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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여행 - 버스 타고 시애틀로 (7)

시애틀도 노숙자가 참 많다.

by Sassy

무서운 새벽 마약거리를 뚫고 걸어서 기차와 버스 공용인 밴쿠버 기차역까지 잘 온 우리는 역내가 뿌연 연기로 가득한 모습에 여전히 긴장했으나 대기실의 중국계와 인도계 승객들의 도움으로 겨우 한시름 놓고 새벽 5:30 버스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날것으로의 여행을 좋아하는 나지만 마약거리를 새벽에 지나는 건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라 충격이 꽤나 컸다. 아마도 내 평생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시애틀행 버스에 오른 우리는 친절한 백인 기사의 유머러스한 설명과 안내로 마음을 좀 더 진정시킬 수 있었고 곧 지나게 될 이민국 준비를 위해 가방 안의 먹거리도 모두 뱃속으로 옮긴다.


이민국에 제출할 서류를 적기 위해 필요한 펜은 그 친절한 인도계 젊은 여자에게 빌렸다. 늘 갖고 다니는 펜인데 하필 또 이럴 때 안 챙겨 온 거다..(나중에 보니 충격 탓에 못 찾은 거지 필통이 가방에 통째 들어있었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시애틀을 향해 출발했고 깜깜했던 창밖 풍경이 점점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나무들의 모습과 풍경이 놀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


곧 이민국에 도착하니 기록한 서류를 잘 챙겨서 차에 둔 물건 없이 모두 챙겨서 내리고 이민국 통과 후 다시 차에 오르라고 버스기사가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이민국통과가 그렇듯이 웃으며 친절하게 그들을 대하는 게 유리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민국통과는 늘 긴장된다. 특히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국이라 더더욱 그렇다.


기사님의 조언대로 우리는 활짝 웃으며 이민국에 서류를 제출한다. 우리를 맞이하게 된 직원은 백인남자인데 우리 여권을 보더니 한국서 온 거냐고 묻는다. 또 왜 그러나 싶어 조금 긴장했으나 다행히도 시비걸기 위함은 아니었고 오히려 친절히 맞이해 주기 위해서였다.


이민국직원은 오래전 자신도 한국 평택에 일 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영어교사로 있지 않았나 싶다.


무사히 통과한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오른다. 이제 곧 시애틀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참 묘한 기분이 든다.


드디어 시애틀 기차역도착.

기차역 안은 정말 멋지다. 화장실도 참 좋고 부자동네인 게 바로 느껴진다. 정말 품위 있고 각 잡힌 명품역이다.


딸아이와 나는 시애틀역의 매력에 감동받고 이래서 미국미국하나보다 하며 길안내를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간다. 나가는 길 찾기도 어렵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겨우 역에서 벗어나 다운타운으로 향한다.


가는 길의 시작은 예뻤는데 느낌은 밴쿠버만큼의 편안함은 아니다. 신호도 지키지 않는 차들이 더러 있고 철저히 사람위주였던 캐나다와 비교했을 때 차량이 한국처럼 조금은 공격적임을 느낀다.


아이에게 보행자신호가 와도 한 박자 늦게 도로로 내려갈 것을 권한다. 아니 주의시킨다.


멋진 시애틀의 첫 모습에 잠시 밴쿠버의 마약거리를 잊었으나 다시 그 악몽이 되살아난다. 여기는 특정거리뿐만 아니라 온통 구석구석에 노숙자천지다. 걷는 이들의 동태도 살펴야 한다.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아시아 나라들에서 보기 어렵게 약에 쩐 사람들, 갈지자로 도로를 걸어 다니는 이들이 북미에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아마존의 본사가 바로 앞에 보이고 루이비통과 샤넬 등 여러 명품샵도 많이 보이는데 거리 구석구석에 노숙자들이 고개를 떨구고 몸이 접힌 채 박혀있다.. 충격적이다..


미국과 캐나다에 대해 환상을 품고 온 아이의 표정에서 충격받음이 그대로 노출된다.


"엄마, 차라리 캐나다가 낫겠다. 특정구역에만 몰려있는 밴쿠버와는 다르게 이건 일상이야.. 미국 정말 무서워.."

"엄마도 충격적이다.. 시애틀은 부자동네라 생각해서 아주 질서 있고 멋들어진 곳이라 우리 모습이 초라해지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엄마, 일단 유명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으로 가보자.."


마켓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근처에 씹던 껌을 벽에다 엉망으로 붙여놓은 일명 <gum wall>이 있는데 상쾌한 기분이 드는 곳은 아니다.


1990년대에 껌벽 앞의 극장에 방문한 이들이 1센트를 껌에 붙여 벽에 붙인 게 시작이라는데 지금은 동전은 제거되고 껌만 남은 곳이란다.


미국인들은 참 별짓을 다 한다 싶다.


스타벅스 1호점은 그냥 1호점이라는 유명세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 먹자고 한다. 아이스크림이 하나에 만원이다. 결재 시 팁을 선택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아이스크림 사면서 무슨 팁을 바라나 싶어 그냥 노팁 누르고 만 원짜리 콘만 받아간다.


인도네시아에서 아이와 같은 학교 다니다가 워싱턴대학을 가기 위해 시애틀 소재 고등학교로 전학한 친구가 있어 둘은 만날 약속을 정한다.


처음엔 애들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노는 동안 혼자 시애틀시내를 돌아다닐 계획이었으나 노숙자들과 비정상적인 모습의 사람들 때문에 그냥 마켓이 있던 해안가 밴치에서 밀린 인도네시아어 공부나 하기로 한다.


점심때라 그런지 가족, 연인 단위의 그룹이 왔다가 먹고 떠나고를 반복하는 동안 가져온 인니어책을 펼쳐 바닷바람과 함께 정박된 거대한 크루즈배를 보며 여행하느라 빠진 수업을 보충한다.


일본 음악학교인지 교복을 입은 수십 명의 여학생들과 몇몇 교사들이 근처에서 깔깔대고 사진도 찍고 즐긴다.


아이와 친구는 점심을 먹고 얘기도 많이 나눴는지 내가 있는 쪽으로 오겠다고 연락을 해온다.


시애틀은 17세까지 모든 교통수단이 무료라 둘이서 밥 먹고 워싱턴대를 다녀왔나 보다. 딸아이친구 오빠 둘이 다니고 있어서 이미 익숙한 공간인지 잘 안내를 해준 듯하다.


걸어가도 되는데 딸아이친구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게 낫다는 바람에 우리 셋은 시애틀 지하철로 간다.


미국 지하철은 처음인데 언젠가 쇼츠로 본 뉴욕지하철과 비슷하다. 17세까지만 무료인데 돈을 내고 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지하철 내부의 승객들의 모습도 조금 긴장을 하게 하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우리의 시애틀여행은 마쳤고 돌아갈 땐 기차를 타고 캐나다로 복귀한다. 시애틀 전체를 둘러본 건 아니지만 아주 부자들만 산다는 그들만의 바닷가마을을 제외하고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란 게 시애틀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미국 여러 주를 여행해 봤다는 아이 친구의 미국에 대한 의견도 비슷하다. 다른 주는 훨씬 심하고 그냥 그들과 눈만 맞추지 않고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아이의 충고라면 충고다..


다음은 밴프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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