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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May 18. 2022

마지막화. 뇌경색 완치와 적응장애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 │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이 글을 쓸지 말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완벽히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을 때 쓰는 게 맞지 않나 싶긴 했는데, 성질 급한 세미 관종은 결국 오늘도 '그냥일기'가 아닌 '투병일기'로 돌아왔다.  일기가 마지막 투병일기가 될 것 같다. 나쁜 일은 아니고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좋은 일로 '마지막'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신다면, 열심히 약물치료도 하고 회사로 복귀해 바쁘게 일하며 살았다. 사실 그래서 '그냥일기'를 안 쓴 건 아니고, 일기 쓸 시간적 여유야 충분히 있었지만 일기를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 자신이 행복하지가 않으니 좋은 기억을 담은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나도 일반 블로거처럼 여행지나 맛집을 소개해볼 테다 하고 속초여행도 다녀왔지만, 글이 도통 써지질 않았다.(나중에 내가  더 괜찮아지면 그때나 올려보도록 하겠다.)


 각설하고 본론부터 말하자면, 오늘 담당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뇌경색이 완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뇌경색은 뇌에 난 상처 같은 존재라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새로 찍은 MRI에서 이전의 뇌 병변 흔적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사라졌다고 한다. 말 그대로 깨끗한 완치다. 옥순이의 동료 세포들이 드디어 그 빈자리를 아주 훌륭하게 메꿔낸 것이다.(기특한 녀석들)


 완치 판정을 받으면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다. 기쁨의 눈물이라도 흘리며 동네방네 자랑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복에 겨워  천운을 감사할 줄도 모르는 나는 완치라는 기쁜 소식에여전히 내가 아픈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완치의 기쁨보다 의문이 앞섰던 것이다. 아니, 완치면 안 아파야지. 왜 여전히 힘들고 아픈 건데? 이제 가까운 사물이 잘 보여서 일상생활에 거의 문제는 없지만, 오른 눈의 시력저하는 그대로다. 또한, 약물치료로 인해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편두통, 소름 돋는 증상, 흉통 그리고 지독한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사실 완치는 병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지, 발병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아니기에 증상들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발병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완치라는 말이 더더욱 와닿지 않았다.)


 나는 종종 이유 없이 울었고, 악몽을 꿨다. '슬프네, 울 것 같아' 하는 과정을 거쳐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리를 빗다가 거울을 보면 내가 울고 있었다.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고 울었다.(이걸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소름 돋는다.) 악몽을 꾸는 날이면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꿈을 꿨다. 꿈속의 나는 거동이 어려워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눈을 떠서 이게 현실이 아니라 꿈인걸 알고 나서도, 정말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 숨이 막혔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머리 왼편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고, 사람들이 많아 북적북적하고 시끄러운 곳을 가면 가슴이 답답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이 모든 증상을 무시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지냈지만, 가끔 혼자 있게 되면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머리가 가득 찼다. 


 흉통이 아직도 심해서 심장을 부여잡고 있을 때도 많았다.(식도염을 원인으로 여겼었는데, 소화기 내과 의사가 흉통이 있을만한 염증이 아니라 심장이 원인인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건 한달 후에 다시 검사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신경성일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나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불안증이 극에 달했다. 시끌벅적한 뇌졸중 센터 한가운데서 자꾸만 떨려오는 손을 꽉 쥐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이유없이 눈물이 나려고 해서 모자를 눌러쓰고 꾹 참았다.(참내 나이가 몇살인데 병원가기 싫은 애마냥 이러고 있다.)


 나는 이러한 증상들을 진료받으며 혹시 약 때문에 감정이 더 드라마틱해진 건 아닐지 여쭤보았다. 입원 때부터 지금까지, 2주가 넘도록 신경안정제와 우울증약, 불안증약 등을 하루 5알 정도 복용중이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내저으며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약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하셨다. 결국 나는 뇌경색 완치 판정과 동시에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적응장애가 뭔지 나도 잘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그렇구나. 이게 내가 가진 증상의 이름이구나. 나약한 녀석. 몸은 이토록 건강한데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니. 이보다 더한 걸 겪고도 잘만 사는 사람도 많은데, 정말이지 나약해 빠졌다. 뇌경색 완치도 되고, 토끼 같은 강아지도 있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부족함 없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른다.(하하버스야 뭐야)


 

 의사 선생님은 젊은 나이에 너무 큰일을 연속해서 겪었고, 단기간에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해서 수많은 검사를 받으며 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적응장애는 입원 환자들에게 굉장히 흔한 질환이라고 한다. 나보다 적응장애가 더 심한 뇌경색 환자들도 훨씬 많은데, 나는 그래도 잘 버티고 있는 편이라며 격려해주셨다. 사실상 신체는 완치 상태지만, 그래도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3달 만에 뇌경색 완치라니. 절대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사실상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한다. 의사 선생님도 내가 정말 정말 운이 좋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회복한 거라고 했다. 주변에서도 모두 축하해줬다. 다들 기뻐하는데 나만 입 안이 썼다. 웃을 수가 없었다.


 한 친구는 완치면 완치만 생각하고 기뻐하면 되지, 왜 적응장애를 생각하냐며 그건 잊어버리라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직은 그게 어려웠다. 당장 지금도 날 아프게 하고 있는 이 모든 증상들이 나의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라니. 그게 한심하게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화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고, 써봤자 내 얼굴에 침뱉기 같아서 쓸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마음 말고 몸은 완치되었으니 이 소식을 알리긴 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다. 완치되고 나면 당당하게 '완치 썰 푼다' 하고 즐거운 글을 올릴 줄 알았는데, 이런 반쪽짜리 완치 후기라서 마음이 무겁다.


 적응장애를 이겨내는 과정까지 일기에 담고 싶진 않기에 나의 뇌경색 투병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앞으로도 계속 마음까지 깨끗이 나을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끔찍한 병을 겪고도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아 완치 판정을 받았으니, 정신쯤이야 뭐..조만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달 후에도 약물치료로 더 이상 좋아지지 않으면 상담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 전에 꼭 나을거다. 꼭! 완치에 초점을 맞추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중이다. 오늘 같이 사는 친구와 조촐하게 완치 파티도 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드디어 백신 이상 신고를 넣었다.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어 의사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의사 선생님 역시 차라리 백신이 이유라면, 다시는 백신을 안 맞으면 되니 몸 자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보다 나은 경우 아니겠냐며 신고요청을 받아주셨다. 하지만 신고를 넣는 것까지만 가능하고, 결과는 정부의 판단이니 인정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며 미리 경고하셨지만, 그래도 해보겠다고 강력히 요청해 신고에 필요한 정보를 모조리 써서 넘기고 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6개월 가까이 걸린다던데, 우선 기다려봐야겠다. 그때쯤이면 몸도 마음도 모두 완치되었다며 웃고 있으려나. 모든 증상도 사라지고, 눈도 잘 보이려나.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히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하고 있으려나. 꼭 그러길 바라며,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일기를 읽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투병일기를 마무리하겠다.


만 28세, 뇌경색 완치되었습니다.

그럼 모두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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