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렁찐수다 8화
** 이번 콘텐츠에는 한국문학치료학회 문학심리분석상담사 자격관리위원회에서 배포·운영하는 MMSS 진단지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가 없이 내용을 활용하실 경우 저작권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콘텐츠는 심리테스트입니다. 심리테스트야 유행한 지 오래니까 특이할 게 없죠. 그런데 마음을 살펴보는 수단이 옛이야기라면 어떨까요? ‘옛날이야기로 심리테스트를 한다고?!’ 귀가 솔깃하시지 않나요?
MMSS는 (Magic Mirror for the Story-in-depth of Self)의 약자로, 국내외 20여개의 옛이야기로 마음을 진단하는 '자기서사 진단지'입니다. 이야기를 읽고 각 이야기마다 정해진 질문에 답변하면, 이를 본 전문가가 답변을 해석하며 참여자의 성향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많은 이야기 중 J님이 성향이 잘 드러나는 몇 개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심드렁찐수다>의 진정한 찐찐따 J님의 마음을 제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정식으로 심리를 공부한 상담가가 아니고 서사(이야기)를 오래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런 이야기에 이렇게 반응하는 게 특이하다, 이런 성향이 있는 게 아닐까? 정도를 추측하는 겁니다. 재미로 봐주세요!)
첫 번째 이야기는 <잭과 콩나무>입니다. 어릴 적 한 번쯤 접해본 이야기일 텐데요. 네 잭이 콩을 심었는데 하늘까지 콩나무가 뻗어 올라가서 거인을 만나 어쩌구저쩌구~ 하는 그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J님께서 답을 하셨는데요, 그 답에서 J님의 첫 번째 성향이 잘 드러났습니다.
<잭과 콩나무> 이야기 소개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잭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집에 재산은 젖소 하나뿐이었는데, 소가 늙어서 우유가 나오지 않자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잭은 젖소를 팔고서 살림 밑천을 구해오겠다며 길을 나섰다. 잭은 시장 주변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처음 보는 커다란 완두콩을 내밀면서 하늘까지 자라는 신기한 콩이라고 했다. 잭은 젖소를 주고 콩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얘기를 들은 엄마가 성화를 했지만, 잭은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밖에 콩을 심었다. 콩에서 자라난 싹은 정말로 줄기가 쭉쭉 뻗어서 하늘에까지 닿았다. 콩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잭은 괴물 거인의 집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에는 황금자루 가득 차 있었고, 잭은 그 중 하나를 가지고 내려왔다. 얼마 뒤 황금이 바닥나자 잭은 다시 콩줄기를 타고 올라가 황금 달걀을 낳는 닭을 가져왔으며, 세번째로 올라갔을 때는 스스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황금 하프를 취했다. 거인이 이를 알아채고서 쫓아오자 잭은 재빨리 줄기를 타고 땅으로 내려와서 도끼로 콩나무를 잘랐다. 뒤따라오던 괴물 거인은 땅에 떨어져서 죽었고, 부자가 된 잭은 공주와 결혼해서 잘 살았다.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가 얼마나 주인공의 행동에 이입하고 응원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서사 접속도가 결정됩니다. 쉽게 말해 ‘서사 접속도’란 독자가 이야기에 얼마나 몰입하느냐입니다. 폭주족은 잭과의 접속을 완강히 거부했어요. 젖소와 콩을 바꾸지 않겠다고 답하고, 마지막에는 “젖소를 콩과 바꾸는 잭이 비호감”이라는 감상까지 적었습니요. 막연한 도전이나 모험, 엉뚱함을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맥락에서 벗어나 갑자기 툭 튀는 행동을 싫어하고, 인과관계, 논리성 등을 중요시하는 특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이에 대해 폭주족은 크게 공감하며, 평소에도 지나치게 판타지가 부각된 게임이나 짱구같은 캐릭터를 싫어한다고 했어요.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에서는 통쾌함을 느끼지만 일상에서 짱구가 갑자기 튀는 행동을 하면 약간의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습니다. “나라면 잭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잭이 비호감이다” 정도의 간단한 답변이었지만 폭주족의 성향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답변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내 복에 산다>입니다.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신화로, 전국에서 비슷한 내용의 옛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요. 이 이야기에서 폭주족은 아주 독특한 반응을 보입니다.
<내 복에 산다> 이야기 소개
옛날에 어떤 부자가 세 딸을 두고 살았는데 어느 비오는 날에 딸들을 차례로 불러서 누구 덕에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느냐고 물었다. 큰딸과 둘째딸은 부모님 덕분이라고 대답했는데, 막내딸은 “나는 내 복으로 삽니다” 하고 말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어디 네 복으로 잘 살아보라며 딸을 집에서 내쫓았다. 막내딸이 밖으로 나가자 부부는 서운한 마음이 들어 큰딸한테 동생을 잠깐 불러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큰딸은 동생한테 아버지가 때리러 온다며 빨리 가라고 했다. 부부는 다시 둘째딸을 내보냈으나, 역시 거짓말을 해서 동생을 쫓아냈다. 부부는 직접 막내딸을 보려고 문을 나서다가 잘못 넘어져서 장님이 되었다. 얼마 안 가서 부부는 재산을 다 날리고 거지가 되었다. 한편, 집을 떠난 막내딸은 숲속 오두막에서 만난 숯구이 총각하고 짝을 이루어 살다가 금덩이를 발견해서 큰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막내딸이 널리 거지 잔치를 열자 눈먼 부모가 지팡이를 짚고 찾아왔다. 막내딸이 부모에게 따로 상을 차려주고서 “아버지 어머니, 저 좀 보세요. 막내딸이에요.” 하고 말하자 부모가 깜짝 놀라서 번쩍 눈을 떴다. 막내딸은 부모를 모시고 오래오래 잘 살았다.
이야기 속 가장 핵심 인물인 집을 나가 부자가 되는 막내딸이며, 이야기 핵심 사건은 막내딸과 부모의 다툼과 화해입니다. 그런데 J은 이야기를 읽고 주인공이나 부모가 아닌 두 언니의 행동에 큰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근본적인 문제 원인은 언니들이다. 언니들이 동생을 쫓아내고 부모도 장애를 얻게 만들었을 것”이라며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 반응이 이번 활동에서 찾은 J의 가장 큰 성향이었습니다. 유독 언니를 미워한다는 말에 J은 매우 공감하며 “후배나 친구 동기가 잘하면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데 1-2살 차이 나는 윗사람의 말에는 반발심이 든다”고 대답했어요.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저는 J의 성향이 저랑 정반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저보다 1살이라도 나이가 많으면 윗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 별 감정이 없는데, 1-2살 어린 친구들의 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더라구요. 가끔 저보다 살짝 어린 상대가 칭찬받을 때는 묘한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스스로가 너무 싫기도 했구요. 그런데 J은 정반대여서 신기했어요ㅋㅋㅋㅋㅋ
그래서 왜 서로가 반대일까? 생각하면서 형제 관계를 물었는데 세상에나! 저희가 완전 반대더라구요. 저는 위로 오빠가 있고, 친척들도 저보다 나이가 많아서 어딜 가도 막내였어요. 그래서 윗사람 지시나 분부를 받는 게 익숙했습니다. J은 저와 정반대로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도, 친척들 사이에서도 첫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낯선 관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새삼 성장 배경과 관계 맺기 방식이 중요하구나,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두 이야기를 더 살폈는데, 서로가 “이 이야기에 그런 반응을 했다고?!” 놀라면서 끝도 없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둘이 어찌나 수다를 떨었는지 돌고 돌아 깻잎 논쟁까지 갔다는 게 함정)
사실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경험을 새롭게 느끼지 않잖아요. 그런데 옛날 이야기는 이야기를 읽고, 서사의 빈공간을 채워보며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 참 재밌었어요. 그간 J님과 다양한 영화·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렇게 서로의 성향을 파악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해봐도 재밌겠다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