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서 벗어나기

˚₊ ˚ ‧₊ .:・˚₊ ˚ ‧₊ .:・˚₊ *˚ㅣ유체이탈

by 윤슬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늦은 저녁부터 이른 아침까지 끊임없이 죽고 싶다는 말을 되뇌인다. 죽고 싶어. 죽고 싶다.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이대로 잠들 듯 스르륵 죽어버리고 싶어. 그냥 가만히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사실 내가 그 말을 반복한다기 보다는 그냥 떠오르는 문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머리 속 가득 떠오르는 문장, 뒤이어 심장이 조여오는 고통을 나는 그저 겪는다. 다른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둠이란 무거운 것인가. 어두워짐과 동시에 온 몸을 짖누르는 듯한 무게를 느낀다. 그 무게가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지는 날에는 잠에 들지도, 잠에서 깨지도 못한채로 그냥 존재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어둠과 함께 오는 고통. 처음엔 은근한 무게로 눌렀다. 그다지 빠르지도 못한 나는 그 무게로 인해 일어나서도 둔하게 움직였다. 은근한 무게였던 그것이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강렬한 통증과 같은 것으로 왔다가는 날이 생겼다. 그런 밤을 겪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다 해가 떠있는 시간까지 어둠이 찾아오는 일이 생겼다. 세상의 온갖 미물들을 키우는 빛이 내게만 들지 않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 겹겹이 쌓였던 낮 다음이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런 것 밖에는 없게 되는 것이었다. 죽고 나면 편해지겠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도, 날카로운 무언가로 스스로를 찌르는 일도, 한꺼번에 삼키기 위해 조금씩 약을 모으는 것도. 내가 생각하는 고요한 마지막과는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 그냥 스스륵. 잠들 듯 고요하게 죽게 되길 기도하며 새벽을 보낸다. 나를 조금이라도 가엾게 여기신다면 부디 이대로 조용히 세상을 떠나게 해주세요. 시끄러운 생각을 멈추게 해주세요. 저를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가벼워지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게 해주세요.




살아오는 매순간 무언가를 해내 보이려고 동동거렸다.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화목한 가정에 대한 부러움까진 못 본 척 넘어가지는 못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어딘가 많이 삐걱거리는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어느 부분도 개선하지 못했던 그런 집이었다. 부족함이 많은 모습으로 평생을 살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그리 뛰어날리 없는데, 나에게 헛된 희망을 품는 사람들의 달뜬 눈동자를 보면. 무어라도 해내보이려 이리저리 뛰어다닐수밖엔 없었다. 끊임없이 오고가는 그 눈동자를 가만 보고 있는 것보다는 그 편이 더 쉬웠다. 돈, 재능, 넉넉한 마음… 아무것도 손에 쥔게 없었기에. 그 중 하나라도 가지고 나고 자란 사람들과 경쟁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유치원, 초등학교. 뭐 그런 나이 때에 1등 몇 번 해본 경력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데 집 안의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나를 기억했다. 그 기대 때문에.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시간에 맞춰 뛰어다니는 일도 일,이년이지. 본인이나 잘 들 좀 살지 왜 나한테 그래. 서늘한 분노로 찬 말들을 삼켜가며 몇 년을 보내 온 지 모르겠다. 단지 노력하는 재능 하나에 기대어 몸이 상해가는 것도 모른척하며 지금까지 뛰어왔다. 그러나 이젠 안 된다. 기한 없는 달리기를 계속 할 수는 없다. 몸이 상해가는 것을 모른 채 뛰어 왔다고 했나. 사실 그보다는 나의 노력의 재능이 밑바닥을 보인것이 더 큰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그걸 깨달음과 동시에 노력이라는 것의 게이지의 바닥이 보이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버렸다. 모든 것에는 총량이라는 게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나는 게임 초기에 노력의 총량을 다 써버리고 바닥난 게이지를 근근히 안고 사는 캐릭터 같은 것이다. 이런 캐릭터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되려나.




스물 아홉. 누군가는 많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적은 나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 스물 아홉살까지 매시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전력질주의 달리기를 계속해왔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더는 뛸 수 없다는 나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숨이 너무 찼다. 그런 것 같다. 나는 너무 많이 뛰어버린 탓에 숨이 차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숨이 차도록 열심히 뛰었는데 여전히 손에 쥔 것이 없다면. 그것은 피를 다 써버린 캐릭터에게 체력을 채울 수 있는 물약조차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물 셋. 휴학 한 번 없이대학을 졸업한 나이인 주제에 몹시도 조급해졌던 나는 당장 갈 수 있는 크지 않은 회사에 취직했다. 물론 계약직이었다. 그러나 그때쯤 이미 바닥을 보이던 노력의 게이지를 알아버린 바람에. 또 아직도 한참 남은 미래를 생각하면 큰 노력같은 건 기울일 수 없었다. 그때쯤 나는 학벌이 대단히 좋지도 않고, 뒷배같은 건 당연히 없는데다, 눈빛까지 흐린 계약직 인턴. 그런 인턴을 정직원으로 채용해 줄 회사는 없다. 그렇게 나는 몇 번 크지도 않은 회사를 전전하다 결국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면 제멋대로 쉬어버리는 그런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봄직한 회사에는 취직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했다. 헛된 기대는 내 잘못이었다. 나는 자리를 지켰다. 왜냐하면 더 이상은 뛸 수 없었기 때문에.




더이상 상승에 대한 기대는 없다. 그동안 높아지려 뛰었던 모든 시도가 제자리뛰기 뿐이었다는 것도 안다. 방향키같은 건 이미 고장난지 오래였다. 나는 무엇을 바라나. 다만 나를 짓누르는 이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란다. 어둠에서 시작된 무게가 모든 낮을 다 잡아먹기 전에. 그러나 그런 희망이라도 품는 순간. 보다 강한 무게에 짓눌려 새하얀 어지러움에 잡아먹힐 뿐이다. 삐….하는 이명과 함께 순백의 어지러움 속에 갇혔다. 갇혔다 돌아오는 동안엔 잠시 생각을 멈출 수가 있다. 기왕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면 모든 것을 새하얗게 지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하얀 그 순간을 잠에 든다고 말할 수가 있다면. 나는 새벽 내내 잠시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정말로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도 구별해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현실이 숨이 막혀 자꾸 꿈 속으로 도망가는 것인지, 꿈이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인지.




숨이 막혀온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인지 정말 죽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겪은 일 중에서 골라보자면 숨을 쉴 수 없이 심장이 조여오는 그 일이 죽음에 가장 가까웠다. 숨을 쉬지 못해서 심장의 움직임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고 결국엔 뇌의 활동까지 다 멈추면 그때는 정말 죽게 될까. 숨이 막히는 순간이 또 온다면 혀를 그냥 딱 깨물고 죽어버릴거라 생각하지만 이명의 순간이 끝나면. 이번이 마지막이었을지 모른다고, 점점 가만해질까 하는 호기심 섞인 기대. 그 모순 사이에서 온 새벽을 다 보낸다. 당장이라도 잠들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이 가물가물 감겨오는 눈꺼풀에 지고마는 이른 저녁. 이대로 잠들면 안 될 것 같다 감각하면서도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포기하고 침대에 누우면 또 세상의 모든 걱정에 짓눌려 편히 잠들 수 없는 새벽. 언제부터 이런 모습으로 어둠을 보내왔는지도 모르겠다. 새벽에 가장 오래 깨어있는 다는게 새별을 잘 안다는 말이 된다면 새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다. 아니면 나는 누구보다 꿈이 많은 사람이었나. 차라리 그 모든게 끔찍한 악몽이라 생각하는게 더 편했다. 그 감각이 정말 전부 꿈이었다면 그냥 깨어버리면 되니까.




그래 악몽에서 깨어나자. 형체없는 무게로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버리자. 몽롱함이란 단어를 지워버리자. 세면대 가득 차가운 물을 받는다. 차오르는 물. 그 물 속으로 잠수.




푸-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니 잠이 깨는 것 같다. 한결 가벼워진 몸. 잠을 깨워버리길 잘했다. 오랜만에 가벼운 몸을 느낀다. 욕실에서 나가기 위해 물기없는 얼굴을 닦는다. 얼굴에 물기가 없다. 수건도 하나도 젖지 않았다. 뒤돌아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엔 내가 없다. 나는 세면대에 얼굴을 박은 모습 그대로. 난 지금 몸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