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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두툼 Oct 27. 2024

나의 친할머니


나의 친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다.

연세가 환갑이 넘어 몇 년 뒤였던 거 같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딸 넷, 아들 하나의 자식을 두셨었다.

딸, 딸 쌍둥이, 아들. 그리고 막내딸.


옛날 내 할머니에게 우리 아빠는 귀하디 귀한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런 귀한 아들과 결혼한 이유 없이 미운 며느리였다.


고모 넷과 고모부 넷, 그리고 사촌 아홉은 명절 당일날 할머니랑 같이 사는 우리 집에 방문하면서도 항상 빈손으로 오셨더랬다.

항상 부모님이 준비해 놓으신 명절 선물을 얻어갔으면서 말이다.

본인들끼리 언제 도착하냐는 시간 체크를 해가며, 도착해서는

명정 당일 점심부터, 다음날 이른 저녁까지 드시고

어머니가 가득 싸주시는 명절음식과 과일을 싸들고   돌아가셔도 할머니는 항상 벌써 가냐며 아쉬워하셨었다.


우리 집 식구까지 도합 스물두 명

명절 한참 전부터, 김치를 새로 담고 밑반찬을 만들고, 그 많은 인원들의 밥상, 술상을 차리고도 밤새 고스톱 치는 고모와 고모부들 술상을 차리고 친정엄마는 항상 자정이 넘어 주무시러 들어가셨다.

어느 하나 설거지 한다며 나서지 않는 고모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친정아빠와 나는 음식준비에 투입되었었고,

돌아서면 다시 차려내야 되는 술상과 밥상에 바쁜 엄마를 돕고자,

많은 설거지는 항상 내 차지였었다.


그렇게 일박이일을 알차게 머물고, 느긋하게 돌아가는 고모 식구들 덕분에 명절 기간 동안 엄마는 제대로 친정에 가 볼 수가 없었다.

차 타면 그리 멀지도 않은 엄마의 친정.

나의 외할머니댁.


당연히 명절에는 못 가는 줄 알던 할머니댁이었는데,

어스름히 해지는 저녁에 엄마가 할머니집에 간다며 나와 동생 옷을 입히셨다.


우리 집에 차도 없던 그때였는데..

지나가는 버스 매연에도 멀미를 하는 주제에도, 할머니 댁에 가는 게 신이 났었다.

엄마의 친정나들이를 대놓고 싫어하시는 할머니덕에  정말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외가 식구들을 만날 생각에 어린 나는 많이 들떠있었던 거 같다.

원피스에 스타킹을 신고 엄마 화장대에 앉아있는 내 옆으로, 동생이 머리 2대 8 가르마를 곱게 나누며 거울을 보고 앉아있었다.


도끼빗으로 무스를 써가며 곱게 빗은 동생머리.

우리들의 스타일을 곱게 단장시킨 엄마는 잠시 자리를 비웠고,

방에 들어온 내 친할머니는 정돈된 동생의 머리를 빗을 집어 휙휙 빗어 넘긴 셨다.


이미 사용한 무스로 반은 굳어버린 머리카락이, 빗으로 넘긴다고 잘 넘겨질까마는,

할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무슨 억하심정인지 동생의 머리를 마음대로 빗어 넘겼다.


나도 너무 어렸던 국민학교 저학년 때 겪었던 일이라, 정돈된 머리를 망가트린 할머니의 변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이유를 중얼거리셨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그 이유를 지금 기억한다 한들,

또 변명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어도, 어린아이였던 나도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중년아줌마가 된 지금의 나도 할머니의 그 행동을 납득할 수는 없다.


아직 젊은이에 속하길 바라지만, 여지없이 중년아줌마인 내가 삼십 년도 훌쩍 넘어 일어난 일임에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희한하고   또 희한한 일이었나 보다.

또한 그 며느리였던 우리 엄마의 마음에는 큰 생채기를 남긴 일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모르긴 몰라도 바쁜 맞벌이 생활로, 몇 년 만에 잠깐 다녀오는 엄마의 친정행이었을 텐데,

할머니는 며느리인 엄마에게 왜 그러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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