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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차 약국약사, 3년 차 마을약사입니다

마을약사 호두이야기 #1

안녕하세요 [마을약사 이야기] 콘텐츠를 맡은 늘픔가치의 대표, 약사 호두입니다.


지역약국을 운영하는 약국약사이면서 동시에 비영리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저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올해로 약사면허를 취득한 지 15년이 되어갑니다. 약대 입학 전까지는 약사를 장래의 직업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제가 15년째 약사 일을 아주 즐겁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약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약국에 다니는 선배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선배의 모습을 통해 엿본 약국과 약사의 모습은 가장 문턱이 낮은 의료기관, 가장 주민들과 가까이에 있는 보건의료인이었고, 그것이 약국 약사를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약대생 호두


약대생 시절 저는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말이 좋았고, '차별 없이 건강할 권리'라는 말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학생이었습니다. 끊임 없이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고자 하였고, 약사가 되어도 안주하지 않고 세상에 변화를 만드는 약사가 되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다행히도 제 주변에는 저와 마음이 맞는 '늘픔'이라는 약대생 동아리의 선후배들이 있었고 한발 한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초보약사 호두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 면허를 취득한 뒤 한 약국에 취업하였습니다. 집에서 가깝고 웃음소리가 큰 약국장님이 계신 약국이었습니다. 초보인 저를 약국 식구들은 꽤나 귀여워해 주셨고, 실무를 익히는 데에도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3차 병원의 문전약국이었던지라 조제실은 언제나 전시 상황 같이 바빴습니다. 컨베이어벨트의 부분이 된 듯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을 담고 조제된 약을 검수하고 지퍼백에 담고 부지런히 몸을 놀리다 보면 퇴근시간이 되었습니다. 복약지도를 하면서 만나는 환자들은 모두 지쳐있는 데다 약이 늦게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듯 보였고, 약설명을 하고 상담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화를 돋우지 않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약국약사와는 너무나 달랐고, 일일 퀘스트를 깨는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사 호두, 공동체 약국을 만나다


이후 두 곳의 약국을 거쳐 2년의 근무약사 경험 이후 저는 공동체 약국 [늘픔약국]에 합류하였고, 2012년 관악구 신림동에 두 번째 늘픔약국을 오픈하였습니다. 늘픔약국은 이전에 제가 근무했던 곳과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1차 병원과 2차 병원의 처방을 주로 다루고 지역주민들이 자주자주 이용하는 동네의 작은 단골약국입니다. 공동체 약국이기에 약국장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없습니다. 공동체의 약사들이 함께 일하고 함께 경영합니다. 매달 약국 회의를 하며 주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도 나눕니다. 간혹 화를 낸 손님이 있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서 해결합니다. 약국의 시스템 결함이라면 고치고 바꿉니다. 약국이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는 손님이라면 지역사회 자원 연계를 통해 도움드릴 방법을 찾아냅니다. 저는 공동체 약국 [늘픔약국]에서도 현재에도 일을 하면서 공동체의 지원을 받으면서 지역사회 건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마을약사가 된 약사 호두'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공동체 약국 [늘픔약국]

블로그 바로가기 https://m.blog.naver.com/nppharmacy

2010년에 인천 남동구에서 처음 문을 연 늘픔약국은 2024년 현재에는 서울시 관악구, 경기도 부천시 총 2개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늘픔약국은 약사로서 환자중심의 약료 서비스과 지역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활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익적 약국'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늘픔약국은 각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게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모든 약사들이 일한 만큼의 급여를 받고 남은 수익은 지역사회 건강권 증진활동과 약국 서비스 개선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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