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일상 13

아프리카 부처님

by 마법모자 김시인


2021년 8월 두 번째 작품집을 발간했습니다. 문단의 대선배이신 리강룡 선생님께서 제 작품집에 대한 시평을 나래시조 겨울호에 실어주셨습니다. 더 좋은 시인이 되라는 격려라는 것을 압니다. 거창하게 세상을 변화시킬 힘은 없지만 위로가 필요한 곳엔 위로를, 박수를 보내고 싶은 곳에는 박수를, 용기를 건네고 싶은 이에게는 용기를 건넬 수 있는 그런 시인이고자 합니다. 상에 건네는 시선이 늘 따듯한 시인이고자 합니다.





주변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자기 돌아보기

- 김종연 『아프리카 부처님』 (알토란북스, 2021.8.20.)

리 강 룡



김종연 시인이 두 번째 시조집 『아프리카 부처님』을 펴냈다. 김 시인의 시집은 젊은 시인답게 73수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톡톡 튀면서 기지(機智)와 새로움의 빛을 발하고 있다. 오늘처럼 어지럽고 어수선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독자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1분만 알을 놓쳐도 새끼를 지킬 수 없는

영하 50도의 혹한 속 펭귄들의 거룩한 동맹

모든 게 얼어붙어도 얼지 않는 세상 있다

「허들링」, 전문

허들링이란 황제펭귄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혹한을 견디는 방법을 이르는 말이다. 무리 전체가 돌면서 바깥쪽과 안쪽의 펭귄들이 계속하여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 한겨울의 추위를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함께 함의 위력, ‘모든 게 얼어붙어도 얼지 않는 세상’을 만듦으로써 생명 유전을 이어가는 위대한 행동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시인은 「허들링」을 통하여 뜻을 모아 함께하는 힘의 위대함을 읊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선(大選)이란 특수한 사회 현상을 앞두고 ‘함께함’의 힘을 발휘하려고 야단이다. 그러나 허들링은 이런 류의 ‘상대방을 쳐서 넘어뜨리고 내가 살기 위한 끼리끼리의 ‘함께함’이 아니다. 거룩한 본능에의 함께함이 감동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시집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도처에서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 시대 자영업자들을 「다랑이논」에 비유하여 ’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다, 그만그만 고만고만//순하게 엎디어서 하늘만 쳐다본다//언제쯤 논배미 가득 채워/물고 활짝 튀울까//’라든지, ‘외딴섬 쪽방촌에 보일러가 터진 날//갓 지은 밥 한 공기 햇살에 돌돌 말아//양 손에 쥐여주고 싶다 밥심으로 견디라고//’ 등 일상의 사상(事象)을 향한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늘 낮은 곳에 머물러 있다. 밑바탕에 깔린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가 공통분모가 되어 시집 한 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다.

주모자도 선동자도 감이 오지 않는

저들의 모의는 은밀했을 것이다

일시에 꽃피워내자고 사발통문 돌렸나 봐

「벚꽃만개만세」, 전문

김종연 시인의 시집에는 꽃 시가 별로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드문 중애서도 위의 「벚꽃만개만세」와 「홍매화」는 수작(秀作)이다. 통도사 홍매화가 수백 년을 두고 개화를 계속하는 것을 ‘병명 없이 앓는 봄이 자꾸만 계속되었다’고 보는 초장을 받아 ‘늙은 여자의 몸이’ ‘꽃 링거 처방전을’ 몸에 꽂자 두 볼에 꽃물이 든다고 보는 시안(詩眼)은 탁견이다. 예로 든 작품도 그렇다. 개나리와 함께 봄꽃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벚꽃이 개화하는 성격을 모월 모일 모시에 한꺼번에 확 피워 내자는 은밀한 모의의 사발통문을 돌린 결과라고 묘사하고 있다. 사발통문을 돌리는 일은 ‘주모자도 선동자도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비밀유지가 최우선이다. ‘은밀’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일시에 봉기하여 자기네의 목표를 달성한다. 벚꽃이 일시에 확 개화하는 모습을 이토록 여실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안목을 가지자면 주변을 향한 세심한 관찰, 깊은 사색, 따뜻한 관심의 눈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 진단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볕에 탄 얼굴에서 아프리카를 떠올리고

뜻 모를 염불 소리에서 부처님을 떠올린

여덟 살 아이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그 남자

팔순의 아버지 대신 들녘의 보모였던

그 남자의 일요일엔 휴식이 없었다

물길을 열고 닫으며 생명을 키워냈다

노부가 떠난 뒤에도 그의 삶은 그대로다

일과를 마친 후 합장의 시간은 늘고

아이는 청년이 됐다 들을 닮아 푸르른

「아프리카 부처님」, 전문

작품 속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종일 들판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부, 언어가 불명확한 사람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의 중요한 핵심 교리는 ‘자비’가 아니던가. 이 남자가 한평생 휴식도 없이 하는 일은 ‘물길을 열고 닫으며 생명을 키워’내는 일이다. 생각의 깊이를 넓혀서 보면 그 남자가 하고 있는 일이 곧 ‘보시(布施)’의 실천이 아닐까. 시인의 눈은 ‘여덟 살 아이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그 남자’에 대한 별명과 그 남자가 하는 일의 합일점(合一點)에서 살아있는 부처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삶과 행위는 노부가 떠난 뒤, 아이가 자라서 ‘들을 닮아 푸르른’ 청년이 된 뒤에도 그대로 계속되고, 합장의 시간은 더욱 늘어간다. 시인은 그 농부의 삶에서 변함없는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을 읽고 있다. 구도가 무엇이던가. 꼭 출가하여 산사나 수도원으로 들어가 고된 수행과 팔만사천의 경을 읽는 과정을 거쳐야 그것이 구도자의 길이고 그 오랜 고행을 거쳐야만 도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던가. 적어도 이 작품에서 생각하는 시인의 눈은 ‘생활 속에서의 구도’, 내지 생활이 곧 구도임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첫수와 셋째 수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변동이 있다. 긴 시간의 시적 관찰이 보이는 부분이다.

짧은 지면에서 김종연 시인의 다채로운 시 세계를 다 짚을 수는 없지만, 시인이 접하는 일상의 사상(事象)에 대한 독특한 관심과 시적 안목, 그리고 따뜻한 시선이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여, 어떻게 시의 세계를 확대하여 작품들을 빚어낼지 사뭇 기대를 갖게 한다.


#리강룡 시인 #나래시조 #김종연 #아프리카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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