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싱그럽던 그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우리 집 막둥이는 나와 열 살 차이가 나는 초등학생이다.
동생이 셋이나 되는 나에게 막둥이는 동생 그 이상, 자식 그 이하 어딘가에 위치한다.
단지 어리기 때문에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닌, 가끔은 내가 보호자가 되기라도 한 듯 어깨에 책임감 같은 게
얹히기도 한다.
초등학생의 학부모는 1년에 한두 번, 자녀의 등굣길을 지켜주는 ‘녹색어머니’ 활동을 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주부인 분들이 많아 의무의 성격이 짙진 않았는데, 요즘은 아이도 적고 맞벌이 부부도 많다 보니 자진해서 교통지도를 하시는 분이 적은가 보다.
보통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하시지만, 어쩌다 보니 시간 만수르 휴학생인 내가 나서게 됐다.
평소 내 기상 시간은 9시에서 10시 사이지만 오늘은 7시 30분에 일어났다.
교통지도는 8시 10분부터 9시 10분까지. 고등학교 3학년 이후 처음 맞이한 7시대의 아침은 제법 고통스러웠다.
‘그냥 가지 말까?’ 수백 번 고민했지만, 엄마가 미리 ‘고맙다’며 선입금을 해주셨다.
내역을 확인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리고 도착한 시간은 9시 12분.
살면서 느낀 정설은 집이 가깝다고 해서 지각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내 얘기다.
정문 옆 컨테이너에서 형광 조끼와 지도용 막대를 챙기고 나왔다.
함께 교통지도를 서게 된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 엄마는 아니고, 친누나예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웃으셨다.
“어쩐지, 아이 엄마치곤 너무 말랐어~”
그 말이 묘하게 웃겼다.
“얼굴이 어려 보인다”도 아니고, “옷이 젊다”도 아니고, 말라서 엄마 같지 않다는 말이라니.
기분 나쁘지 않게, 오히려 귀엽고 솔직하게 느껴졌다.
지도를 하다 보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출근하시는 선생님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민망하게 해명(?)하곤 했다.
“아, 초등학생 동생이 있어서요. 친누나입니다.”
그러면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아~ 그러시군요ㅎㅎ 어쩐지 너무 젊으셔서 놀랐습니다.”
“아~ 동생이 몇 학년인가요?”
“아~ ㅇㅇ이 누나셨구나~”
묘한 뿌듯함과 낯간지러움이 공존했다.
선생님과 존댓말로 말을 주고받은 경험이 없어 어색한 기분도 들었다.
꼬마애가 어른놀이 하는 것 같았다.
지도를 시작 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시청에서 나오신 분이 수고가 많다며 생수 한 병을 주셨다.
아침 준비로 바쁜 와중에 텀블러를 챙길까 고민했었는데, 그냥 나온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짐만 늘어날 뻔했다.
8시는 내 기준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데 하늘은 마치 정오가 지난 것처럼 환했다.
건조했던 봄을 지나 어느새 축축한 물 내음이 느껴졌다. 아, 이제 정말 여름이 오려나 보다.
엄마는 출근하시기 전 한참 자고 있던 내게 모자와 선글라스를 꼭 챙기라 하셨지만,
괜히 오버하는 것 같아 잠결에 손만 휘휘 저었다.
앞으로는 경험자의 말을 새겨듣기로 했다. 아침의 햇빛이 이렇게나 강할 줄 상상도 못 했다.
이 시간에 나가본 지가 오래라..
아니나 다를까 나를 제외한 다른 어머니들은 모두 최소한 모자를 쓰고 나오셨다.
달아오르는 뺨을 생수 병으로 애써 식혀 보았다.
용기에 맺힌 물방울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묘한 불쾌함이 왔다. 집 앞에서 불어오는 바다의 짠내가 흡수되는 것만 같았다.
막둥이가 다니는 이 학교는 우리 4남매가 모두 졸업한 곳, 즉 내 모교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정문 앞에서 아이들을 챙기던 녹색어머니가 계셨는데,
22살의 내가 그 역할을 내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초등학교 다니는 동생이 있으리란 것도,
내가 그곳에서 조끼를 입고 서 있으리란 것도.
학교 근처로 다가갈수록 노란색이 많아졌다.
세상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란빛으로 온통 칠해져 있는 것 같았다.
8시 30분쯤, 저 멀리서 익숙한 작은 아이가 내리막을 달려왔다.
내가 집을 나설 때 옷을 열심히 챙겨 입던, 우리 막둥이다.
“누나~~~!!”
양손을 흔들며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아이.
혹시 넘어질까 봐, 평소엔 눈에도 안 들어오던 경사가 유난히 더 심하게 느껴졌다.
깨랑한 목소리가 학교 주변을 가득 매우며
그 많은 아이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내 품에 폭삭 안기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이 교통지도를 하는 짝꿍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누가 봐도 동생이네~ 너무 닮았어~”
그렇다. 정말 너무 닮았다.
더벅머리로 덮을랑 말랑한 목덜미와 관자놀이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부쩍 커가는 키만큼 머리카락은 또 왜 이리 빨리 자라는지, 벌써 미용실을 갈 때가 된 것 같다.
반가운 본심과 달리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던 걱정의 마음이 화가 되어 괜히 다그쳤다.
아는지 모르는지 라임 같은 웃음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물이라도 한잔 먹이고 들여보낼걸 조금 후회했다.
지도를 서다 보면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지나간다.
언니 혹은 오빠 손을 꼭 잡은 아이,
느릿느릿 걸어오는 아이,
활기차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아이,
수줍게 고개만 까딱하는 아이.
등교가 싫어 교문 앞에서 한참 머무는 아이,
친구랑 장난치며 깔깔 웃는 아이들까지.
내 아이가 아닌데도 괜히 기특하고, 흐뭇했다.
“안녕~” 하고 먼저 인사하고 싶은데,
아무런 표정 없이 지나가는 아이들에겐
왠지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조심스러웠다.
짝꿍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하셨다.
그 모습이 참 부러웠다.
나도 속으로는
‘좋은 아침이야’, ‘즐거운 하루 보내’, ‘오늘도 힘내’
수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기억 속 반갑게 인사해 주던 녹색어머니처럼 되고 싶었는데,
아직은 조금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지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10년 전과 달라진 학교를 둘러보고 싶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낯선 것이 당여 한데도, 바닥에 새겨진 알록달록한 그림들과
땅따먹기 선이 너무 반가웠다.
나 때는 신발 옆으로 운동장을 죽죽 그어 놀곤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신발 더러워졌다고 혼날 일은 없을 테니. 걱정이 덜하겠다.
학교 건물도 커졌고, 운동장도 많이 바뀌었다.
뱀주사위판도 있고, 도서관도 새 단장을 했다지.
늘 그렇듯, 왜 학교는 내가 졸업하고 나서 좋아지는 걸까.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알록달록한 색이 넘쳤던 하루.
어릴 적엔 몰랐지만, 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가득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괜스레 뭉클하게 다가왔다.
요즘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선 들리지 않는 그리운 목소리들.
그날의 노란 조끼와 아이들의 “안녕하세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