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시작은 나부터였다.

누구나 환자일지도.

by HAN

지독히도 아팠다.

왼쪽 팔엔 깁스를 하고 작품들마다 뾰족 뾰족 번뜩이는 날 선 철조각들을 역시나 칼날 같은 그림 안에 수십수백 개를 붙였다. 그당시 내 손은 그 작은 철조각들에 찔리고 다쳐 피가 흐르고 항상 상처투성이였다.

만들면 만들수록 나를 더 찌르고 아프게 만드는 작품이였지만 더 잘게 쪼개고 더 날카롭게 자르고 붙일수록 반짝이며 다양한 각도로 서로 다른 빛을 내고 있는 매력적인 그 작품의 이름도 역시 상처 였다.

각자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교수님 말씀으로 평가받는 품평회 시간. 미대 회화전공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넌 말 안 해도 딱 알겠다. 지금 네 맘이 그렇게 상처투성인 것을."


내 어디가 아픈 건지, 무엇이 고장 난 건지 모르겠던 방황의 20대 그 시절.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에도 여전히 깜깜한 미래와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철저히 난 혼자였다.

날 이해하지 못하던 가족도, 그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도, 같은 길을 가던 친구도 그땐 위로가 되기보단 상처를 더해주는 존재라고밖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나마 솔직한 내 마음을 13년간 한길로만 달려온 그림안에 나타낼 수밖엔 없었다.

그 방법 말곤 사실 몰랐다. 혼자 힘으로 탈출구를 찾지 못한 난 결국 어떤 미술심리치료사를 찾아간다.




미국 국가공인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 소지.

이 oo 선생님의 그룹 미술심리치료 대상자 모집글.

가난하던 스물네 살 대학생이었기에 난 매주 한 시간 반의 거리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가격이 부담스러운 1대 1 수업이 아닌 비교적 저렴한 그룹치료 세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과 회기마다 한 작품씩 그렸고, 그때마다 선생님은 마음의 병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그때 처음 미술치료를 경험하며 온전히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동안 그림을 10년이 넘도록 그려왔지만 대학 입학 전엔 정형화된 입시미술만을 쫓았고, 대학 입학 이후엔 그 틀을 또 부단히 깨기 위한 시도와 노력만 했다. 작품이 작가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평가하지 않아도 온전히 나타낼 수 있고 나아가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정작 내가 아프기 전까진 갖지 못했었다.





회기가 진행되면서 아팠던 몸도 마음도 아물기 시작하며 조금씩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술치료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혼자 끙끙 앓았던 몹시도 추웠던 그 겨울은 그렇게 지나가고 난 다시 바닥을 차고 일어나 내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총 12회기가 끝나는 날, 미술치료 관련 책 목록과 자신이 공부했던 미술치료 원서 책을 한 아름 물려주시며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은 그 후 오래도록 내 가슴에 새겨졌다.

"우리 언젠가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땐 치료사로서 만나도록 해요."




만났다. 신기하게도.

미술치료실 원웨이 미러 속 아이와 그 선생님을, 난 대학원 실습생으로.

그렇게 어느새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선생님을 보게 된 건 내가 미술치료를 받았던 그때로부터 4년이 흐른 뒤였다. 난 심리치료 대학원을 진학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부와 경험을 하며 그때까진 알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석사 2년 동안 이론 공부보단 실습과 경험이 더 오랜 시간 걸렸고, 더 어려웠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으며, 향후 사회로 나갔을 때 실제로 쓸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학교에서 하는 실습 외에도 졸업 이수시간을 채워야 했기에 동네 복지관 시설 마다 다니며 무료상담과 치료 자원봉사로 지원했고, 초등학교와 보육원 집단치료를 통해 수많은 프로그램을 실험했고 통계내고 논문을 썼다.

석사과정 중에 과천의 작은 미술치료상담실에 미술치료사를 뽑는다는 광고글을 보고 지원해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게 되었다. 조금씩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이후 장애인복지시설의 정직원으로 들어가 심리치료사로서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난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환자였기에 나를 살리고자 심리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정해놓았던,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던 미술이란 나의 길은 22살이 되었을 때, 손바닥에 움켜잡았던 모래알처럼 내손을 펴보니 어느 순간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1년간 휴학을 하고 과외, 커피숍, 리서치회사, 포토샵 웹디지아너, 도예 도자, 미술학원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낭여행도 해봤지만 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찾은 건 나의 아픔을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과 그 길 이였다.

그래서 이 길을 걷기 시작했고 심리치료사로서 1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 길 위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