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월요일, 새로운 시작에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아직도.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니 능력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친구가 어른이 되지 못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싸늘한 겨울을 달릴 때 패딩 하나 내어줄 수 없었다. 누가 트럭으로 그를 치고 갔는지,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다음 순서는 내 능력 밖이었다.
엄마가 암으로 자궁을 잃었을 때, 병원 복도에서 혼자 우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당신은 아들이 야간자율학습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 줄 알았다. 수능 공부에 방해될까 수술조차 말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신나게 놀았던 나는 그렇게 수능 삼수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군대는 소방서로 지원했다. 작은 아이의 심장이 구급차에서 멎을 때, 아이의 가슴을 압박하던 손을 떼고 고개를 떨구기만 했다. 훈련기간 내내 불렀던 소방관의 기도를 지키지도 못했다. 늦기 전에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란 약속을.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질 때, 마지막 인사에서 진심마저 온전히 전하지 못했다. 나 자체가 거짓처럼 보인다는 게 그녀가 말한 마지막 잔상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강아지가 신부전으로 내 품에서 떠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름을 불러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나를 지킬 수 없었다. 무너진 자존감에 의한 자괴감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이들이 원인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이 점점 사라졌다.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참 열심히 살고 있는데 여전히 세상의 작은 부분 하나 바꿀 수 있는 돈도 힘도 없다. 흔한 저녁 한 끼 부모님께 사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주변과 나를 담는 것이다. 핑계도 아니고 죄책감도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반성과 성찰 따위의 거창한 이유도 아니다.
단지, 안고 있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것들을 글로 담으면 왠지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는 감정이 든다. 그럴 때마다 속도는 더디어도 변화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눈물 사이에 피어오르는 찰나의 웃음이 길어지듯이.
꼭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 같다. 일요일은 언제나 아무도 반기지 않는 월요일을 향해 다가간다. 잠깐의 주춤도 허락되지 않는다. 서로 등을 돌리고 있지만 결국 닿아있다. 그렇게 우리 모두 똑같이 일요일 다음엔 월요일을 마주한다.
브런치스토리가 그랬다. 이런 행복과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나에게 질문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지키고 싶은 것들이 분명 존재했다. 쓰고 지우며 수없이 고민하던 하루들이 보였다. 조금은 힘든 월요일에 일요일 오후의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었다. 지금도 수많은 일요일들이 월요일을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날’, 달을 품은 하루로 또 다른 이름은 월요일이다. 원래는 달날이지만 하루만큼은 ‘ㄹ’ 정도의 미로는 없애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을 담을 땐 이 이름으로 글을 쓴다.
내가 80년을 산다 하면, 매주 돌아오는 월요일은 기껏해야 세상의 작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토록 미미한 내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없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월요일이 많아진다면 적어도 손 닿는 거리의 주변은 바뀌지 않을까.
서로 몸을 맞대며 우리에게 왜 다시 힘든 월요일이 돌아왔을까 고민하며, 서로 마주 보기에 우리에게 월요일이 다시 돌아온 거야 답하며 안아주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글을 쓰는 이유이자 나의 꿈이다. 나는 그 시작을 브런치스토리에서 했다.
지금 이 글 앞에 서 있는 당신을 잠시라도 담는다면, 당신이 또 다른 다날을 적게 되는 꿈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