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책 이야기 23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by 마법모자 김시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이 책은 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 묶음집이다. 나는 SF소설에 대해 잘 모르고, 김초엽 작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독서였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은 SF는 가벼운, 흥밋거리로 읽는 책이라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 준 책이다.


이 책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지금 여기 '가 아니고 '우리'가 주인공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 우리'를 보게 한다. 가까운 미래이거나 먼 미래, 지구 밖 '마을'이거나, 우주의 또다른 존재들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들은 결국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 가에 대해 묻고 있는 듯하다. 결국은 우주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경제적 가치가 사라진 행성을 폐쇄하는, 지구인들의 의식과 가치에 대한 조심스러운 우려, 또는 경고로도 읽힌다.




릴리 다우드, 그녀는 인간 배아를 완벽하게 디자인해 아름답고 유능하고 질병 없고 수명이 긴 '신 인류'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녀가 꿈꾸던 유토피아는 도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벽한 개조인과 비개조인의 분리정책으로 위계와 차별이 일상화되었다. 그녀는 지구 밖 '마을'에 흉측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나도, 질병이 있어도, 팔 하나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는 세상을 건설한다. 하지만 '마을'의 성년식 행사로 순례지(지구)로 떠난 몇몇은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의 딸 올리브 역시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실패한 개조인 델피 곁으로.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많이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로 끝이 나는 이 소설은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 밖 마을 또한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괴롭지만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부당한 차별에 맞서는 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임을 말해 준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젊은 시절 우주 탐사에 나섰다가 실종된 할머니는 우주의 지성 생명체를 만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다 40년 만에 구조되었지만, 그 행성에 대한 정보는 끝내 말하지 않아 허언증 환자로 몰린다. "할머니가 처음 그들을 만날 때 그들을 해칠 만한 어떤 힘도 무기도 없는 존재였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며, 그들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손녀 희진의 목소리를 통해 할머니의 침묵을 이해하게 된다. (스펙트럼)


아주 이상한 가정 하나를 해 보자. 수만 년 전부터 인류와 공생해 온 어떤 이질적인 존재가 있다고 말이다.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어니라면 어떨까?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 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공생 가설 128-129p)


우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진 시대, 안나는 170세 노인 여성 과학자다. 한때 희망의 땅이라 일컫던 제3행성 슬렌포니아는 경제적 효율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제 더 이상 우주선을 보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안나는 그곳에 가야만 한다. 남편과 가족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안나는 자신이 개발한 딥프라징 기술을 이용해 완벽한 냉동인간과 깨어남을 반복하며 폐쇄되어 버린 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린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우울'을 사는 겁니까? 왜 '증오'와 '분노' 같은 감정들이 팔려나가죠? 의미가 배제된 감정만을 소비하는 것은 인간을 단순히 물질에 속박된 동물로 전락시키는 일이 아닐까? (p214)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에게는 의미가 담긴 물건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p215)(감정의 물성)


죽은 사람의 생애를 데이트로 이식해, 망자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도서관. 그곳에서 희진은 3년 전 죽은 엄마의 영혼을 만난다. 우울증으로 너무나 많은 상처를 준 엄마를 희진은 그리워하지 않는다. 결혼과 임신으로 세상과 단절되어 버린 엄마, 스스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우고자 했던 엄마의 영혼을 만나며 희진은 비로소 엄마를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관내분실)


48세의 비혼모, 동양인, 여성 우주비행사 재경 이모, 그런 이모가 자신의 우상이었던 가윤 또한 우주비행사로 선발된다. 우주로 가는 훈련 도중 신체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사이보그가 된 재경 이모가 우주가 아닌 심해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재경에게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가윤은 오히려 재경이 심해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고심하며, 자신의 선택을 통해 자유를 획득한 재경을 이해하게 된다.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언제가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작가 김초엽의 말이다. 우리는 구별과 경계 짓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지구인/비지구인, 개조인/비개조인, 장애인/비장애인, 백인 남성 우주비행사/동양인 비혼모 여성 우주비행사 등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 속 차별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과학 발전의 낙관론 비관론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작가의 말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간과된 발전은 계층의 위계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젊은 작가의 당찬 물음에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