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의 맥주

세련된 그녀의 고독한 취미

by 유진리

남편의 여동생은 무척 세련됐다. 내가 스물 몇 살 무렵에 남자친구의 여동생이었던 그녀는 서른이었다. 그 우아함이란! 평균 키에 많이 마른 축인 그녀는 티셔츠 하나, 양말 하나도 허투루 고르지 않았다. 패션업에 종사해서인지 본인에게 잘 맞는 스타일을 알았고, 원하는 아이템을 사서 오래오래 아껴 썼다. 눈에 확 띄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면 뒤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센스도 만점이어서, 내가 지금까지 좋아하는 명함 지갑이나 신발 같은 것들 대부분은 그녀가 골라 선물해줬다.


그 시절의 나는 ‘취향’이 확고한 사람을 만나면 왠지 좀 움츠러들었다. 나도 서른이 되면 저런 분위기가 날 거라고 우겨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결혼하고 나서는 시누이는 나를 꼭 새언니라고 불렀다. 나이가 어린 나에게 존대를 해주기가 싫었을 법도 한데, 시누이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아 고마웠다. 우리는 서로 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시누이의 취향을 존경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존대를 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아가씨 요즘은 사람들이 어떤 걸 주로 사요?” “요새는 작은 가방이 유행한다면서요?” 기초가 없는 패션 문외한인 나에게, 시누이는 초보자 눈높이에서 짤막한 지식들을 제법 던져줬다.


시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입이 짧았다. 언제나 깡말라 시어머니의 애를 태웠다. 지금도 대식가인 나머지 식구들이 두 번째 공기에 밥을 풀 때, 시누이는 밥공기에 3분의1 정도만 담아 먹고, 더 먹는 법은 거의 없다.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아주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그녀가 거의 유일하게 다른 식구들보다 많이 먹는 건, 맥주다. 다른 식구들의 알콜 분해효소가 막내딸에 몰아 들어갔는지, 그녀는 술을 즐긴다. 집 근처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종종 수입맥주를 사고, 여행지에서는 그 동네에서만 파는 맥주를 한 두 캔씩 사서 밤에 마신다.


나와 그녀는 일하는 젊은 여자라는 것, 넷플릭스 계정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것 외에는 공감대가 별로 없었다. 다른 분야에서 일했고, 사는 지역도 달랐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관계가 달라졌다. 나는 엄마가 되었고, 그녀는 내 아이의 고모가 되었다.


나는 고모가 둘 있지만, 고모들은 일찍 결혼해 명절에만 가끔 등장해 고모랑 추억이랄 게 딱히 없다. 내 아이는 부모와 조부모를 제외하면 태어나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이 고모였다.

고모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사람이었다. 혼내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는다. 숙제를 하라, 이를 닦으라 잔소리를 하길 하나. 늘 웃는 얼굴로 레고를 하자면 레고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자면 보드게임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자 하면 흔쾌히 같이 따라 나선다. 요구하는 것 없이 퍼주기만 한다. 엄마는 문제집을 풀어야만 생색내며 겨우 사주는 장난감을, 고모는 아무 날도 아닌데 기꺼이 사주고, 아빠는 놀아주는 척하다 이미 잠든 지 오랜데 고모는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맛있는 걸 사와서 같이 먹는다. 시누이가 조카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는 걸 보면서, 나도 고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말을 배우던 아이는 엄마 아빠 다음에 ‘고’ 라는 말을 세 번째로 하는 걸로 고모의 애정에 화답했다. ‘고’는 사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던 고구마 말랭이의 ‘고’ 였지만, 그는 고모에게도 정확한 ‘고’를 발사했다. 아이의 인기 순위에서 고모는 거의 언제나 부동의 3위고, 가끔 아이와 아빠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2등으로 올라서기도 한다. (1등자리도 위협받는 게 아닐까.)


시댁 사람들은 술에 약해 시누이와 대작할 사람이 없다. 시누이는 집에서도 여행지에서처럼 종종 ‘혼맥’한다. 나와 남편은 가끔 두 아이 중 누가 나를 닮아 술을 잘 먹게 될 것인지를 예상해보곤 한다. 그래도 둘 중 하나는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를 많이 갖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그 아이가 나중에 테라스가 있는 호프집에서 고모랑 피맥할 수 있으면, 수많은 휴일을 반납하고 조카와 시간을 보내준 시누이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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