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비사 : 역호>는 궁궐에 숨은 이야기, 역병을 퍼뜨리는 여우 귀신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 시공간이 뒤틀리며 사람을 홀리는 여우가 경회루에 나타났다. 이 여우 때문에 사람은 좀비처럼 변하고 괴물도 생겨났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우에게 홀려 잠든 청동용을 깨워야 한다. 과연 당신은 청동용을 깨워 경복궁을 구할 수 있을까?
경복궁에 나타난 여우와 경회루 청동용? 스토리 설정이 재밌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이거 완전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사실! 역사 덕후들은 경회루 청동용 익숙할 거야. 예전부터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재건할 때 화재를 막기 위해 용 두 마리를 연못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었어. 근데 이 용이 발견되질 않았거든.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기록이겠거니~ 생각했지. 그러던 1997년 실제 연못 바닥에서 길이 146cm에 70kg에 달하는 용 한 마리가 발견됐어. 경회루를 지키는 청동용이 실제했던 셈이지.
경복궁에 나타난 여우 또한 마찬가지야. 이 여우는 고전소설 <쌍성봉효록>에 등장하는 금호진인이야.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옥새를 훔치려다가 궁궐에서 죽었다지 뭐야? 궁궐에서 죽은 여우의 한과 경회루를 지키는 용? 이렇게 재밌는 소재는 활용하는 게 인지상정.
에픽로그의 지난 펀딩 <한국 神과 경복궁 탈환 작전> 기억하니? K가 제작 후기도 길게 적어서 소개했었잖아. 그때 핸드북을 준비하면서 경복궁을 진짜 자주 갔거든. (서울살이 10년 동안 종로를 그렇게 자주 간 건 처음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자주 갈수록 경복궁의 매력이 더더더 잘 느껴지기 시작했어. 경복궁의 매력을 꾹꾹 담아서 핸드북을 완성하고, 펀딩을 끝내고, 투어까지 마무리했는데 뭔가 아쉬운 거야. 많은 정보를 담아내다 보니 재미보다 교육용 콘텐츠 느낌이 나는 게 가장 아쉬웠어. 더불어 책이나 투어 말고 색다른 채널이 없을까도 고민했지. 사람들이 재밌고 쉽게 즐길 수 있는 한국 전통 콘텐츠란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고민이 궁궐비사의 시작이었어!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게 바로 메타버스였어. 코로나로 비대면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메타버스가 많이 활용되었잖아. 가상 세계 모임이 늘어나면서 메타버스 채널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 메타버스 채널을 모임이나 행사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맵을 만들어서 방탈출 게임을 구상하고 사람들과 나누면서 푸는 거야. 사실 메타버스라는 게 최근에 생겨난 신규 채널 같지만 <바람의 나라> 좀 해본 사람들은 익숙하잖아. 새로운 채널로 주목받고 있으면서 동시에 도트 형식의 맵 분위기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지.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고전 콘텐츠를 활용하기에 좋은 채널이 아닐까 싶었어.
사실 경복궁 정보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핸드북을 만들어봤다고 해도.. 메타버스 게임 만드는 건 완전 다른 작업이었어.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고전 콘텐츠를 시각화하는 과정! 시각화라는 게 눈으로 보이게 만드는 거잖아. 우리 옛이야기에, 소설과 신화에 재밌는 등장 인물이 참 많아. 근데 이게 시각 자료로 남아 있는 게 없거든. 그래서 자료를 시각화할 때 참고할 레퍼런스가 없어ㅠㅠ 지난 에픽레터 <관악산 화마> 편에서 에디터 L도 이 점을 언급했었지.
물론 디테일하며 구체적인 모습이 없다는 고질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으며
이는 앞으로 한국요괴를 소재로 한 콘텐츠 제작자의 앞을
몇 번이고 가로막을 것입니다.
시각화 과정에는 디자이너 D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 D는 이번 프로젝트의 일등 공신이셔. Zep이라는 플랫폼 공부부터, 맵 디자인, 시각화까지 정말 많은 일을 맡아 짱짱 결과물을 내놓으셨지. 확실히 디자이너라 그런지 모든 과정에 시각화를 가장 먼저 고민하시더라구.
예를 들어, “위기에 빠진 경복궁을 구하라!”라는 컨셉이 있다고 하자. 그럼 위기에 빠진 황폐한 경복궁과, 위기에서 벗어난 회복된 경복궁을 나눠서 생각하는 거야. 게임이 진행되면서 “황폐 → 회복”으로 바뀌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다른 맵을 작성하는 거지. 이런 아이디어가 대단하지 않아? 맨날 책만 읽던 도서관 찐따 K는 상상치 못한 아이디어였어.
개인적으로 이번 <궁궐비사 : 역호>가 시각화 부분에서 많은 공부가 됐던 프로젝트였어. 예전에는 글로만 풀어냈다면 이제는 시각화를 고민하게 된달까? 이게 다 D님 덕분이지!
회의 지옥을 거쳐서 캐릭터와 문제를 만들었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지. 그 다음은 확인과 수정의 무한 반복이 있다. 왜 우리 PPT 만들어서 발표할 때도 내 의도대로 상대가 이해하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 콘텐츠는 더더욱 그래. 사용자가 의도대로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려면 테스트 과정이 꼭 필요하지. 맵 제작 과정에서 테스트한 D님의 지인을 제외하고도, 2030 지인을 위주로 테스트를 해보며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어. (K의 지인 중에서는 명절에 볼 때마다 잘난 척하는 사촌오빠가 종이에 필기하면서 문제를 풀어 놀랐지 뭐야. 30대에게 인정 받았다ㅎㅎ)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재미야. 유익하면 좋지. 근데 게임은 일단 재밌어야 하잖아.
에픽로그의 목표는 재밌는 고전 콘텐츠를 만드는 거야. 콘텐츠를 널리 알려서 고전을 향한 사람들의 인식을 싶어. 3000원이라는 가격에 펀딩을 올린 이유도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기 때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