 중에 나를 알게 되었다. 아이의 영어실력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빴다. "Stand up. Sit down"의 뜻도 모르고 있었다.


곧 다시 학교를 가야 했기에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부터 초 5 과정의 과학과 수학책을 가르칠 것을 요청받았다.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책 속의 언어가 어려운 거지 내용이 버거운 건 아니었기에 노력 끝에 쓰지는 못해도 내용파악은 될 정도의 수준이 되었고 다시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면 더 이상의 말썽은 없을 것이라 안도했다.


친구들도 사귀고 생일파티도 가며 학교생활을 즐기는 듯 보였던 혁이가 불현듯 인생상담을 해왔다.


"선생님, 저 사실 분노조절장애예요. 화가 나면 멈추질 못하겠어요.."

"음.. 누구나 화는 나는데 실수하지 않으려고 참아내는 노력을 한단다. 선생님 딸은 화가 나면 음악을 듣거나 스스로 분위기전환을 해보려 노력하더라. 넌 준이(혁이가 애지중지하는 야옹이다)가 있으니까 사진을 갖고 다니면서 화가 날 때마다 보는 건 어때? 마음속으로 5나 10까지 세어보는 것도 괜찮고.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가라앉거든. 아니면 그 화가 난 상황이 벌어진 공간에서 잠시 벗어나있는 건 어때?"

"좋은 방법인 것 같긴 하네요.. 고민을 해봐야겠어요."


제법 어른스럽게 대답한다. 사실 나와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도 이상한 행동을 보인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공부하러 오기까지 마음먹는 게 좀 힘들, 오기만 하면 성실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공부 잘하고 갔다.


공부하러 오기로 한 목요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혁이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오늘 수업 못합니다."

더러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다음 날 아침 그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학교에서 일 년 동안 오지마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며칠째 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듭니다. 한국을 가야 하나.."


내막은 이랬다. 말썽이 생긴 아침 등교하기 전, 혁이의 기분이 집에서부터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학교를 자주 빠지는 건 안되니 그냥 보냈고 예민해져 있던 아이의 의자를 친구가 실수로 건들고 지나간 모양이다. 그게 촉발제 역할을 하게 했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아니었기에 학교에선 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아이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아들의 전화기와 컴퓨터까지 모두 빼앗아버렸고 언제까지나 주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사건이 있은 후 처음 우리 집에 공부하러 온 아이는 역시나 기분이 전과 달리 뾰족해있었고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과학잭을 열어 전자회로에 대해 단어, 문장 그리고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오늘은 학교가지 않고 우리 집에 공부하러 온 이틀째 되는 날이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전날보다는 많이 차분해있었고 공부도 제법 성실하게 해 나갔다.


이렇게 멀쩡한 아이가 장기정학처분을 받을 정도의 분노를 표출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부모는 앞으로 이 사안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곁에서 지켜보는 내 가슴도 먹구름이 잔뜩 낀 듯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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