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ㅣ유체이탈
섬뜩한 기분. 척추를 따라 서늘한 느낌이 올라왔다. 그와 함께 식은땀이 나는 것도 같았다. 물론 실제로 땀이 나진 않았지만. 아니, 사실 땀이 났는지 잘 모르겠다. 내 몸은 여기가 아니라 저쪽에. 세면대에 머리가 박힌 채 있으니. 형체없는 생각들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것이었나. 생각이 실체의 본질인가. 지금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원래 이렇게 몸을 버려두고 뛰쳐나올 수 있는 건가. 세상에 나밖에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일까. 아니면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정신과 몸을 넘나들며 살고 있던 것일까. 여태껏 나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 정말 억울할 것 같다.
새하얀 조명 바로 아래. 어떤 거울보다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는 화장실 거울.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없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이런 투명이야. 늘 이렇게 가볍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없어서 텅 빈 투명이래도 좋아. 아니 그래서 더 좋아. 그렇다면 나에겐 어떤 것도 기대되지 않을테니. 무겁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어쩌지도 못했던. 그런 몸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기뻐서 소리를 내질렀다. 물론 그 소리가 바깥으로 배출되지는 못한 것 같다. 소리가 몸 안에서만 맴도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가 갈비뼈 사이를 돌며 통통 튀어다녔다. 몸이 없는데 몸의 내부를 더 잘 느낄 수 있다니. 그렇다면 나는 지금 환상 속인가. 꿈 속인가. 물론 어떤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다만 이런 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 있길 바랄뿐. 이 탈출의 끝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날 수도 있을까. 훨훨 날고 싶었는데, 가진것도 없으면서 붙잡고 있는 것들을 하나도 놓지 못한 나는 지상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날게 되면 나는 어디론가 떠나볼까. 미국? 프랑스? 스페인? 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지 않겠어. 나는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갈 수 있지 않겠어. 일단 먼저 가볍게 뛰어볼까. 사-뿐. 착. 점프 후에 착지. 날지는 못하는 모양이야. 그래도 괜찮지? 몸을 벗어났는데도 무게가 덜어진 것 말고는 특별한 기능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게 좀 아쉽지는 하지만… 일단 먼저 화장실 밖으로 벗어나기로 했다.
새하얗고 텅 비어 지금 이 말도 안되는 상황과 한 몸 같이 잘 어우러졌던 이 곳에서 깜깜한 어둠의 공간으로 뚜벅 걸어들어온 방 안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 어느것 하나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흐트러진 물건들, 대충 씻어 엎어놓은 배달 용기, 내용물이 삐죽 튀어나온 쓰레기 봉투까지. 나의 죽음을 유예시켰던 그 곳. 어지러운 공간을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나는 아니었다. 어지러운 공간을 끔찍해했다. 그러나 도저히 치울 힘이 나지 않았다. 물 먹은 듯 눅눅하고 축 늘어진 몸으로는 벌레만을 면하는 정도의 상태로도 충분히 벅찼다. 회사도 겨우 다니는 주제에 청소를 하기 위해 힘을 낼 수는 없어서. 급한 것만 치우고서는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지러운 상태를 알면서 뒤돌아서 눈을 감는 일은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죽으면 다 편해질거야. 다 끝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새벽내내 하면서도 죽지 못했던 이유는 사실 집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죽으면 누군가는 이 방에 들어와 나의 죽음과 방의 상태를 확인하게 될 텐데. 사건의 정황은 없다하더라도 이 방을 치우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하니까. 내가 해야하는 일을 누군가 대신하게 두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 일이다. 무엇보다 할 일을 하지 않고 더러운 상태로 사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가 않았다. 마지막 모습을 그런 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누군가들을 위한 정리를 해놓고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죽음을 유예했던 날들이었다. 죽고나면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얼마만에 느껴보는 가벼움인지… 가벼워진 나는 일단 방 청소를 하기로 했다. 죽음까지 유예시켰던 청소를.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몸과 나는 다른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육체에 정이 들었던 탓인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모습이 이 방처럼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렀다. 사실 그런 마음같은 건 다 상관없이. 방을 나서는 순간 청소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따로 담겨있는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아 넣고 봉투를 묶어놓았다. 정신없이 꺼내놓은 책과 물건들은 차곡차곡 정리해 책장에 꽂고 서랍에 정리했다. 들은 게 없는 냉장고는 정리할 것도 없었다. 대충 씻었던 배달 용기들은 다시 한 번 깨끗이 씻어 분리수거할 수 있게 한 곳에 모았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씻고 눕기에 바빴다. 씻는 것도 겨우 씻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후엔 저녁도 거르고 곧장 침대로 밀려들어갔다. 불편한 회사에서 먹는 점심이 충분할리 없었는데도. 참을 수 없는 피곤함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살다가 어떤 날은 갑자기 밀려오는 허기에 다 먹을 수도 없는 음식들을 배달시켜 턱 끝까지 밀어 넣었다. 채워넣는다고 해서 나의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정신없이 허기가 밀려오는 순간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움직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 뿐이었다. 그러고보면 내 몸이고 내가 움직이는 것인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규율과 가족에게서 오는 부담이 무거웠다. 그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탓했던 날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보다는 내가 나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가두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내가 좀 한심했다.
요철이 많아 잘 닦이지 않는 배달 음식 용기를 구석구석 닦는다. 이미 희망은 한 풀 꺾였던 때. 기대하면 실망이 큰 법이라 되뇌였지만 그래도 자꾸 작은 기대들이 피어오르던 때. 기대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기대감으로 둥둥 떠다니던 대학교 시절 처음 이 집으로 이사왔다. 그때는 두시간을 족히 걸리는 본가에서 반찬을 싸들고 오기도 했고, 간단한 요리지만 해서 먹을 때도 있었지만.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기대의 바람이 쪼그라들며 요리하는 횟수도 점차 줄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맛을 내고, 치우는 과정들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하는 일인지. 물론 배달 시켜먹는 일이라고 즐겁지는 않았다. 배달앱에 나열된 기름진 음식들을 보면 허기에서 비롯된 착각으로 양을 넘치게 시켜댔다. 그리고 나서는 반도 먹지 못하고 다 남길거면서 욕심부린 30분 전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꼭꼭 씹어서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집어 넣었어야 하는데 몇 번 씹지도 않고 모양 그대로 삼킨. 잘 먹을 줄도 모르는 나를 자책했다. 돈을 들여 음식을 시켜놓고 후회나 자책같은 것만 할 거면 더는 배달 음식을 먹지 말아야겠다며 앱을 지웠다가 곧 다시 설치하는 일은 또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몸과 정신에 좋은 것 하나 없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했으면서. 너저분한 집을 보이고 싶지 않은게 다 뭐라고. 짓누르는 무게에서 겨우 벗어나고선 가장 먼저하는 일이 겨우 일회용기를 씻는 일이라니.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식사를 해본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곧 큰 집으로 이사갈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들어왔던 작은 집. 집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나의 작은 방. 볕이 잘 드는 큰 집으로 이사할 날을 기대하며 그때까지 힘내자며 힘이 필요한 나를 위해 음식을 차렸었다. 그런 기대의 시작이 언제였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쨋든 나는 아직도 안에선 낮인지 밤인지 잘 구분할 수 없는 작은 방이다. 아직도 이 방 하나를 유지하기가 버거운 중이다. 여기까지 오는 중에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줄어들었고, 언젠가부터는 잠시 무게에서 벗어나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있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잠시라도 생기는 움직임의 시간엔 또 어김없이 식은 배달 음식을 정신없이 집어넣을 수 있을 뿐이었다. 배달 음식이 남긴 것은 허무함 뿐.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을 얻는 기다림. 그런 기다림으로 채워진 하루들만을 보내다보니. 사람이 살아내는데 필요한 아주 작은 것들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단한 꿈 따위는 정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무거워서 미칠 것 같던. 육체의 족쇄에서 벗어나서는 일이라곤 겨우 이 작은 싱크대에서 용기에 낀 이물질들을 벗겨내는 일이라니. 얼마나 오래 좁은 세상 속에 갇혀있었는지 알 것 같다. 이 별거 아닌 일을 미루고 또 미루던. 움직이는 모든 행동이 소진이고 소모였던 시간들. 나는 한 숨을 한번 크게 쉬곤 더욱 힘을 내 집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까지하니 같은 하늘의 같은 공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 속 깊이 생경한 상쾌함이 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