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급 비기너의 검도 일기
수련이 끝나고 무너지듯 주저앉아 호면를 벗을 때 한 번,
호면을 벗고 묵상 후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 관장님께 경례 한 후 한 번.
관장님은 이렇게 적어도 두 번 이상 '애썼어'라고 해주신다.
'고생했어' 아니고
'수고했어' 아니고
고생과 수고는 내 의지가 아니어도 실컷 할 수 있다. 전혀 고생하고 싶지 않아도 고생할 수 있고, 별로 수고할 마음 없어도 수고할 수 있다.
근데 애쓰는 건 다르다. 애쓰는 데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도장에 갈 때마다 정말로 애쓰긴 해
체력이 후달려서 중간중간 숨을 몰아쉬며 멈춰야 할 때도 많고
집중력이 후달려서 관장님이 요구하는 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흐름을 이어가지 못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정말로 애쓴다는 거다.
못할지언정 어설플지언정 대충 하지는 않는다.
발바닥이 아프고 눈에 땀이 들어가 따갑고 심장이 쾅쾅 뛰어도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애쓰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호면을 벗는 순간에 시기적절한, 무심하지만 진심 가득한 '애썼어'를 들으면
와... 정말로 감사하다. 너무 감사해서 절로 고개가 깊이 숙여진다.
맞고 또 맞고 계속 맞느라 처참해진 마음이 누그러진다.
내가 애쓰는 걸 알아봐주는 한 명이면 나는 계속 애쓰며 견딜 수 있다.
관장님과 대련하다보면 종종 맞대고 있던 내 죽도를 왼편으로 팍 밀쳐 누르시는데, 그러면 나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어 '어??' 하고 당황하다가 시원하게 머리를 얻어맞는다.
십수 번을 당하고서는 또 당한다. 매번 당황하고 매번 빠져나오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래서 수련이 끝나고 여쭤봤다.
와 근데 죽도로 제 죽도를 확 누르시면 힘을 줘도 못 빠져나오겠습니다. 당황스러워요.
그러니 관장님 하시는 말씀이, 너무 힘이 들어간 채로 죽도를 쥐다 보니 밀려도 다시 원위치를 찾을 탄성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힘을 빼야 하는 거라고.
그걸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긴장되고, 잘 하고 싶고, 몸 전체에 기합이 들어가다보니 손아귀와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대련 하는 중간중간 '고개 들고. 어깨 펴. 힘 빼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도 자꾸 어깨가 굳고 손에 힘을 주게 됐다. 잘 하고 싶으니까...
근데 분명히, 힘을 빼야 다양한 변수에 대응할 수 있다. 힘을 빼야 내 공격이 막혀도 빠르게 다음 공격을 도모할 수 있다.
나는 검도를 좋아하는 만큼 자꾸 질문하고 생각하느라 검도에서 (운동 외적으로도) 배우는 게 많은데, 오늘 또 하나 배웠다.
여지껏 정말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어떤 것을 앞에 두었을 때 몸을 긴장시켜 굳히고 힘을 주고 달려들기만 했지만
그런데 정말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어떤 것을 더 좋아하고 더 잘하기 위해서는
집중을 잃지 않되 힘을 빼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힘 빼고 고개 들고 어깨 펴고 편안하게! 하지만 정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