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l 유체이탈
닿지도 않은 손이 불편한지 움찔거리는 미라를 조심히 들어 이불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장바구니를 챙겨 나갈 채비를 했다. 새 옷을 두고 입던 옷들이 다 낡아서 허름해질 때까지 입는 사람. 그러고선 자꾸 옷이 없다며 불평하는 사람. 엄마는 오늘도 입어보지 않은 새옷이 든 상자는 열어보지도 않고 익숙한 서랍 그 안에 있는 옷을 꺼내 입었다. 새로운 장바구니도 잘 개어 넣어놓고선 다 떨어져 집에 돌아오기도 전에 손잡이가 다 떨어질 것 같은 장바구니 하나만 늘 가지고 다녔다. 없는 것도 아닌데. 있는것도 없는 것처럼굴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 걸 보면 아마 평생을 가도 고쳐지지 않을 습관. 어쩌면 습성. 못쓰게 되면 그때 새로운 걸로 바꾼다는 이유로. 엄마는 오늘도 가진 것중에 가장 낡은 것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슈퍼마켓이라고 부를 법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를 지나서 꽤 큰 마트로 향한다. 혼자서는 그리 멀리 나가고 싶지 않다며 살 것도 없다는 작은 마트를 주로 찾던 엄마는 혼자 큰 마트를 향한다. 아무래도 살 게 없는 마트에만 다니기에는 살 것이 좀 생겼던 모양이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필요한 걸 다 살수 있다. 다 살 수 있다못해 넘치게 사는 세상인데. 엄마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얼음장같이 추운날에도 장을 보기위해 온 동네를 가로질러 걷는다. 겨울이란 계절은 어떤 동네도 삭막하게 만든다. 큰 바람이 불지 않는 때에도 잔잔한 바람은 늘 불고 있어서. 차가운 공기는 사람의 옷안을 파고 든다. 추위에 약한 엄마는 옷깃과 머플러 사이 틈을 메우려 자꾸 옷을 만지작 거린다. 가방을 품아 넣고 꼭 끌어안는 방식으로 열을 가둔다. 엄마는 고개를 돌려가며 주변을 살핀다. 아마 화단에 꽃이 있는지 살피는 것. 그러나 이 계절의 화단엔 꽃은 살아남지 못한다. 사계절 내내 푸르게 살아있는 가짜같은 풀들만이 남아있었다. 어릴 때 집에선 식물을 키웠다. 엄마는 식물에 물을 주고 때때로 영양제를 꽂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꽃을 피워냈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도 꽃으로 해놓았고. 어딘가 가자는 말 속엔 꽃이라는 말이 들어있었던 것 같기도하다. 특히나 추웠던 어느 겨울에 우리집의 식물은 다 시들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뒤에도 꽃이라는 단어를 몇번이나 들려왔던 걸 보면 엄마는 어쩌면 꽃을 좋아하는 사람.
볼 것 없는 길을 지나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마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바나나, 사과, 오이, 양파, 당근, 양배추, 라면, 식빵… 그리고 계란, 두부. 전보다 더 야위어보이는 건 이런 까닭일까. 영양소를 다 채우기엔 어쩌지 부족해보이는 카트 속 내용물. 그런 카트를 끌고 잘 들여다볼일이 없던 코너를 향해 간다. 동물들을 위한 물건들이 있는 곳. 배달로 시킨 것들 보니 필요한 건 다 있는 것 같던데. 뭘 더 사려고 하는 걸까. 미라를 위해 무얼 더 해주고 싶나. 그러고보면 물건을 시킬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것들은 다 어떻게 시킨 건지. 그 와중에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엄마. 장보러 오셨어요? 고양이꺼 뭐 더 필요해요?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불렀다. 높임말이었지만 가까움이 느껴지는 가벼운 말투. 둘은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나. 미라의 일은 또 어떻게 알고 있고. 택배를 시켜준 것도 이나였다니. 의외성의 연속이었다.
-아니. 나는 잘 몰라서. 보다보면 필요한 게 생각날까해서 둘러보고 있지.
-아 그래요? 고양이 상태는 괜찮아요?
-응. 그런 것 같긴 한데. 혼자 놓고 다녀도 되는지 모르겠다.
-같이 병원 한번 데리고 가봐요. 오늘은 친구들 만나기로 해서. 내일쯤 들릴게요. 시간 언제 괜찮아요?
-아무때나 괜찮아. 그럼 잘 놀고 들어가. 추운데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고.
-네, 엄마. 또 연락드릴게요.
아주 익숙한 듯 대화를 이어나가는 둘의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단체 채팅방의 대화를 끼지 않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다들 자주 나타나진 않았지만 새해나, 누군가의 생일, 또는 만날 날을 정할 때면 한번씩 나타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던데. 나는 밖에서 어떤 내용을 나누고 있는지 확인할뿐. 들어가보지 않았다. 주로 만나는 이 도시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오는 길, 나와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밝은 척 이야기하는 것, 나의 삶을 해명하는 것 모두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이 도시를 떠나고도 초반에는 인연을 유지하고자 들어가지지 않은 어플을 자주 들어가보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다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고집스레 느껴지는 대화 내용들. 깐깐한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게 지쳐갔다. 그래서 나는. 가려면가라고해. 나는 이미 가고 있어. 그들을 붙잡지 않기로 했었다. 그들의 마음도 아마 같은 것이라. 그런데 이게 마지막이라면. 마지막 인사는 하지 못했지만. 얼굴 한번쯤은 보고가도 되지 않을까. 한번 따라가볼까. 관계들이 다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