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있던 작은 아이를 알아봐주기

˚₊ ˚ ‧₊ .:·˚₊ ˚ ‧₊ .:·˚₊ *˚l 유체이탈

by 윤슬









그날만큼 나를 긍정했던 적은 더 없었다. 능력이나 재능보다는 우연이나 행운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그날의 기억. 이후로도 비슷한 일은 간간히 일어나긴 했지만 정말 잔뜩 기대한 뒤에 오는 작은 행운들이란 금방 잊히기 마련이었다. 그날 만큼 생생한 기쁨의 순간은 잘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날이 내 인생에 찾아올 유일한 행운. 그 행운의 날을 나는 왜 봐야했을까.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며 가지고 들어간 상장은 집에 들어간 이후로는 큰 효용이 없었다. 몇 시간만에 찢기고 낡아진 상장은 결국 쓰레기 봉투로 들어가야만 했으므로. 첫번째 상장으로 만들어지 초등학생의 부푼 마음은 금방 땅으로 꺼졌다. 집은 평소같았지만 또 평소같지 않은 쎄한 분위기. 문앞에서부터 느껴졌던 의뭉스러운 긴장감은 딸깍 열쇠를 돌리자마 터져나왔다. 다 버리고 가겠다며 물건을 던지는 사람과 마음대로 어딜가냐며 소리치는 사람. 두 사람은 작은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눌러왔던 감정을 마음껏 표출했던 거다. 오랫동안 눌러온 일은 쉽게 멈출 수가 없어서. 자꾸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문이 열리는 시간까지 멈출수가 없었던 거다. 이미 봤던 풍경. 원치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반복된 장면. 고요한 시간에 자연스레 흘러다오는 그 장면을 바라보다보면 무뎌지기도 했다. 그땐 무서웠지만 다 큰 지금의 나는 그렇게 무섭진 않아. 그것보다 무서운 걸 많이 알게 되었으니까. 이젠 날아다니는 물건들에 치인다 해도 그저 그런 마음뿐일거야. 그러나 과거의 장면 속 나는 방에 들어가 있으라는 소리침에 이미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손에 쥔 종이 쪼가리같은 건 그냥 현관 앞에 흘리고선 방 안. 그리고 이불 속에 갇혀 먹먹하지만 여전히 또렷한 목소리가 귀를 통과하는 것을 다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몸이 다 큰 어른이라해도 소용없었다. 어른이 된 나는 어른의 세계의 법을 깨우쳤을 뿐이었다. 도망치기. 피하기.





끊임없이 눈물을 흘려대는 어린 나. 나는 저때에 눈물을 다 흘려서. 이제는 흘릴 눈물이 없는 건가보다. 눈물의 총량이라는 말은 그런 건가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 다음엔 꼭 좋은 일이 찾아온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라. 흘릴만큼 눈물을 다 흘리고 나면. 그 다음 찾아온 힘든일에는 눈물은 흘리지 않게 된다는 말. 어린 시절 나는 땀 아니면 눈물을 내내 흘리고 있었지. 그래서 이제는 더 쏟아낼 무언가가 내 안에 남아있지 않은 거야. 사람은 물로 이루어졌다는데.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몸을 벗어나게 된 건 사람을 이루는 물질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이불 안에 갇혀 있는 나를 나는 위로할 방법을 몰라서. 눈은 내내 나를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으로 돌렸다. 아직도 나를 똑바로 생각하는 일은 힘들다. 나를 어찌 위로할지 몰라. 그저 가만 어깨에 손을 얹어본다. 툭. 아주 투명해진 나는 형체를 가지지 못해서. 너의 어깨 앞에서 울렁거리지 않는 손의 형태를 감사해야할 뿐이지만. 너는 뭔가 다른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너의 작은 어깨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질까.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 끝엔 바람같은 말을 한다. 도망가. 어디로든 너의 도망갈 곳을 찾길바라.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 나를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그리 오래 바라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람은 사람을 그리 오래 바라 보지 않는 모양이다. 그게 자신일지라도.





토닥토닥. 서툰 손짓으로 작은 사람의 어깨를 토닥이다. 나는 공원의 작은 삼각형 그 속으로 돌아왔다. 잠시 다녀왔던 그날은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행운의 날로 기억되어 있었다. 우는 저 작은 사람에 대한 기억은 기억 저편에서 한번도 나와본 적 없었다. 저 아이는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영영 잠들뻔 했었다. 그 안에서 나오니 어떠니. 바깥은 작은 방보다 좀 나은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흘렀다. 마치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달리 다른 갈 곳없는 작은 사람이 살던 집에 엄마는 여전히 살고 있다. 내가 그 집에 찾는 것을 그토록 꺼렸던 이유는. 아직 남은 것들이 많아서. 였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답답함이라는 내가 알던 감정 이외에도. 잊어버리고 싶은 슬픔. 같은 감정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내 방 한 칸은 가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여기 나는 그곳말고 달리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다고 생각한 많은 것이 모르는 것이 되고.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자라지 못한 부분이 나타나. 자꾸 앞으로만 걷고 싶었는데, 다시 돌아오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거라 다짐했는데. 결국 다시 이자리로.





나는 또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가만 누워 쌔근쌔근 잠을 자는 미라. 미라를 무릎위에 올려두고 손길조차 아끼며 바라보는 엄마. 그 앞에 쪼그리고 처음보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려던 사람이. 왜 쓰다듬지도 못하고 허공에서만 손을 왔다갔다 하는지 몰라. 답답해. 내가 알던 감정. 그러나 그 뒤엔. 질투. 나도 그런 눈으로 바라봐줬다면 더 둥그렇게 자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행운을 재능이라 믿으며 무럭무럭 성장했을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그렇게 날이 선 목소리를 들려줬던 거야. 나한테 어떻게 하라고.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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